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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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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레전드 향한 박찬호의 진심 "노모가 내게 MLB 문을 열어줬다" [고척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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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고척, 김지수 기자) "내게 문을 열어줬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 용기를 줬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야구의 레전드다.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아시아 국적 투수들 중 손에 꼽히는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박찬호가 1994년부터 2010년까지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쌓은 통산 124승은 그가 은퇴한 지난 13년 동안 누구도 범접하지 못했다. 지난해까지 빅리그 통산 103승을 기록 중인 일본의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제외하면 향후 몇 년 동안 도전할 수 있는 선수 자체가 없다.

박찬호는 다른 누구보다 다르빗슈 유가 자신의 124승을 뛰어넘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다르빗슈 유의 선전을 기원하면서 아시아 선수들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주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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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는 20일 오후 7시5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쿠팡플레이와 함께하는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2024(이하 서울시리즈)' 개막전에 앞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다르빗유를 향한 진심을 전했다.

박찬호는 "기록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내 124승도 언젠가는 당연히 다른 선수에 의해 깨진다"며 "그래야만 (아시아 야구가) 발전할 수 있다. 다르빗슈 유 선수가 꼭 내 기록을 깨기를 바란다. 다르빗슈 유가 새롭게 작성한 기록이 다음 세대들에 좋은 목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찬호는 이날 다저스와 파드리스의 2024 시즌 메이저리그 공식 개막전에 시구자로 나섰다. 최초의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메이저리그 공식 경기에 최초의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메이저리그 공식 경기에서 시구를 위해 마운드에 오르는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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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는 고척스카이돔을 가득 메운 1만 6000여 명의 환호를 받으면서 공을 뿌렸다. 시포는 파드리스의 주전 유격수 김하성이 나섰다. 김하성은 대선배의 공을 받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다저스와 파드리스는 박찬호가 현역 시절 몸을 담았던 팀들이다. 박찬호는 이날 다저스와 파드리스가 정확히 반반으로 나뉜 유니폼을 입고 팬들 앞에 섰다.

박찬호는 시구 전 공식 인터뷰에서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뒤 "다저스와 파드리스가 승패를 떠나 한국 야구팬들에게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찬호가 LA 다저스에 입단한 1994년 당시에는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탄생도, 30년이 흐른 뒤 한국에서 메이저리그 경기가 열릴 것이라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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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찬호는 1994 시즌 정규리그 시작과 동시에 메이저리그 데뷔에 성공했다. 이후 1년 넘게 마이너리그에서 담금질을 거치면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했지만 박찬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1996 시즌 역사적인 코리안 빅리거 첫 승을 따냈고 2010년까지 총 124승을 남겼다.

박찬호는 이날 인터뷰에서 일본의 레전드 투수 노모 히데오의 이름을 수차례 언급했다. 노모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박찬호가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박찬호는 "30년 전 미국에서 나는 혼자였다. 1994 시즌 시작을 메이저리그에서 했지만 곧바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며 "1995년 노모가 LA 다저스에 입단해 동양 야구 선수들에게 메이저리그의 문을 활짝 열어줬다. 나 역시 노모가 열어 놓은 문으로 다시 메이저리그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돌아봤다.

노모는 1995년 일본프로야구 킨테츠 버팔로즈(현 오릭스)를 떠나 LA 다저스에 입단했다. 데뷔 시즌부터 28경기 13승 6패, 평균자책점 2.54로 활약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96 시즌 33경기 16승 11패 평균자책점 3.19, 1997 시즌 33경기 14승 12패 평균자책점 4.25로 성공 신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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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는 이후 2008년 캔자스시티 로열스 생활을 끝으로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했다. 빅리그 통산 323경기 123승 109패 평균자책점 4.24의 발자취를 남겼다.

노모는 1995년 내셔널리그 신인왕과 탈삼진왕, 2001년 아메리칸리그 탈삼진왕을 차지하며 동양인 투수를 바라보는 메이저리그의 시선을 완전히 바꿔놨다. 아시아 선수들이 충분히 미국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걸 입증한 선구자다.

박찬호는 "다저스 시절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올라가서 노모와 팀 메이트로 함께했다. 그때부터 동양인에게 메이저리그의 문이 활짝 열렸고 지금 단단하게 자리잡았다고 생각한다"며 "다르빗슈 유, 스즈키 이치로, 류현진, 김하성, 추신수를 비롯해 대만 선수들까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게 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노모 히데오라는 나무가 메이저리그에서 튼튼히 자랐고 박찬호라는 나무도 자랄 수 있었다"며 "그 나무에서 열린 열매가 또 다른 동양인 메이저리그를 배출했다. 앞으로 더 많은 아시아 유망주들이 훌륭하게 성장해서 메이저리그 무대에 도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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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는 그러면서 자신이 노모의 메이저리그 기록을 넘어설 수 있었던 데는 노모라는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자신의 빅리그 커리어가 단절될 뻔했던 순간 노모를 떠올리며 용기를 얻었다.

2007년 뉴욕 메츠에서 단 1경기만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뒤 줄곧 마이너리그에서 머무르고 있을 당시 노모를 생각하면서 권토중래를 노렸다고 회상했다.

박찬호는 2006년까지 빅리그 통산 113승을 기록 중이었다. 2008년 다저스에서 4승, 2009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3승, 2010년 뉴욕 양키스에서 2승,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2승을 더해 124승 고지를 밟을 수 있었다.

박찬호는 "2007년 시즌 대부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냈다. '내 메이저리그 커리어가 여기까지인가?'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며 "노모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더 용기를 냈다. 노모의 (123승이) 내가 재기하는 데 큰 목표가 됐다"라고 덧붙였다.

사진=고척, 김한준 기자/박지영 기자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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