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물가 안정 위해 돈 풀기…‘건전재정’ 기조에 역행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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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가격안정자금 무한 투입”…근본 대책 아닌 즉각 효과 선택
“긴축으로 물가안정” 하루 만에 말 바꿔…일관성 없는 재정 정책 ‘비판’
정부가 먹거리 물가 안정을 위해 긴급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을 무제한·무기한으로 투입하기로 했다. 총선을 앞두고 더 많은 돈을 풀어 농산물 가격을 낮추겠다는 건데, 그간 정부가 강조해온 ‘건전재정’ 기조와 배치된다. 긴축을 통한 물가안정 효과를 내세웠던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돌연 ‘돈 풀기’에 나선 모양새여서 일관성 없는 재정 정책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때까지 가격안정자금을 무제한·무기한 투입하고 지원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유통구조 개선 등 장기간에 걸친 공급 대책 대신 즉각 효과를 볼 수 있는 재정 대책을 택한 셈이다. 향후 투입될 재정 규모는 추산하기 어렵지만 대통령이 나선 만큼 추가적인 재정 지원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재정을 동원한 물가안정은 재정건전성을 강조해온 기존 정부 정책 기조에 역행하는 대책이다.
윤 대통령 역시 ‘무제한 지원’ 지시 하루 전만 해도 건전재정의 물가안정 효과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대국민 담화에서 “건전재정 기조에 대해 여당과 지지자들도 반대했고, 총선을 치러야 하는데 건전재정이 말이 되냐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다”면서 “우리 정부 출범 당시 6~7%에 이른 물가가 건전재정 기조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2~3%대로 잡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날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 달 연속 3%대라는 통계청 지표가 나오자 하루 만에 말을 바꾼 것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전반적인 유통 시스템 개선과 같은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선거에 맞춰 즉흥적으로 대책을 내놓고 있다”며 “하루 사이에 정책 기조를 뒤집을 정도로 일관성이 없어 정상적인 국정운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농축산물 할인 지원의 실효성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국제유가 오름세 등 물가 상방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특정 품목 가격을 할인하는 방식으로는 물가를 낮추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지난달 18일 농산물 납품단가 지원(755억원), 농축산물 할인 지원(645억원) 등 1500억원가량을 투입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지난달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0% 가까이 올랐고 신선과실(과일) 물가는 40% 넘게 상승했다. 오히려 정부의 각종 할인·지원 정책이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떨어져야 할 수요를 자극하면서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안한 국내 물가와 달리 해외 주요국 물가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2022년 9.1%까지 치솟았던 미국 소비자물가는 지난 1월 3.1%까지 떨어져 한국과 같은 오름폭을 기록했다. 일본 역시 지난해 1월 최고 4.3%를 찍고 11월 2.8%로 떨어진 뒤 2%대를 유지하고 있다.
올 2월 기준 유럽연합(EU)의 물가 상승률은 2.8%로 스페인(2.9%), 독일(2.7%), 네덜란드(2.7%), 스위스(1.2%), 이탈리아(0.8%) 등 유럽 주요국의 물가 상승폭은 한국을 밑돌았다. 그간 정부가 주요 성과로 내세웠던 ‘해외 주요국보다 낮은 물가 상승률’마저 뒤집힌 것이다.
우 교수는 “미국과 같은 주요국은 한국과 달리 금리를 꾸준히 올렸기 때문에 물가가 하향 안정세에 접어들었다”며 “한국은 정책 타이밍을 놓쳤고, 지금은 임시방편적인 물가 대책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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