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조계종, 보스턴미술관과 합의
나옹선사 등 사리는 조계종에 기증, 사리구는 일정기간 임시 대여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유출된 뒤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고려시대의 ‘은제도금 라마탑형 사리구’. 사리는 기증으로 반환됐으나 사리구는 임시 대여로 국내에 들어온다. 문화재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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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유출된 뒤 현재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고려시대 스님들의 사리가 기증을 통해 국내로 돌아온다.
또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은제도금 라마탑형 사리구’는 임시 대여 형식으로 반입된다.
문화재청과 대한불교 조계종은 “보스턴 미술관과의 협의를 통해 부처님과 고려시대 스님들의 사리는 미술관이 조계종에 기증하고, 사리구는 미술관 내부 검토를 거쳐 일정 기간 동안 국내에 임시 대여하는 것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6일 밝혔다.
‘은제도금 라마탑형 사리구’(높이 22.2, 밑지름 12.1㎝)는 14세기 고려시대 금속공예품으로, 당시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라마탑형 구조다. 사리구 내부에는 소형의 ‘은제도금 팔각당형 사리구’ 5기가 별도로 안치됐다. 사리구 명문에 따르면 석가모니불 5과, 가섭불 2과, 정광불 2과, 지공선사 5과, 나옹선사 5과의 사리를 담았다.
하지만 지금은 석가모니불 1과, 지공선사 1과, 나옹선사 2과 등 총 4과의 사리가 남아 있다. 가섭불은 석가모니 이전에 출현한 과거 칠불(七佛) 중 6번째의 부처를, 정광불은 석가모니에게 미래에 성불하리라고 예언했다는 부처를 말한다. 지공선사(?~1363)는 고려시대 양주 회암사를 창건한 인도 출신 승려다. 나옹선사(1320~1376)는 공민왕의 왕사로 활동하는 등 불교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고려 말 불교공예의 정수라는 이 사리구는 고려 말 나옹선사의 입적 후 제작돼 회암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유출됐고, 보스턴 미술관은 1939년 미술상으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스턴 미술관도 원소장처를 회암사로 추정·기록 중이다.
문화재청·조계종 측은 이날 “반입 협상에서 사리는 사리구와 별개로 불교에서 신앙 대상인 성물이라는 점에서 보스턴 미술관이 올해 부처님오신날(5월15일) 이전에 조계종에 기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증 형식으로 반환된 사리와 달리 사리구는 보스턴 미술관의 거부로 국내에 ‘일정 기간 동안 임시 대여’만 가능하게 됐다. 앞으로 대여 기간, 방법 등의 구체적 내용은 다시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
‘은제도금 라마탑형 사리구’ 반환 협상은 2009년 시작됐다. 문화재청과 불교계에서는 사리와 사리를 봉안한 사리구를 하나로 보고 동반 국내 반입을 추진했다. 사리가 종교적 성물이라면 사리구는 당대 시대상을 담은 공예품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스턴 미술관은 사리와 달리 사리구 반환에는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미술관이 불법적으로 취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점 등을 강조하면서다.
5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서 고려시대 스님들 사리의 기증, 사리구의 임시대여에 합의한 조계종 혜공스님과 최응천 문화재청장·매튜 테이텔바움 보스턴 미술관장(왼쪽부터)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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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은 그동안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2013년 이후 사실상 협의는 중단됐다. 그러다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당시 보스턴 미술관을 찾은 김건희 여사가 반환 논의를 제안하면서 협의가 재개됐다.
15년 이어진 ‘은제도금 라마탑형 사리구’ 반환 협의는 결국 문화재청·불교계가 사리·사리구의 동반 반환 입장을 접으면서 사리의 반환, 사리구의 임시 대여로 마무리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당초 생각한 대로 사리·사리구 동반 반환의 성과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국내에 사리·사리구가 처음 들어온다는 데 의미를 둔다”고 말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조계종, 보스턴 미술관과 긴밀한 협력으로 남은 과제 일정을 착실히 추진할 것”이라며 “보스턴 미술관과는 상호 우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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