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을 두고 의료공백이 심화하고 있다. 25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서 구급대원이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구급차에 태우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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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의 충돌이 격화하고 있다. 정부는 원칙적 대응을 강조하며 의사 면허 취소까지 갈 태세다. 의료계는 인턴 임용 포기 등의 극단적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다행히 의대 교수들이 중재에 나서기로 해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시작했다.
의사 파업은 여느 집단과 다르다. 의사를 대신할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의사 집단은 독점적 면허증을 십분 활용한다. 이런 점 때문에 정부가 2020년 파업 때 전공의 10명을 고발했다가 취소해야 했다. 이들은 정부 압박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정부 대응은 여느 때보다 강하다. 2022년 12월 화물연대가 보름여 만에 파업을 접은 전례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화물연대 파업은 생명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화물연대 노조원은 하루하루 생업에 매달리지만 의사는 꼭 그렇지 않다. 의료계는 의대 증원에 대한 압도적 여론 지지도 무시한다.
정부의 과오도 의료계의 반발에 한몫 했다. 2010년 보건복지부의 고위관계자는 중앙일보 취재진에게 두꺼운 파일을 보여줬다. 40여가지의 의료개혁 과제였다. 그러나 14년 지났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저출산 여파로 산부인과가 위험하면 곧 소아청소년과가 무너질 게 뻔한데도, 흉부외과에 이어 신경외과가 무너질 게 예상되는데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암·심장병 등 4대 중증질환 부담 완화에, 문재인 정부는 '비급여의 급여화'라는 보장성 확대에만 매달렸다.
국내 병상의 90%는 민간병원에 있다. 경제개발에 자본을 쏟았고, 의료는 민간에 맡겼다. 의사는 "우리 힘으로 성장했는데, 왜 정부가 간섭하느냐"고 반발한다. 민간 중심 의료이다 보니 정부의 힘이 잘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정부가 의사 양성을 지원하지 못한 것도 정부의 약점으로 작용한다.
'자본주의 의료' 대명사인 미국도 메디케어(노인건강보험)에서 전공의 교육비로 연간 20조원 넘게 쓴다. 한국은 거의 안 쓴다. 게다가 의사는 엄청난 경쟁을 뚫었고, 주 80시간 고생해서 전문의가 된다는 선민의식이 강하다. 한 원로 의사 A씨는 "의사들은 의대 증원마저 간섭이자 이권침해로 받아들인다"며 "이런 집단에 맞서는 정부의 좀 더 정교한 전략이 아쉽다"고 말한다.
2035년 의사 1만명 부족은 분명해 보인다. 보건사회연구원·서울대의대·한국개발연구원(KDI) 등 내로라하는 전문기관이 추계했다. 그런데도 믿지 않는다. 정부와 의사의 신뢰가 매우 허약하다. 의사는 비타협적이다. A씨는 "의사집단은 타협·협상이란 걸 잘 모른다"고 말한다. 의료계는 복잡하다. 월급쟁의와 개업의사 생각이 다르다. 진료과목 간에도 이해가 엇갈린다. 의사협회는 개원의 중심으로 움직인다. 정책 대응 능력이 약하고, 주로 수가 인상에 집중한다. 의료계를 아우르는 리더십과 정책연구자가 드물다.
이러다보니 2000명 증원의 배경을 설득해도 잘 먹히지 않는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정부가 이대로 반드시 간다고 천명하되 진정 어린 보건의료 정상화 과정이라고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2020년 파업 때 정세균 당시 총리는 의협과 전공의를 만나 설득했다.
또 다른 대안은 2000명을 좀 낮추는 것이다. 1만명 부족하다고 해서 정부의 증원 방식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보사연 추계의 책임자인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1000명씩 10년 늘린 뒤 그 때 재평가하자"고 제안한다. KDI 권정현 연구위원도 같은 의견이다.
의료계도 여기서 멈춰야 한다. 21세기 들어 영국·독일·인도·수단 등 9개국의 의사가 파업했지만 의대 증원 반대 파업은 없었다. 진료 독점권이 국민을 볼모로 잡는 무기일 수 없다. 일본 의사는 1970년대 한 달 넘게 파업했다. 일본의사회 카마야치 사토시 상임이사는 지난해 12월 중앙일보 취재진에게 "1970년대 당시 ‘의사가 국민 생명을 두고 장난 친다’는 비판을 엄청 받았다. 이후에는 정책에 반대 의견을 내지만 파업이라는 선택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사는 환자 곁에 있어야 가장 잘 어울린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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