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고려 금속공예 정수 꼽혀
일제때 유출-보스턴미술관서 구입
사리는 ‘성물’ 감안 조계종에 기증
사리구는 임시대여 ‘반쪽 환수’… “불법 밀반출 증거 발견땐 환수 가능”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 ‘은제도금 라마탑형 사리구’와 그 내부에 봉안된 5기의 소형 사리구들. 14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리구는 높이 22.5cm로, 라마교 불탑 모양을 본떴다. 공예기법이 정교한 데다 고려 금속공예품 자체가 희귀해 국보급 유물로 평가받는다. 문화재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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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고려 금속공예의 정수로 꼽히는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 ‘은제도금 라마탑형 사리구(舍利具·사리를 보관하는 용기)’가 환수가 아닌 임시 대여로 국내에 들어온다. 다만, 사리구 안에 든 사리는 조계종으로의 기증이 결정됐다. 사리와 사리구의 일괄 환수를 추진하던 정부의 당초 방침에서 후퇴한 것으로, ‘반쪽짜리 환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재청은 “보스턴미술관이 소장한 라마탑형 사리구를 일정 기간 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이와 별개로 사리는 조계종에 기증하기로 미술관과 합의했다”고 6일 밝혔다. 고승(高僧) 등의 유골인 사리의 경우 불교에서 성물(聖物)로 여겨진다는 점을 감안해 미술관이 올해 부처님오신날(5월 15일) 이전에 조계종에 기증하기로 했다.
그러나 2009년부터 정부가 환수를 추진한 국보급 유물인 사리구는 임시 대여로 합의됐다. 미술관이 “사리구가 불법으로 유출됐다는 증거가 없는 한 환수에 동의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임시 대여 기간에 전시와 보존처리를 진행할 계획이다.
앞서 2009년 미술관은 계속된 반환 요청에 사리만 반환할 수 있다고 제안했으나, 문화재청은 사리와 사리구가 하나의 세트를 이루는 유물이기에 사리만 반환받을 수 없다는 방침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 방미를 계기로 김건희 여사가 보스턴미술관장을 만나 사리구 반환 논의 재개를 요청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후 조계종 주도로 미술관과의 반환 협상이 이뤄졌다.
문화재계에서는 사리구가 80여 년 만에 국내에서 공개되는 의미는 크지만, 향후 사리구 반환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리구 대신 사리만 가져가라는 미술관의 제안을 결국 받아들인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사리구는 본래 양주 회암사나 개성 화장사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유출됐다. 보스턴미술관 기록에 따르면 미술관은 1939년 일본의 유명 골동품상인 야마나카 상회로부터 사리구를 구입했다.
문화재계에서는 사리구가 불법으로 밀반출된 증거가 발견되면 보스턴미술관으로부터 반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문정왕후 어보의 경우 6·25전쟁 때 미군 병사에 의해 약탈된 사실이 확인돼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박물관으로부터 2017년 환수받았다. 문제는 사리구가 야마나카 상회의 손으로 들어간 경위를 밝히는 자료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 이에 따라 추후 관련 자료가 발견될 때까지 사리구 반환 협상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라마탑형 사리구는 14세기 금속공예품으로 당시 원나라의 강한 영향을 반영해 라마교의 탑 모양을 본떠 제작됐다. 사리구 안에는 팔각지붕 형태의 소형 사리구 5기가 들어 있다. 사리구에 새겨진 명문에 따르면 석가모니와 지공 스님(?∼1363), 나옹 스님(1320∼1376) 등의 사리 19과가 있었으나 현존하는 것은 4과다. 2013년경 사리구를 직접 조사한 주경미 충남대 강사는 “독특한 양식의 국보급 유물로 이런 양식의 고려 금속공예품은 다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평가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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