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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HI★초점] K팝 팬덤 문화, 이대로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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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나, 이재욱과 열애 인정 후 자필 사과문 게재
팬들의 소비로 구축된 아이돌 문화, '보상 욕구' 키워
아이돌을 상품 아닌 인격체로 바라봐야...자성 필요성 대두
한국일보

그룹 에스파 카리나는 최근 배우 이재욱과의 열애를 인정했다가 일부 팬들의 비난 속 사과문을 게재했다. 카리나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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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예계를 뜨겁게 달군 사건이 있었다. 그룹 에스파 카리나가 배우 이재욱과의 열애를 인정한 뒤 일부 팬들의 트럭 시위와 비난 속 사과문을 게재했던 일이다.

카리나는 지난 2월 이재욱의 열애설이 보도된 이후 소속사를 통해 열애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후 일부 팬들은 카리나의 열애 인정에 분노를 표하며 악플을 쏟아냈고, 중국 팬으로 알려진 이들은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앞으로 트럭을 보내 '트럭 시위'까지 펼쳤다.

해당 트럭 시위 전광판에는 "카리나는 7년 동안 노력한 자신에게 미안해야 한다. 당신이 직접 당신의 진로를 망쳤다. 당신의 모든 노력이 하나의 연애로 인해 모두 부정되고 있다. 당신은 만족하냐?"라는 질책성 내용이 담겼다. 또 다른 트럭에는 "카리나 팬이 너에게 주는 사랑이 부족하냐. 당신은 왜 팬을 배신하기로 선택했나. 직접 사과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하락한 앨범 판매량과 텅 빈 콘서트 좌석을 보게 될 것"이라는 협박성 문구가 실려 충격을 자아냈다.

협박성 압박에 카리나는 결국 자필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는 해당 사과문에서 "그동안 저를 응원해준 마이들이 얼마나 실망했을지 그리고 우리가 같이 나눈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속상해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 마음을 저도 너무 알기 때문에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라며 "혹여나 다시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무릅쓰고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데뷔한 순간부터 저에게 가장 따뜻한 겨울을 선물해준 팬분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이들이 상처받은 부분 앞으로 잘 메워나가고 싶다. 미안하고 많이 고맙다"라고 수차례 사과의 뜻을 밝혔다.

카리나의 '열애 사과문'은 K팝 팬덤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외신 역시 아이돌 멤버에 대한 팬들의 과도한 간섭과 통제 욕구에 주목하며 "K팝 산업의 압박이 스타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영국 BBC는 "한국과 일본 가수들은 팬들의 압박이 심하기로 악명이 높은 산업에서 일하기 때문에 사생활 공개가 어렵다"라며 "지금도 열애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금기시 되고 있다"라고 K팝 팬덤 문화를 바라봤다.

외신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회의적이다. 상당수의 대중들은 범법 행위를 저지른 것도 아닌, 아이돌 멤버가 열애를 인정했다는 사실 때문에 사과문까지 작성해야 하는 상황을 비정상적인 문화라 꼬집었다.

실제로 카리나의 열애에 비난을 쏟아낸 일부 팬들의 주장은 도를 넘은 수준이다. 이들은 '팬들이 해당 아이돌 멤버(그룹)를 위해 앨범을 구매하고 콘서트, 팬미팅 등에 참석하면서 많은 돈을 쓰는 만큼 아이돌들은 사생활을 통제하라는 팬들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라는 식의 논리를 펼치며 지금도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일명 '큰손'으로 불리는 팬들의 소구력이 아이돌 그룹의 성적이나 수익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혹은 그룹)을 위해 거금을 들여왔던 팬들의 경우 멤버의 열애에 실망감을 가질 수 있다. 다만 이것이 아이돌 멤버들에 대한 지나친 사생활 통제와 간섭에 당위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K팝 시장에서 활동 중인 아이돌의 상당수가 카리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 처해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팬덤 문화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팬덤 문화가 일종의 소비 문화가 되면서 소비한 만큼의 보상 욕구 등을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문화로 변해가고 있다"라며 "하지만 아이돌은 상품이 아닌 사람이고,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사생활의 보장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바라봤다.

문제는 이러한 팬 문화가 구축된 배경이다. 정 평론가는 "아이돌 그룹을 제작한 기획사에서 과도하게 팬덤을 활용한 소비를 부추기다 보니 어마어마한 소비를 했던 팬의 입장에서는 보상 심리가 커질 수 밖에 없다"며 팬덤을 상대로 한 기획사들의 과도한 소비 조장에 대한 고민도 수반돼야 함을 강조했다. 실제로 현재 K팝 아이돌 시장은 팬들의 소비를 기반으로 구축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룹의 성공에 있어 팬들의 소비는 절대적인 요소인 만큼 기획사들은 아티스트들의 IP를 활용한 공연과 굿즈, 콘텐츠 등을 끊임없이 만들어냈고, 팬들의 소비를 도모했다. 작금의 팬 문화와 의식을 무조건 팬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분명 K팝 아티스트에 대한 인식은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를 위해선 팬들의 자성과 기획사들의 고민이 수반돼야 한다. 정 평론가 역시 "일각의 과도한 팬문화에 대한 자정 흐름이 필요하다고 본다"라며 "팬덤 문화에는 일종의 과열된 양상이 항상 들어가 있는데,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성적으로 쿨다운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사실 어렵다. 지나치게 쿨다운이 될 경우 팬덤이 와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균형을 맞춰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기획사 역시 과열된 팬심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아티스트와 팬 사이에 거리를 지켜야 한다는 룰이 암묵적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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