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우리 곁에 착 달라붙은 우울은 삶을 조금씩 좀먹고, 갖은 노력을 해도 떨쳐내기 힘들다.
웹툰 '흔한햄' |
'흔한햄'은 이처럼 잔잔한, 그래서 더 치명적인 우울감을 아주 생생하고 세밀하게 묘사한 웹툰이다.
주인공 햄은 27살. 디자인을 전공했고 그림작가가 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현재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남는 시간에 소셜미디어(SNS)에 그림을 간간이 올리는 중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두 달간 여기저기 넣은 지원을 하지만 아무런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겨우 들어간 회사가 도산해버려서 월급을 못 받기도 한다.
이렇게 평범한 주인공이 갑자기 특별한 능력을 얻는다거나 별안간 과거로 회귀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흔한햄' 속에는 그저 한없이 무기력한 감정 속으로 침전하는 햄과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햄만 있을 뿐이다.
잇선 작가는 오늘날 'N포세대'(결혼, 내 집 마련, 인간관계 등을 포기한 청년 세대)의 초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면서도 이를 귀여운 동물 캐릭터 뒤에 숨겼다.
햄의 외양은 햄스터고, 사는 곳도 쳇바퀴와 톱밥이 있는 햄스터 케이지다. 가끔 폭식할 때 해바라기씨를 먹는다.
햄스터의 친구로는 토끼와 다람쥐, 그리고 또 다른 쥐들이 있다. 이들은 제각기 불안한 현실을 살아 나간다.
웹툰 '흔한햄' 한 장면 |
마치 우울을 곁에 오래 두고 관찰한 듯한 세밀한 감정 묘사가 돋보인다.
햄은 친구들과 즐겁게 떠들고 돌아오는 길에 동시에 찾아온 해방감과 고독감에 시달리고, 팬의 칭찬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살다가 번아웃(탈진)에 빠지기도 한다.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배달 음식에 빠져 살거나 술에 의존하기도 한다. 하지만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 뿐이다.
작품 전반에 감도는 우울한 정서 때문인지 웹툰 첫 페이지마다 '본 작품은 우울증에 대한 묘사가 일부 포함되어 있으므로 감상에 주의가 필요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흔한햄' 속 우울증 묘사 주의 문구 |
현실감 넘치는 묘사 탓에 작가의 경험담이 아닌가 싶은 정도다.
실제로 작가 SNS에는 소동물을 오너캐릭터(작가 자신을 형상화한 캐릭터)로 둔 짧은 일상 만화가 올라오는데, 놀랍도록 '흔한햄' 속 주인공과 닮았다.
이처럼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그려둔 작가가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네이버웹툰에 주 2회 정기 연재를 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흔한햄'은 네이버웹툰에서 볼 수 있다.
he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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