2021년 1월29일 전남 완도군 인근 해상에서 ‘삼성1호’가 침몰하며 화물들이 흩어져 떠내려가고 있다. 완도해양경찰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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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넘긴 밤이었다. 2021년 1월29일 새벽 1시20분 제주 성산항. 3500t 규모 화물선 ‘삼성1호’는 분주하게 출항 준비를 마쳤다. 삼성1호는 이날 전남 고흥 녹동항으로 귤과 무 등을 실어나르기로 했다. 배 화물창 안은 이미 310개의 철제 화물상자가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다.
그때 선박회사(선사)인 삼성해운 대리점 담당자가 선장에게 다급히 연락해왔다. ‘귤이 담긴 화물상자 7개를 추가로 실을 수 없겠냐’고 했다. 삼성해운 대표이사의 지시였다. 그날은 풍랑경보가 발효돼 파도가 너울댔다. 선장은 곤란해했다. “화물을 더 실으면 화물창 덮개를 덮을 수 없습니다.”
화물창이 열린 채로 항해하면 틈새로 바닷물이 유입돼 배가 전복될 수 있다. 하지만 대표이사는 쉬이 물러나지 않았다. 이번엔 화물을 싣고 직접 부둣가에 들이닥쳤다. “내가 책임질 테니 선적하라”고 했다. 선장은 결국 화물창 덮개를 열어둔 채 귤 상자를 배에 실어야 했다.
대표이사는 출항도 재촉했다. 선장은 “기상이 안 좋으니 새벽 3시쯤 출발하겠다”고 했지만, 기어이 1시57분께 배를 출항시켰다. 그리고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각, 바닷물이 화물창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휘청이던 삼성1호는 결국 오전 8시32분께 전남 완도 인근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선원 8명은 가까스로 구조됐으나, 1명은 끝내 찾지 못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갑판에 실린 컨테이너가 바다에 쏟아지고 있다. 해양경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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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 1명 끝내 찾지 못했다
2014년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이윤만 추구하면서 안전을 등한시한 선박 운영 회사의 비윤리적 경영 실태를 전면에 드러냈다. 선박을 개조하며 화물칸 덮개를 철제가 아닌 천막으로 바꿨고 적정 화물량의 3배까지 과적하면서 고박도 불량했다. 25년 된 선박이라 개조에 신중해야 했지만, 화물·여객칸을 더 넓혀놓아 무게중심이 훌쩍 올라갔다. 선장과 선원들이 수차례 복원성(배가 기울었을 때 원상태로 돌아오려는 성질) 불량과 과적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선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개가 심하게 끼어 다른 배들은 포기한 바다에 세월호만 출항하기도 했다.
참사 뒤 10년, 바다 위를 다니는 배의 안전 관리는 얼마나 개선됐을까. <한겨레21>이 중앙해양안전심판원(해심원) 특별조사보고서와 선박 매몰 관련 사건 판결문 등을 토대로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동안 발생한 1천t 이상 선박의 침몰 사고 35건을 살펴본 결과, 이 가운데 5건의 사고는 세월호 참사 때처럼 안전을 뒷순위로 둔 경영과 조직 운영으로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낡은 선박을 위험하게 개조하고 방치하는 기업의 의사 결정이 어떻게 안전을 저해하는지 각 사고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봤다.
주먹구구식 화물 관리… 출항 직전 무리하게 밀어넣기도
삼성1호는 그런 비윤리적 경영의 대표적 사례다. 사실 삼성1호는 사고 2년 전인 2019년에도 화물창 덮개를 개방한 채 운항하다 해양수산부의 지적을 받았다. 선장은 ‘즉시 시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사고 보름 전인 2021년 1월3일과 1월10일에도 화물창을 일부 열어둔 채 출항했다. 안전을 외면하고도 ‘그래도 사고가 나지 않았다’는 결과만을 알리바이 삼아 위험한 관행을 지속했다.
