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상고 기각…유족 "현저히 적은 형량, 희망 처참히 무너져"
학교 앞 추모 메시지들 |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서울 강남의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초등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40대에게 징역 5년이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어린이보호구역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고모(41)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29일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위험운전치사죄의 성립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고씨는 2022년 12월 2일 오후 4시 57분께 서울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앞에서 술을 마시고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운전하다 하교하던 만 9세 초등학생 피해자를 들이받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고씨의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128%로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검찰은 고씨에게 술에 취해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운전해 타인을 숨지게 한 점에 '위험운전치사' 혐의를,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안전 의무를 위반해 피해자를 숨지게 한 점에 '어린이보호구역치사' 혐의를, 술에 취해 운전한 행위 자체에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를 각각 적용했다.
아울러 고씨가 사고 사실을 알고도 피해자를 구조하지 않고 도주했다고 보고 도주치사(뺑소니) 혐의를 추가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그러나 고씨가 20∼30m 떨어진 곳에 차량을 주차하고 즉시 현장으로 돌아온 점, 소극적으로나마 구호 조치에 임한 점 등을 토대로 뺑소니는 무죄라고 판단했다.
1심은 고씨의 나머지 혐의는 전부 유죄로 인정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2심은 유무죄 판단은 동일하게 유지하면서도 경합범 처리에 관한 판단을 달리해 징역 5년으로 형을 줄였다.
1심은 이 사건을 동일인이 별개의 범죄를 여럿 범한 경우(실체적 경합)로 봤지만 2심은 하나의 행위가 여러 범죄를 구성하는 경우(상상적 경합)로 봤다. 상상적 경합이면 가장 무거운 죄에 대해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
이에 따라 위험운전치사와 어린이보호구역치사를 경합 처리한 뒤 죄질이 더 무거운 위험운전치사죄를 기준으로 형량을 정했다. 위험운전치사는 징역 3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는 중범죄다.
실질적으로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한 양형기준이 중요한데, 상상적 경합은 원칙적으로 양형기준이 적용되지 않지만 항소심 법원은 이를 참고해 형량을 정했다.
고씨에 대한 법원의 심리 결과를 위험운전치사죄 양형기준에 대입하면 권고 형량은 징역 2∼5년이었다.
기소 이후인 작년 4월 정립된 어린이보호구역치사 범죄의 양형기준에 따라도 고씨의 권고 형량은 징역 2∼5년이다. 음주운전의 경우 징역 8개월∼1년4개월이다.
항소심 법원은 이를 참고해 고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고씨가 항소심까지 5억원을 공탁했지만 유의미한 요소로 보지 않았다. 다만 초범이고 종합보험에 가입돼 피해 보상이 가능한 점은 유리하게 보았다.
항소심 법원은 "양형은 피고인 개인의 죄책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범위 내의 것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검찰과 고씨가 각각 불복했으나 대법원은 이날 원심판결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양측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고씨의 경우 상고하면서 형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부적법한 상고이유"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형사소송법과 대법원 판례에 따라 10년 미만 징역형이 선고된 경우에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양형을 다툴 수 없다.
피해자 유족은 대법원 선고 이후 취재진에 "다른 어린이 보호구역 음주 사망 사건에 비해 현저히 적은 형량이 나온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희망이 처참히 무너졌다"고 말했다.
wat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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