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음주운전’ 사고의 그날…454일 만에 대법원 확정 판결
1심 징역 20년 구형에서 선고된 징역 7년…항소심에서는 징역 5년 감형→대법서 확정
사고 후 붙었던 추모 포스트잇 메시지…눈물 흘린 근처의 자영업주
공개 토론회서 눈물지었던 아버지…사고 3개월여 후에야 들어선 아동 보행로
2022년 12월8일 정오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음주운전 사고 현장 인근의 한 건물 외벽에 아이들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메시지가 붙어 있다. 김동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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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던 2022년 12월2일 오후 4시57분쯤, 방과 후 수업을 마친 초등생 3학년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 만취 상태로 운전하던 30대 남성 A씨의 차에 치여 숨졌다. 평소 익숙하게 다니던 학교 후문 근처에서다. 등·하굣길 아이들 웃음으로 가득했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근처에는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같은 학교 학생들과 ‘만취 운전’을 대신 사과하는 어른들의 추모 메시지가 수십장 붙었다. 아래는 그날부터 대법원에서의 판결이 확정되기까지의 이야기다.
①2022년 12월8일
사고 현장을 살피던 중, 눈물짓던 한 시민이 눈에 띄었다. 근처에서 자영업 중인 업주였다. 사고가 믿기지 않는 듯 포스트잇 메시지들과 학교 후문을 보던 그는 생업 중인 탓에 길게 슬퍼할 여유도 없이 자신이 운영하는 매장으로 훌쩍 들어가야 했다. 포스트잇 한 장에 글을 남기는 게 보통인데, 사고에 분노한 이유인지 4장을 나눠 ‘나’, ‘쁜’, ‘범’, ‘인!!’이라 적은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느낌표를 붙여 강한 억양으로 읽힌 메시지는 친구의 목숨을 앗아간 데 대한 어느 초등생의 분노였다.
이 학교 후문을 돌아 내리막길로 걸으면 나오는 다른 교문에는 ‘아동용 탄원서’ 수십장이 서명 칸이 공란인 채로 놓였다. ‘우리 ○○○ 어린이가 억울하지 않도록 진실을 밝혀 운전한 사람을 강력하게 처벌해주세요’라는 글이 적혔다. ‘주민용(학부모용)’으로 별도 제작된 탄원서는 ‘피어보지도 못한 작은 생명을 앗아간 사고의 결과를 고려하면, 이 사건 사실 관계는 어느 사건보다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한다’는 강경 메시지가 포함됐다. 취재 전날(2022년 12월7일) 서울 강남경찰서에는 학부모와 주민 등 총 2920명이 서명한 탄원서가 전달됐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로 지난해 2월3일 오전 10시30분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스쿨존 어린이 교통사고, 왜 제자리인가’ 토론회에서 서울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인근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하교 중 음주운전 차에 치여 숨진 아들(사고 당시 9세)을 떠올리며 아버지가 발언을 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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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2023년 2월3일
서울 강남구가 지역구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스쿨존 어린이 교통사고, 왜 제자리인가’ 제목 토론회에 숨진 아동의 아버지가 처음 등장했다. 아들을 떠나보낸 지 두 달여 시점에서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들이 생각날 때면 그리움이 밀려와 (그 그리움이) 잔잔해질 때까지 목 놓아 울 수밖에 없다”고 암흑 같은 현실을 그대로 전했다.
‘9년1개월’ 짧은 세월 가족과 함께 있어 준 아들이 ‘하늘의 별’이 됐다며, 그는 “아들의 평소 마음을 고려하면 다시는 이런 일이 동생, 친구, 초등학생들이 될 후배들에게 생기지 않기를 바랄 것으로 확신한다”고 언급했다. 숨진 아동의 생전은 주변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다는 얘기로 들렸다.
강수철 도로교통공단 본부장은 물리적인 분리가 불가능하다면 차도 폭을 좁혀서라도 보행로의 적정 폭 유지가 중요하다면서 도로폭이 좁다면 ‘일방통행’으로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허억 가천대 행정학과 교수도 “보도가 없는 그냥 차도”라며 “어른들이 (운전하기) 불편하더라도 (환경을 개선)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언북초 학부모운영위원장으로 이후 세계일보와 몇 차례 소통했던 권순호 변호사는 보행자 안전과 차량의 원활한 통행을 위해 필요하다면 보도를 설치‧관리할 수 있다는 현행 ‘도로법’ 규정이 의무가 아닌 점을 지적하면서 개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지난해 3월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후문 인근 도로에 어린이보호구역 안내와 일방통행 등 노면 표시가 새겨져 있다. 학교 담장을 따라서는 인도와 보행자 보호를 위한 울타리가 설치됐다. 김동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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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2023년 3월13일
이러한 목소리가 그나마 반영된 덕분일까. 사고 발생 4개월 후, 언북초 인근 어린이보호구역 도로 총 574m 구간의 보행환경 개선 공사가 진행됐다. 어린이보호구역 안내 표지와 일방통행 등 노면 표시가 새겨졌고, 학교 담장을 따라서는 새로 놓인 인도도 눈에 띄었다. 보행자 보호를 위한 울타리도 설치돼, 차량이 양방향으로 통행하고 인도 없이 ‘스쿨존 학교 앞’ 등 적힌 안내판 여러 개가 놓였던 사고 후 현장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사고 전부터 이러한 환경이었다면 많은 이들이 슬퍼할 일은 애초부터 없었을 것이었다.