이 배는 평상시 화물 관리도 주먹구구식이었다. 선사 대리점은 평소 화물 개수를 구두로 항운노조에 알려줄 뿐 정확한 화물 위치와 중량을 적재계획서로 기록하지 않았다. 화물 현황도 ‘삼다수’ ‘귤’ 등 품목과 개수만 사무실 화이트보드에 적어놓고 정확한 무게도 재지 않았다. 화물을 어디에 얼마나 싣느냐로 선박 복원성과 화물 선적 효율이 결정되는데 사실상 ‘되는대로’ 일해왔다.
삼성해운 성산대리점 사무실에 적어놓은 화물품목. 무게도 없이 화물 품목과 개수만 적혀 있다. 해심원 보고서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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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 관리가 체계적이지 않으니 선사가 출항 직전 화물을 무리하게 밀어넣어도 선장이 거절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 사실 삼성1호의 최대 선적량은 화물 330개로 대표이사의 요구로 늘어난 317개보다 많다. 하지만 최대 선적량을 실으려면 미리 지게차를 동원해 촘촘하게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하는 사전 계획이 필수다. 이를 선박 용어로 ‘로딩플랜’(화물 적재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체계 없이 화물을 싣는 바람에 최대 선적량보다 13개나 덜 싣고도 화물창을 닫지 못했다.
이는 세월호 참사 때도 고스란히 드러난 문제다. 선사가 출항 15분 전까지 화물을 밀어넣는 통에 로딩플랜 수립이 거의 불가능했다. 화물 운송은 적자투성이인 세월호 운항에 유일한 매출 자원이었다. 선사 물류팀이 상습적으로 화물을 과적해도 해무팀과 선원들이 이를 제어하기는커녕 화물 목록을 받아보지도 못했다. 세월호 1등항해사 강원식이 과적으로 인해 불안정한 배 상황을 전하며 “날씨 안 좋은 날 배 한번 타봐라. 우리는 죽겠다”고 말했지만, 배를 타본 적이 없는 해무팀은 이를 알아듣지 못했다.
삼성1호 침몰 사고에서 무리한 과적과 운항을 지시한 김아무개 삼성해운 대표이사는 2023년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8개월 실형을 최종 선고받았다. 범죄를 은폐하려 관계자들을 회유한 점 등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삼성해운 주식회사는 벌금 3천만원형을 받았다.
어획량 늘리려고 노후 선박 마구잡이식 개조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또 다른 문제는 마구잡이식 선박 개조였다. 세월호는 국내 도입 때 이미 선령이 25년인 낡은 배였다. 선사는 화물과 승객을 늘릴 목적으로 배를 확대 개조하면서도 그것이 배의 복원성에 미칠 영향은 고려하지 않았다. 선장 신보식이 ‘선미를 증축하면 안전성이 떨어진다’고 우려했지만, “위에서 하는 것이니 관여 말라”는 핀잔만 돌아왔다.
이런 문제는 세월호 참사 7개월 뒤인 2014년 12월1일 발생한 명태잡이 원양어선 ‘제501오룡호’(오룡호) 침몰 사고에서도 드러났다. 참치캔으로 유명한 식품기업 ‘사조산업’이 소유하고 운영한 오룡호는 베링해에서 풍랑을 만나 침몰했다. 선원 27명이 숨지고 26명이 실종됐다.
2020년이 돼서야 선고된 이 사건의 1·2심 판결문과 해심원 조사보고서를 보면, 오룡호는 2010년 수입 때부터 선령이 32년이나 됐다. 기상이 좋은 아르헨티나 연안에서만 작업하던 배라 기상 악화가 심한 북태평양으로 옮길 땐 개조에 신중해야 했다. 하지만 사조산업은 어획량을 늘리기 위해 도리어 배 끝에 달린 어획물 창고를 기존보다 크게 넓히고 3t 무게 장비도 새로 실었다. 이렇게 개조를 마친 오룡호는 선미(배 뒷부분)가 해수면과 매우 가까워, 조금만 파도가 쳐도 침수될 위험이 있었다.
