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동규, 유족들 품에 안겨 고교 졸업식 참석하던 날
친구들과 나란히 서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동규군의 어머니 안영선씨가 지난 7일 김군이 생전에 다니던 서울 강남구의 한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김군의 영정을 들고 참석해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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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졸업장 받는 순간
꽃다발 든 외할머니 흐느껴
“학교 가는 게 좋다던 아이
꼭 졸업시켜주고 싶었다”
“엄마, 사진 찍어줘!”
지난 7일 오후 서울의 한 고등학교 강당. 검은색 졸업가운을 입은 학생들이 사각모를 들고 옹기종기 모여 사진을 찍었다. 졸업식을 앞둔 자녀들에게 꽃다발을 안겨주는 가족들이 환하게 웃었다. 강당 앞쪽에 앉아있던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동규군 어머니 안영선씨(48)는 차마 그 모습을 바라보지 못했다. 안씨의 품에는 교복을 입은 아들의 영정이 들려있었다.
졸업식이 시작되고 김군의 이름이 제일 먼저 호명됐다. “이 사람은 고등학교 3년 전 과정을 수료해 이 졸업장을 수여합니다.” 아들 대신 단상에 오른 안씨가 졸업장을 받았고, 함께 올라간 외숙모 이경희씨(41)가 조카의 영정을 들었다. 김군의 외할머니 정애자씨(69)는 손주에게 건네지 못한 꽃다발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이고 숨죽여 울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조용한 박수소리가 나왔다.
2022년 10월29일 고등학교 2학년이던 김군은 학교 친구들과 이태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학교는 김군의 동기들이 졸업한 이날 김군과 친구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안씨가 학교를 좋아하던 아들을 생각해 졸업식 참석을 문의하자 학교에서 가족들을 초대했다. 안씨는 “동규가 ‘학교 가는 게 너무 좋다’고 말하던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며 “학교 가는 것을 그렇게 즐거워했으니 고등학교 졸업을 시켜주고 싶었다”고 했다.
안씨는 “졸업식에서 한 어머니가 ‘우리 아들 졸업 축하해’라면서 아이를 안아주는데 너무 부러웠다”면서 “동규가 스무살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 자주 얘기하곤 했는데 올해 스무살이 된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김군의 생전 모습을 온전히 담은 건 앳된 영정사진뿐이다. 고등학교 입학 이후 찍은 사진은 코로나19 탓에 대부분 마스크를 쓴 채여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많이 성장한 김군의 얼굴을 제대로 담지 못한다.
‘다 큰 아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안씨는 아들이 듬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30대를 상상해보는 수행평가 과제에 김군은 ‘경기도권에 마당 있는 집을 사서 엄마와 동생, 고양이 2마리와 함께 사는 모습’이라고 썼다. 안씨는 “18세 동규가 그리던 30대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었나보다”라면서 “차라리 꿈이 거창하면 모르겠는데 너무나 평범한 일상조차 누리지 못하고 떠났으니 마음이 더 아프다”고 했다.
안씨는 졸업식에 간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속상하긴 하지만 졸업식은 지금 아니면 할 수 없지 않느냐”면서 “마음이 아파서 울긴 했지만 그래도 졸업식에 가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씨에게 남은 과제는 아들이 왜 집에 돌아오지 못했는지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 사망 추정 시각이 참사 당일 오후 10시15분으로 기록된 김군은 오후 10시까지도 엄마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안씨는 “한순간에 아이를 잃을 것을 상상하면 이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기 무섭기만 하다”면서 “동규의 동생을 위해서 그리고 동규에게 얘기해주기 위해서 왜 엄마에게 돌아오지 못했는지 꼭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졸업식 직후 가족들은 추모관으로 향했다. “동규야! 너 졸업했어. 우리 아들 졸업 축하해.” 안씨가 대신 받아온 졸업장을 안치단 앞에 들어 보였다. 할머니 정씨는 안치단 대신 창밖을 보며 흐느꼈다. 졸업장을 매만지며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던 두 사람은 김군에게 눈물 섞인 축하 인사를 전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학교 다니느라 고생했어. 거기서라도 우리 동규 하고 싶은 것 다 이루고, 하고 싶었던 공부도 다 해 동규야. 졸업 축하해.”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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