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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의 예술성, 해외에서 되레 인정”… 한국 유일 통영갓 장인의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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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남산골한옥마을서

국내 유일 장인들 작품 기획전

금박-대나무 발-대나무 채상 등

치열했던 삶-작품 활동 엿볼 기회

동아일보

국내 유일의 통영갓 장인 정춘모 씨가 가는 대나무로 엮은 갓의 차양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다. 서울 중구 남산골한옥마을은 올 10월 31일까지 분야별로 유일하게 남은 국가무형유산 네 명을 조명하는 기획전 ‘과거가 현재에게, 단 한 명의 장인으로부터’를 연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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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서울 강남구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서 만난 국내 유일의 통영갓 장인인 정춘모 씨(84). 그는 진사립(眞絲笠)을 들어 올리며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다. 진사립은 대나무와 말총으로 만들어진 갓의 차양과 모자 부분을 명주실로 결합해 만드는 최고급 갓이다. 투명하면서도 가볍고, 유려한 곡선이 맵시를 자랑했다. “이런 진사립은 하나 엮으려면 1년 이상도 걸려요. 조선시대 최고의 사치품이죠.”

1991년 국가무형유산 보유자로 지정된 정 씨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통영갓을 만들 줄 아는 장인이다. 전통 갓 중에서도 최고로 여겨지는 통영갓은 과거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12공방’에서 생산된 것으로 유명하다. 갓 제작은 모자를 만드는 ‘총모자’, 차양 부분을 만드는 ‘양태’, 이 두 가지를 조립하는 ‘입자’로 절차가 나뉘는데, 그는 이 기술을 모두 갖고 있다.

누구도 상투를 틀지 않는 시대에 갓은 ‘옛것의 상징’이 됐지만 정 씨는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우리나라 사극에서도 진짜 갓 대신 모조품을 사용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는 “국내와 달리 오히려 해외에서 갓의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금박장 김기호 씨가 옷감에 금박을 새기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서울 중구 남산골한옥마을은 지난달 26일부터 국내에 단 한 명 남은 장인들의 작품을 조명하는 기획전 ‘과거가 현재에게, 단 한 명의 장인으로부터’를 진행하고 있다. 대나무 발을 만드는 ‘염장’, 직물 위 얇은 금박을 붙이는 ‘금박장’, 갓을 만드는 ‘갓일’, 대나무 껍질을 물들여 상자로 만드는 ‘채상장’ 등 무형문화유산 분야 가운데서도 분야별 한 명씩 남은 장인 4명을 조명한다. 6월 2일까지 선보여질 염장(簾匠) 조대용 씨(74)의 작품들을 시작으로 나머지 장인들의 작품이 순차적으로 10월 31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조 씨는 증조부 대부터 4대째 가업을 이어온 국내에서 유일한 염장이다. 그가 가는 대올로 짜는 발은 섬세하고 고운 문양을 자랑한다. 세종대왕릉(영릉) 정자각, 덕수궁 함녕전 등 문화유산에서는 물론이고 영화 ‘킹덤’, ‘올빼미’ 등에서도 그의 발을 볼 수 있다. 한때는 발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아파트 위주의 주거 양식이 들어서면서 커튼과 블라인드로 대체됐다. 조 씨는 “예전엔 귀한 집에 발로 멋을 낼 수 있었는데 요새는 환경이 달라지다 보니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며 “발 하나가 덜렁덜렁 만든다고 팔리는 게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장인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현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금박장 김기호 씨(56)는 1997년 이 일을 시작한 뒤 금박을 입힌 명함지갑, 필통, 넥타이 등을 개발했다. 금박을 옷에만 입힌다는 통념을 깬 것이다.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할리우드 배우 티모테 샬라메와 젠데이아가 그가 만든 금박 넥타이와 댕기를 제작진으로부터 선물받기도 했다. 김 씨는 “방송에 5초 정도 나갔는데 주문이 꽤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가 꾸준히 전시를 하자 다른 무형문화재나 젊은 예술가들이 금박을 전시에 활용하는 사례도 늘었다. 김 씨는 “해외 명품처럼 금박을 활용한 상품을 하나의 명품으로 키우고 싶은 바람이 있다”며 “금박의 예술성을 알리기 위해 더 활발히 전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상장 서신정 씨(64) 역시 과거 예물함으로 주로 사용되던 채상(채색한 상자)의 용도를 넓히고 있다. 도시락과 모빌 등 장식품을 만들고, 소반과 반닫이에도 채상을 입혔다. 서 씨는 “우리 것을 관심 있게 보고 사서 쓸 수 있도록 작품을 더욱 다양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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