2014년 12월1일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침몰한 사조산업의 1753t급 명태잡이 트롤선인 ‘제501오룡호’의 모습. 배 뒷부분이 확장개조돼 해수면과 매우 가까워졌다. 사조산업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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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된 오룡호의 선체 구조는 침몰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사고 당일 베링해는 기상 악화로 파도 높이가 5m에 달했다. 선원들이 명태 20t을 창고로 쏟아 넣는 순간 선체 뒷부분이 기우뚱하더니 바다에 잠겼다.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선박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설상가상 바닷물 유입을 막는 수밀문도 모두 열려 있어, 조타실까지 밀려온 바닷물에 조타기가 고장 났다. 갖은 애를 써도 돌이킬 수 없자 선장은 자책하며 스스로 침몰하는 배에 남았다. 그렇게 선장과 선원들은 배에서 나오지 못한 채 가라앉았다.
참사 초기 비난의 화살은 조업을 강행한 선장에게 향했다. 그러나 그 이면엔 사조산업의 실적 경쟁이 있었다. 판결문을 보면, 사조산업은 참사 전 러시아 수산청의 명태 어획량 쿼터 배분에서 최종적으로 배 무게의 4배가 넘는 7900t을 배정받았다. 다른 기업들이 너무 많다고 반납한 물량을 사조산업이 넘겨받은 것이다. 배분에 참여한 국내 선박 5개 중 오룡호가 두 번째로 작았으나, 쿼터량은 두 번째로 많았다.
선장은 상당한 압박을 받은 듯했다. 2014년 11월 회사에 보낸 이메일에 ‘계속 황천항해(기상 악화 중 항해) 중’ ‘쿼터를 다 채우긴 어려우나 최선을 다하겠다’ 등의 내용을 적었다. 선장은 사고 당일에도 피항하려다 돌연 마음을 바꿔 조업에 나섰다.
2015년 1월5일 오룡호 실종자 선원 가족들이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사조산업 본사 앞에서 수색 재개와 회장 면담 등을 요구하며 오열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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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는 오룡호에 미자격자도 대거 승선시켰다. 선장부터가 법적 자격(2등항해사 이상)에 미달하는 3등항해사였다. 사조산업 서울본부는 이를 알고도 그를 선장으로 발령 냈다. 남태평양 쪽 조업 경력이 있다는 이유였고 자격은 보지 않았다고 한다. 부산본부는 그 결정에 대해 “된다, 안 된다 토 달 수 없”었다.(1심 판결문) 서울본부가 정한 출항 일자가 다가오자 부산본부는 필수 자격자 9명 중 4명(선장 포함)을 미자격자로 채우고 3명은 아예 승선시키지 않았다. 어차피 적정 선원을 못 채워 적발되더라도 “회사가 담당자 벌금을 대납하는 일이 반복”됐다.
사조사업은 어로 작업에 필요한 설비나 연료유 등은 바로바로 공급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원 안전에 대해선 지극히 무관심했다. 선원들은 형식적으로 서명만 할 뿐 위기 대응 훈련을 거의 받지 못했고, 배 안의 비상상황배치표는 러시아어로 적혀 있었다. 선원 60명 가운데 러시아인은 1명뿐이었다. 기상을 알리는 팩스가 고장 났으며 배는 오물배출구 닫힘 셔터가 낡아 없어져 사실상 구멍 난 상태로 운항했다. 선사는 이를 사고 당일까지 수리하지 않았다.
“(희생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존엄한 생명들이었다. 선장은 회사가 아니라 자신을 자책하며 퇴선하는 대신 침몰하는 제501오룡호와 운명을 함께했다. 피고인들이 어선의 안전한 조업을 위해 인적·물적 운항능력을 갖출 주의 의무를 가볍게 여길수록 회사는 조업 실적을 늘리고 비용을 줄일 수 있을지 모르나, 이는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대가로 삼는 일이다.”(판결문 중)
사조산업 김아무개 대표이사와 문아무개 이사는 2020년 2월 이 사건으로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사조산업은 벌금 1500만원형을 선고받았다.
