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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정치계 막말과 단식

참을 수 없는 장바구니의 가벼움…윤 정부 ‘대파’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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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3월29일 서울 용산구 이마트 용산점에서 시민이 대파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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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0일의 결과를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야당에 표를 준 유권자들일수록 그랬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투표 행위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단어로 수렴됐다. ‘응징’. 한겨레가 야당에 투표한 유권자 70명에게 물었다. 투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은 무엇인가? 총선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정치권에 바라는 게 뭔가?







“장바구니 가벼워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가장 큰 불만은 치솟는 ‘물가’였다. “소통? 협치? 그런 거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먹고살기 편하게는 해줘야 할 거 아닌가. 마트에서 세 식구 먹거리 사면 최소 5만원이다. 장 보고 계산대 설 때마다 얼굴에 핏대가 선다.” 부산 금정구에 사는 주부 이아무개(45)씨의 말이다.



대전 도안동의 자영업자 남아무개(52)씨도 다르지 않았다. “물가가 오르는데 가게 매출은 오히려 20~30%가 준다. 계속 이 상태면 ‘간헐적 단식’이 국민운동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2년 전 대선 때 윤석열을 지지했던 서울 마포구의 직장인(35)을 확 돌아서게 만든 것도 같은 이유였다. “국민들을 살게는 해줘야 할 거 아닌가. 2년 전엔 집값 상승에 실망해 윤석열을 찍었는데, 이번엔 생활물가 폭등에 짜증이 나 민주당을 찍었다.”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사는 주부 이아무개(45)씨는 “시장 가보면 사과만 오른 게 아니라 다 올랐다. 식구 4명이 삼겹살 좀 먹으면 10만원이 훌쩍 넘는다. ‘대파 875원’으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스타일도 많은 이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윤석열 대통령의 ‘3무’를 언급했는데, ‘무능’과 ‘무지’는 공통적이었고 마지막 한가지가 달랐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대기업 부장급 여성(39)은 ‘무식’을 꼽았고, 경기 의왕의 사무직 조아무개(31)씨는 ‘무품격’을 꼽았다. “어디 내놓았을 때 국민을 창피하게 만들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유튜브 등에 돌아다니는 ‘짤’들 좀 봐라. 지금까지 이런 대통령 부부는 없었다.” “강제 레임덕이든 탄핵이든, 제발 윤석열 대통령 좀 어떻게 수습해달라고 민주당에 투표했다. 국민의힘? 지금까지 행태 보면 절대 수습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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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서울 양재역 12번출구 앞에서 열린 민주당 선거유세를 바라보는 시민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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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당 구도는 현실이다”





출범 초 ‘민주당판 친박연대’라는 비아냥마저 들었던 조국혁신당의 약진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는 거대한 흐름이었다. 그 물결에 휩쓸려 진보정당도, 제3지대도 사라졌다. 실제 지난 대선·총선 때까지도 정의당을 찍었다는 유권자들 대부분이 조국혁신당 지지로 옮겨간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은 민주당, 비례는 진보정당이었는데 이번에 바꿨다. 녹색정의당에 표를 주면 사표가 될 게 뻔했으니까.”(경기 거주 양아무개씨·34) “녹색정의당 자체가 싫었다기보다, 한국 정치는 이미 양당 체제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경기 거주 회사원·39)



눈여겨볼 부분은 조국혁신당에 대해 ‘제3 정당’이 아닌 ‘민주당의 왼쪽’ 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석관동 주부 이씨는 조국혁신당에 대해 “민주당의 ‘위성정당’으로서 국민 전체를 의식해야 하는 민주당을 대신해 선명한 정책을 펼치면서 윤석열 정권을 더 가열차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대신) 조국이 칼춤을 잘 춰줬으면 좋겠다”(서울 거주 여성 프리랜서·35)는 반응도 같은 맥락이었다.



