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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 칼럼] 알리·테무 공습에 무너지는 유통 생태계

조선비즈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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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 칼럼] 알리·테무 공습에 무너지는 유통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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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쇼핑 애플리케이션(앱) 알리익스프레스(이하 알리)와 테무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달 알리의 월간 활성 이용자수(MAU)는 약 717만 명으로 1년 새 두 배로 뛰었다. 테무의 성장도 무섭다. 모바일 빅데이터 기업 아이지에이웍스 통계에 의하면, 지난달 테무 앱 신규 설치 건수는 약 222만 건으로 전체 1위였다.

로켓배송으로 국내 유통 시장을 장악한 쿠팡의 성장 속도보다 더 빠르다는 평가다.

알리와 테무의 성장 비결은 초저가에 있다. 해외 배송비를 고려하면 “이렇게 싸게 팔아서 남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다. 테무는 아예 캐치프레이즈를 ‘억만장자처럼 쇼핑하기(Shop like a Billionaire)’라고 걸었다. 싸니까 많이 사라는 의미다.

물건 10개를 주문하면 절반 정도가 쓸 만한 수준이지만, 고객들은 ‘너무 싸다’는 이유로 애초에 품질에 대한 기대가 없다.

오히려 젊은이들 사이에선 이런 상황을 콘텐츠로 만들어 소비하는 ‘알리깡·테무깡’이 유행한다. 중국 쇼핑 앱에서 초저가 물건을 대량 구매한 뒤 이를 언박싱(상품 개봉)하는 동영상 콘텐츠를 소셜미디어(SNS)에 올려 조회수를 높여 돈을 버는 것을 뜻한다.


국내 플랫폼에서 파는 것과 똑같은 제품을 더 싸게 살 수도 있다. 소비자로선 어차피 국내에 파는 것도 ‘메이드 인 차이나’인데 같은 제품을 더 싸게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배송비와 할인 쿠폰 혜택도 크다.

인플레이션의 시대, 저렴한 상품과 서비스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는 플레이어인가에 대해선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알리·테무는 중국산 초저가 직구 제품을 판매하는 특성상 대부분 물건이 관세나 KC 인증 없이 국내 시장에 무분별하게 흘러 들어온다.


똑같은 중국산 물건을 수입해 국내 온라인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유통업체들이 관·부가세를 붙이고, 인증을 받느라 원가에 마진을 30% 붙여 파는 순간 이미 경쟁력은 떨어진다.

이런 이유로 알리에서 물건을 싸게 산 후 마진을 붙여 쿠팡이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의 플랫폼에서 재판매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중국산 제품들을 국내 시장에 유통하기가 쉬워진 것이다.

1~2만원 수준의 저가 소비재를 취급하는 중소 유통업체들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이들은 알리, 테무로 인해 점유율이 10~20%는 날아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플랫폼뿐 아니라 유통 생태계 전체의 생존 위기”라고 진단했다.


이제 중국 쇼핑 앱들은 해외 직구(직접 구매)를 넘어 한국 제조기업들을 ‘수수료 0%’ 조건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LG생활건강을 시작으로 동원, 대상, 삼양, 풀무원 등 국내 식품업체들이 알리의 한국산 상품 판매 채널인 ‘K베뉴’ 입점을 추진하고 있다. 알리는 또 신선식품 카테고리까지 확장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막대한 자금을 가진 중국 앱이 국내 시장을 점유한 후 수수료를 올리는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국 쇼핑 앱의 시장 잠식은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사안이다. 미국의 경우 중국 물건에 한해 직구 면세(800달러) 한도를 축소하고, 위구르족 강제 노동 금지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회의 요구가 나오고 있다. 유럽·멕시코 등도 해당 문제 대한 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이제서야 상황 파악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4일 국내 이커머스 업계 실무진들을 불러 관련 의견을 청취하는 간담회를 가졌다. 이커머스 업계에선 이 자리에 참석한 산자부 관계자가 중국 앱의 무관세 문제에 대해 이날 처음 알았다는 말이 전해진다.

다행히 공정위가 추진하던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 제정은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다. 플랫폼법은 거대 플랫폼이 독자적 지위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지배적 사업자를 지정해 규제하도록 한 제도인데, 문제가 되는 중국 플랫폼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국내 플랫폼만 규제하는 역차별이 발생할 거란 지적이 나왔다.

일각에선 플랫폼법 제정이 연기된 건 미국의 반발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오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어찌 됐든 플랫폼법을 당장 추진하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불황기, 초저가 상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막을 순 없다. 다만 이로 인해 국내 유통 산업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 안보 및 공정 거래를 위한 정부와 업계의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 직구와 역직구 과정에서 세금과 통관 절차 등의 제도엔 문제가 없는지, 산업의 체질을 강화하는 근본적인 방안은 무엇인지 대책 마련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김은영 채널팀장]

김은영 기자(key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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