평형수 탱크 부식 등 2년 동안 위험 보고했지만…
세월호의 복원성 불량은 이전에도 신호를 보냈다. 참사 발생 전인 2014년 1월과 2013년 11월에도 배가 기울거나 화물이 떨어지는 사고를 겪었다. 그래도 청해진해운은 세월호를 멈추지 않았다. 노후선박에 드는 기름값과 수리비 등이 예상보다 많아(1회당 약 6천만원) 어떻게든 승객과 화물을 태워야 적자를 메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2017년 3월31일 남대서양에서 항해하던 도중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에서도 반복됐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약 2년 전인 2015년 5월 선사의 공무팀장이 대표이사에게 내부 문건을 통해 ‘평형수(탱크)의 상태가 전반적으로 많이 불량(내부 도장이 거의 없음)’이라는 보고를 했다. 그는 스텔라데이지호를 ‘중장기 폐선 우선 선박 4순위’로 분류했다.
스텔라데이지호의 결함은 통상적 수준이 아니었다. 선사 대표이사 등의 선박안전법 위반 혐의 1심 판결문을 보면, 공무감독 ㅎ씨는 “해운업계에 근무하며 이 정도 변형은 처음 봤다”고 했고, 선박검사원 ㅁ씨는 “횡격벽 변형이 그 정도면 대항 항해(‘대양 항해’의 오기로 추정)는 쉽지 않겠다 판단했고 그런 현상을 처음 봐 깜짝 놀랐다”고 했다.
2024년 3월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7주기’ 기자회견이 열렸다. 실종된 허재용 이등항해사의 누나 허경주씨(왼쪽)와 어머니 이영문씨. 박승화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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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데이지호 역시 선령이 15년 된 중고선 상태에서 도입됐다. 게다가 배의 바닥 쪽에 오폐수를 보관해 선체 부식이 빠르게 진행됐다. 선박 검사를 받을 땐 해당 공간을 비워두겠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오폐수 보관으로 불법 전용했다. 평형수 탱크 부식과 선체 변형 등이 2015~2016년 지속적으로 선사에 보고됐다. 선장과 선원들이 안전을 우려하는 의견을 냈고, 선박 전문가도 스텔라데이지호의 부식이 심각하다며 정밀한 두께 계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배는 항해를 멈출 수 없었다. 결국 스텔라데이지호는 14만t 배가 두 쪽으로 갈라지며 5분 만에 침몰했다. 2011년 평형수 탱크의 도장 불량이 처음 제기된 지 6년, 2015년 폐선 선박으로 분류된 지 약 2년 만에 발생한 참사였다. 배에 탔던 선원은 24명으로, 2명은 구조됐다. 미수습 선원 22명 가운데 한국인 선원은 8명이다.
2017년 3월31일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 해역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체 일부 모습. 심해수색 전문업체인 미국 오션 인피니티사가 촬영했다.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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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 원인도 결국 비용 부담이 핵심으로 꼽힌다. 낡은 배는 수리비가 폐선비보다 더 많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판결문을 보면, 선사가 땜질식으로 스텔라데이지호를 손본 데만도 40만달러(약 5억8천만원)가 들었다고 한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자매 선박인 스텔라코스모스호와 스텔라유니콘호도 부식이 너무 심해 보강 자재만 3천~4천여t 필요한 것으로 계산돼 결국 폐선됐다.
선사에 선박 구조손상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관리하는 체계가 없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인) 폴라리스쉬핑이 선박 감항성에 미칠 수도 있는 구조손상을 효과적으로 평가하고 관리하는 절차를 갖추지 않았을 수 있다. 공무감독이 손상을 검사했지만, 폴라리스쉬핑은 상세한 구조손상 평가에 착수하지 않았다. …화물량이나 기상 상태에 대한 어떠한 제한을 두지 않고 추가 항해를 완료하도록 허용했다.”(해심원 조사보고서)
구조손상 관리에 미흡했던 선사도 고객사 요구엔 발 빠르게 반응했다. 철광석 주문 업체들이 ‘화물량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게 한꺼번에 내려달라’고 요구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여러 항구에서 철광석을 불균형하게 내리는 작업을 하게 됐고, 선체에 무리를 줬다.
폴라리스쉬핑 김완중 대표이사는 2024년 2월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금고 3년형을 선고받았다. 선박 결함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죄(선박안전법 위반)로는 2심에서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아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폴라리스쉬핑은 벌금 1500만원형을 선고받았다.
