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투표 청년에 취준생·90세 어르신·발달장애인도 한 표씩
저마다 개성 있게 인증샷…투표소 착각·칸좁은 비례용지 혼란도
이른 아침 소중한 한 표 |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우리 지역을 대표해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줄 사람을 뽑는 거란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일인 10일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서울 성동구 행당초등학교 투표소를 찾은 어머니는 다정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서울의 투표소 곳곳에서는 '나라의 일꾼'을 뽑는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한 발걸음이 이른 아침부터 종일 이어졌다.
◇ 생애 첫 투표부터 어르신까지…아이들 손잡고 투표소로
종로구 서울교동초교에서 만난 정유리(24)씨는 "회계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투표는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해 학원 가기 전에 들렀다"고 말했다.
정씨는 "청년 정책이 너무 부족한데 뽑고 싶은 후보가 없더라도 투표율을 높여야 우리를 위한 정책도 많아질 것"이라며 "국회가 서로 양보하면서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종로구에서 35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최범섭(64)씨는 "일을 해야 해서 아침 일찍 투표했다. 바빠도 투표는 해야 하고, 좋은 분을 뽑아야 미래가 있지 않겠나"라며 "새 국회가 열심히 의정에 참여해 올바른 일을 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서초구 서래초교에서 만난 이현승(49)씨는 "20대 자녀 2명이 있는데 이번에 모두 투표했다. 나와 정치적 시각도 다르고 공약을 열심히 보고 분석하더라"라며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됐을 때 정치에 회의를 느끼지 않도록 정치인들이 약속을 잘 지켰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국민의 선택,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열기 |
11년째 동작구 흑석동에 거주 중인 배영민(40)씨는 9세 딸, 7세 아들과 함께 투표소를 찾았다.
학과 점퍼를 입고 흑석동 주민센터를 찾은 단국대 3학년생 이모(22)씨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공부하다 짬을 냈다.
이씨는 "주변 친구들은 '꼭 투표를 해야한다'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은 사전투표 기간을 놓치면 본가까지 가는 게 번거로워서 투표를 포기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영등포구 영중초교 투표소에서 만난 김모(76)씨는 지금까지 한 번도 투표를 거른 적이 없다고 했다.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투표하러 온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허리 수술 후 지팡이를 짚고 서울교동초교 투표소를 찾은 장입분(85)씨는 "주점을 운영하는데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여전히 장사가 안되고 사는 것도 힘들다"며 "경기도 안 좋고 소상공인들은 죽어가는데 새 국회가 꾸려지고 경제도 나아지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관절염 때문에 지팡이를 짚는 김승배(84)씨는 집에서 약 400m 떨어진 성동구 행당초교 투표소까지 걷다 서기를 반복하면서 왔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아들(33)의 투표를 돕기 위해 논현1동 투표소를 찾은 권모(63)씨는 아들의 투표 모습을 바라보며 "공정하고 투명하고, 더 많은 사람이 서로 배려하고 배려받는 사회가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읊조렸다.
특별한 인생 첫 투표를 한 유권자도 있다.
행당초교에 아버지와 투표하러 온 대학생 한모(19)씨는 "첫 투표를 앞두고 조금 떨렸다"며 "내가 참정권을 행사하면서 대한민국 정치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돼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
90세 노인의 '소중한 한표' |
◇ 투표 인증샷 릴레이…긴 비례 투표용지에 혼란도
투표를 마친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증사진을 찍었다.
바닥에 붙은 투표소 표시문과 자신의 신발을 나란히 놓고 찍거나 손등에 찍은 투표 도장을 사진으로 남기는 고전적인 방식에서부터 캐릭터가 그려진 투표인증 용지를 출력해 와 인증하는 대학생까지 모습도 다양했다.
투표소를 착각해 당황해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목격됐다. 전국 어디에서나 할 수 있었던 사전투표와 달리 본투표는 주민등록지를 기준으로 지정된 장소에서만 투표할 수 있다.
교동초교를 찾았던 한 유권자는 "근처에 살아서 당연히 여기서 투표하는 줄 알았는데 주민센터로 가야 한다더라"라며 발길을 돌렸다.
논현1동 제3투표소에서는 일부 유권자가 "저쪽 투표소로 갔더니 이리로 오라고 했는데, 왜 또 다른 데로 가라고 하느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길고 투표 칸이 좁은 비례대표 투표용지에 혼란스러워하는 이들도 많았다.
백발의 한 어르신은 함께 온 중년의 아들에게 "비례 용지에서 칸을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 써서 찍었다"고 했고, 60대 정도로 보이는 한 남성은 부인에게 "손 떠는 사람은 찍지도 못하겠어"라고 토로했다.
아빠와 함께 투표 |
또 다른 유권자는 "비례대표 용지에 1, 2번이 없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결국 제대로 못 찍었다"고 일행에게 투덜대며 울상을 지었다.
50대 딸과 영중초교 투표소를 방문한 80대 어르신은 "투표 용지에 유난히 많은 정당 이름이 작게 적혀 있어서 나이든 사람한테는 (투표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투표소 인근에서는 출구조사 요원들이 민심의 향방을 확인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유권자들은 투표 용지와 동일하게 생긴 설문조사 용지에 자신이 뽑은 후보를 표시하는 방식으로 조사에 참여했다.
(윤보람 이영섭 계승현 장보인 이도흔 최윤선 기자)
br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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