조국혁신당을 뽑은 이유 가운데는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가장 크기 때문”(서울 거주·20대 후반)이란 답변도 있었다. 그 이유를 서울에 사는 34살 전문직 남성은 이렇게 설명했다. “어느 당이 많이 당선돼야 윤석열이 가장 아프고 기분 나빠할까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경북 포항시 북구에 사는 대학원생 김아무개(29)씨는 “조국의 정치적 동기는 사사롭다고 생각하지만 성과는 기대된다. (개혁의) 분명한 그림이 있다고 느껴진다”고 했다.



반면 개혁신당에 표를 준 유권자들은 그 당이 ‘제3지대 정당’이라는 데 의미를 두고 있었다. “한국 정치는 양극화가 심각하다.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구도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조국혁신당은 조국이 빠지면 민주당에 흡수될 거 같다. 이준석·천하람이 있는 개혁신당 말고 독자 세력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 데가 어디가 있나?”(인천 거주 취업준비생·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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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9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마지막 선거 유세에 나서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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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과 민주당이 좋아서가 아니다”





4년 전 총선 결과와 비슷한 민주당의 압승을 두고선 “민주당이 착각해선 안 된다”는 쓴소리가 함께 나왔다. 수원에 사는 공공기관 직원 김아무개(31)씨의 말이다. “야당이 압승해 윤석열을 심판한 건 좋은 일이지만, 김준혁 같은 막말 후보들이 당선돼 화가 난다. 김준혁은 당선됐든 안 됐든 정치인 자격이 없다.” 서울 강남에 사는 40대 남성 자영업자의 말도 비슷했다. “미운 놈 응징하려면 누구한테 투표하는 게 효과적인가를 생각했다. 민주당이 1당이 돼야 윤 정권의 불통과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거 같았다.” 도안동 자영업자 남씨는 “국민은 진실을 알고 있다. 조금 덜 나쁜 사람과 당을 선택했을 뿐”이라고 했다. 부천에 거주하는 박아무개(33)씨는 자신이 보수 성향이며 지난 총선 때 미래통합당을 찍었다면서도 “민주당과 조국의 내로남불을 욕했는데,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하는 걸 보니 더 심각하다”고 했다.





“200석 안 돼 아쉬워” vs “200석 안 된 게 다행”





야권의 승리를 위해 투표한 것은 같았지만, ‘야권의 압승’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200’이라는 수가 갖는 힘이 그만큼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아쉬움을 느끼는 쪽은 “마지막에 몇가지 실점만 없었으면 충분히 200석은 달성할 수 있었다. 윤석열 정권을 확실히 제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광주 거주 자영업자·53)이란 반응을 보였다. 경남 진주에 사는 권아무개(61)씨도 “범야권이 200석을 넘겼어야 했다. 민주당은 180석을 갖고도 너무나 무기력하지 않았나. 이재명과 조국이 손잡고 윤석열 정권의 남은 임기 동안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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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2대 국회의원 선거 유세 마지막 날인 9일 오후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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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직장인(38)의 생각은 달랐다. “시민으로서 한 정당이 너무 많은 권한을 갖는 것은 부담스럽다. 개헌을 포함해서 한 특정 세력이 반대 정당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으면 위험하지 않겠나.” 경기도에 살며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후반 여성의 평가도 비슷했다. “현 정부에 경종을 울리는 수준에서 절묘한 결과가 나왔다. 200석 이상을 야권이 가져가면 더 큰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 대구 북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조아무개(25)씨는 “민주당의 압승이 민주당을 자칫 거만하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된다. 비명(비이재명계)은 전부 ‘수박’으로 규정하고 공격하는 등 문제가 많았는데, 투표 결과를 보고 앞으로도 그래도 된다고 여길까 봐 걱정이다”라고 했다.





“윤석열이 바뀐다고? 절대, 네버!”





윤 대통령을 심판하기 위해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을 찍었다고 했지만, 정작 윤 대통령이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 국정 기조를 바꿀 것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개혁신당을 찍은 이아무개(49·고양 거주)씨는 “이번 선거는 대통령이 전면적으로 성찰하고 야권과 통합 정치를 펼치라는 의미에서 윤 대통령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지금 대통령은 판단력을 상실했다. (기조를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각 부서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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