2019년 9월8일 미국 조지아주 브런즈윅항 외곽 해상에서 전도돼 옆으로 기운 현대글로비스 소속 자동차 운반선 골든레이호.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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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밀문 열어놓고 평형수도 덜 채워
배의 복원성에 화물 적재량만큼이나 중요한 게 평형수 관리다. 세월호는 선박 개조로 무게중심이 높아져 화물은 적게, 평형수는 많이 실어야 했다. 실제론 그 반대였다. 화물은 과적하고 평형수는 덜 채웠다.
2019년 미국 조지아주 브런즈윅 항만 인근에서 침몰한 현대글로비스의 자동차운반선 ‘골든레이호’ 역시 평형수 관리에 실패한 사례다. 배에 실린 화물량 대비 평형수가 지나치게 적은 상태에서 방향을 꺾었다가 배가 그대로 쓰러졌다.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 사고 조사 결과, 1등항해사가 복원값을 잘못 계산해 실제 무게중심(1.76m)보다 50㎝ 이상 높은 값(2.45m)으로 산출했다.
선박 복원값을 정확히 계산하는 이유는 화물의 적정 적재량과 평형수의 적정량을 알기 위해서다. 하지만 골든레이호의 1등항해사는 체계적인 복원값 계산 교육을 받지 못했다. 골든레이호 선박관리 회사인 현대글로비스의 자회사 ‘지마린서비스’는 1등항해사에게 컴퓨터와 안내책자만 줄 뿐이었다. 전임자에게 알음알음 배운 컴퓨터 사용법으로 그는 커다란 배의 복원값 계산 업무를 홀로 도맡았다. 선장도, 선박관리회사도 1등항해사가 수기로 계산한 복원값을 교차 검증하지 않았다. 결국 1등항해사 승선 5개월 만에 배는 복원값 오류로 침몰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둔 2019년 4월13일 공개된 세월호 내부 기관실 수밀문 모습. 침몰 당시 그대로 열려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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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급속한 침몰에 영향을 준 수밀문 폐쇄 불량도 골든레이호 침몰 사고에서 되풀이됐다. 배 안의 출입문은 바닷물 유입을 막는 수밀문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선원들은 입출항 때 늘 수밀문 폐쇄 여부를 확인한다. 그런데 2017년 인양된 세월호 내부 수밀문은 모두 열려 있었다. 선원들이 통행 편의를 위해 관행적으로 문을 열어뒀던 것이다.
골든레이호도 수밀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 침몰이 가속화했다. 사고 약 2시간 전까지 수밀문 2개가 열려 있었다. 배가 침수되자 열린 문부터 바닷물이 밀고 들어왔다. 미 연방교통안전위는 “선교에 있는 수밀문 개폐 표시반에 빨간불이 켜져 있었을 텐데 누구도 출항 전 확인하지 않았다. 모든 수밀문의 개폐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선원이 반드시 준수하도록 회사가 보장해야 한다”고 보고서에 썼다.
배 현장 모르는 사무부서가 홀로 결정
참사엔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낡은 선박을 중고선으로 들여오면서도 활용과 개조에 거침없었다. 개조의 방향성도 이윤 증대만을 고려할 뿐 배의 복원성은 고려하지 않았다. 화물량, 선적 방법 등 선박 복원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를 선사의 생산 부서가 홀로 결정했다. 그 부서 직원들은 배의 안정성에 대해선 알 의무도 역량도 없었다. 모두가 배를 이용해 이윤을 창출할 줄만 알고 안전하게 사용하는 법은 몰랐다. 선원들은 평상시 위기에 대응할 훈련 기회도 시간도 갖지 못했다.
전직 외항사 선원 김민호(29)씨는 <한겨레21>과 한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배를 3년 타며 느낀 게 있다면 배라는 게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시스템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현실에서 잘 고려되지 않는 것 같아요. 선주는 이득이 되니까 ‘그래도 가면 안 되냐, 좀더 빠르게 하면 안 되겠냐’ 하고요. 사무실 직원들은 컴퓨터 모니터로만 보니까 거기서 내린 결정이 바다에서 얼마나 위험한지 잘 모르고요. 선원들도 배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부족해요. 사실은 그런 것부터 알고 배우려는 노력이 먼저여야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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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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