2022년 12월8일 정오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음주운전 사고 현장 인근의 한 건물 외벽에 어른이 쓴 것으로 보이는 메시지가 붙어 있다. 김동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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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2023년 5월31일
1심 판결은 사고 발생 후 6개월 가깝게 흘러서야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최경서 부장판사)는 어린이보호구역치사·위험운전치사·도주치사·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선고공판에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검찰 구형량 징역 20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수준이었다.
재판부는 A씨에게 도주 의사가 있었다면 사고 현장 인근 주거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20여m 거리에 떨어진 곳에 위치해 금세 발각될 가능성이 있는 주거지 주차장으로 A씨가 들어가기보다는 사고 현장에서 직진해 멀리 달아나는 것이 도주 의사에 부합하는 행동이라면서다. A씨가 피해 아동을 ‘역과(轢過·자동차 바퀴가 사람이나 물체를 깔고 지나감)’한 직후부터 다시 사고 현장에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총 45초이며, 주차 후 다시 나오는 시간 등을 고려했을 때를 뺀 짧은 시간에 A씨가 현장에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A씨가 사고 현장에서 즉시 차를 멈추지 않은 데 관해서는 자신이 사고로 어린아이를 친 사실을 깨달은 것으로 보이며, 그 점에 당황한 나머지 바로 차를 세우지 못한 채 주차장 입구까지 운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재판부는 덧붙였다. 현장에 돌아온 A씨가 현행범으로 체포되기 전까지 다시 떠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고, 언북초 학교보안관이 A씨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점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A씨가 자신이 가해자라고 밝힌 점 등을 고려했다.
재판부는 “9세에 불과한 피해자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꿈을 펼쳐보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며 “가족은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충격과 고통을 입었다”고 밝혔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아들을 보는 가족의 절망감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며 무엇보다 유족이 피고 엄벌을 원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이전까지 피고가 아무런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고, 가족과 지인이 선처를 구한다”며 “종합보험에 가입됐고 3억5000만원을 공탁한 점, 암 투병 중인 점 등을 피고에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부연했다.
1심 판결문 낭독은 무려 40분 가까이 이뤄졌다.
피고인 측과 검찰은 모두 항소했다.
유족 측은 세계일보에 보낸 입장에서 “혈액암 때문에 (피고인이) 수감생활을 못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항소심에서 지병을 내세운 피고인 측의 감형 호소에 ‘거짓말’이라는 취지의 강한 반박이었다. 이날 항소심 첫 번째 공판에서 A씨의 변호인은 “염치없지만 피고인은 현재 백혈병에 걸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라 구금생활을 버텨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며, 피고인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형량을 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7년형이 종신형이 될 수도 있다’던 변호인 주장에 “건강이 좋지 않으니 형량을 줄이라는 건 좀 그렇다”며 수긍하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 항소심에서 A씨에게는 징역 5년이 선고됐다.
음주운전을 하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초등생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A씨가 2022년 12월9일 오전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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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2024년 2월29일
2심에서의 징역 5년 선고는 사건 최초 발생 454일 만에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대낮 음주운전으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학교 후문 앞에서 하늘나라로 보낸 자에게 고작 5년 형량이 내려지는 게 진정 정의냐”며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던 유족 입장은 ‘양형 기준’에 대한 사회적 화두를 던질 것으로도 보인다.
항소심에서의 A씨 감형은 범죄 공소사실과 관련해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다는 재판부 판단에 따른다. 상상적 경합은 한 개의 범죄 행위가 여러 개 죄에 해당하는 경우를 뜻한다. 동일인이 별개 범죄를 여러 가지 범했다고(실체적 경합) 본 1심과 달랐다. 형법 40조는 이 같은 경우 가장 무거운 범죄에 대해 정한 형으로 피고인을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A씨 뺑소니는 무죄로 판단하면서도 나머지 혐의를 전부 유죄로 인정해 내려진 1심에서의 징역 7년은, 유무죄 판단은 같게 유지하지만 경합범 처리에 관한 판단이 달라진 이유로 징역 5년으로 줄어들었다.
항소심 재판부가 위험운전치사와 어린이보호구역치사를 경합 처리한 뒤 죄질이 더 무거운 위험운전치사죄를 기준으로 형량을 정했는데, A씨에 대한 법원의 심리 결과를 위험운전치사죄 양형기준에 대입하면 권고 형량은 징역 2~5년이었다. 기소 이후인 지난해 4월 정립된 어린이보호구역치사 범죄의 양형기준에 따라도 권고 형량은 징역 2~5년이다. 음주운전은 징역 8개월~1년4개월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이 사건 관련 유족의 피해회복을 위한 공탁금을 기탁했지만 유족 측이 수령 거부 의사를 밝힌 만큼, 공탁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 고려했다. 다시 말해 공탁은 유의미한 요소로 보지 않았다는 얘기다. 피해 회복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피고인의 감형을 목적으로 막무가내식 이뤄지는 ‘공탁’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사건으로 언급된 대목이기도 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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