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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인터뷰] 미얀마 쿠데타 3년, 기자들도 군부에 체포·성학대 의혹… “그래도 끝까지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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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독립언론 '프런티어 미얀마'
벤 듀난트 편집장·타르 기자 인터뷰
"미얀마 현실 알리는 게 우리 사명"
한국일보

미얀마 독립 언론 '프런티어 미얀마'의 헤인 타르 기자가 2021년 3월 미얀마 양곤에서 촬영한 사진.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청년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타르 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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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노스 오칼라파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총격 소리가 들리더니 내 눈앞에서 세 사람이 쓰러졌다. 무기도 들지 않고 평화 시위에 나섰던 청년들이었다. 거리는 분노 섞인 울부짖음으로 가득했다. 나도 이들과 함께 울었다. 그러나 취재를 멈출 수는 없었다. 군부의 만행을, 시민들의 투쟁을 전해야 하니까.”

미얀마 독립 언론 ‘프런티어 미얀마’ 기자 헤인 타르(필명·26)는 2021년 3월 미얀마 양곤 북부 노스 오칼라파 타운십(구)에서 열린 쿠데타 반대 시위 취재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2021년 2월 1일 쿠데타로 집권한 미얀마 군부는 시민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기자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군부의 잔혹 행위를 국내외로 전하던 언론인들은 첫 번째 표적이 됐다. 사실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만으로 언론사가 해산되고 기자들은 체포됐다.

그러나 탄압을 무릅쓰고 이들은 손에서 펜을,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군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인권 탄압과 시민 저항을 묵묵히, 치열하게 기록하고 있다. 강도 높은 언론 통제에도 전 세계가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일을 생생하게 알 수 있는 까닭이자, 군부에 의해 역사의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다.

2015년 1월 양곤에서 출발한 영자 탐사보도 전문매체 프런티어 미얀마는 군부의 탄압을 피해 2021년 말부터 태국에서 미얀마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2022년 9월 이후 프런티어 미얀마 편집장을 맡고 있는 영국인 벤 듀난트(35), 2020년부터 이곳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미얀마인 타르를 지난달 17일과 18일 각각 화상으로 만나 쿠데타 발발 뒤 미얀마 언론의 분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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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독립 언론 '프런티어 미얀마' 편집장 벤 듀난트가 지난달 17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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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기자 최소 176명 체포


쿠데타 발발 3년, ‘기자’로 일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가 됐다. 군부는 ‘군사 정권(junta)’ 같은 단어를 쓰지 못하도록 제재하고 정부 비판 기사를 쓰는 언론사 운영을 중단시켰다. 예고 없이 집에 들이닥쳐 노트북, 휴대폰, 카메라 등을 수색하고 기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잡아갔다.

지난해 4월 국제언론인연맹(IFJ) 보고서에 따르면, 미얀마 쿠데타 이후 최소 176명의 언론인이 체포되고 4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기준으로 50명이 여전히 감옥에 있다. 군부는 기자의 가족과 친척까지 끌어가 고문하기도 했다.

듀난트 편집장과 타르 기자의 프런티어 미얀마 동료들도 위험을 피하지 못했다. 2021년 5월 당시 편집장이던 미국인 대니 펜스터는 양곤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타려다 체포됐다. 이후 열악한 환경과 고문으로 악명 높은 인세인 교도소에 6개월간 수감됐다. 프리랜서 칼럼니스트 시투 아웅 민트는 징역 12년형이 선고됐다. 타르 기자는 “한 동료는 단지 기차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50일간 구금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군부가 자사 남성 기자를 구타하고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프런티어 미얀마 기자 예몬은 2021년 10월 양곤에서 군부에 붙잡혔다. 이후 “취재원을 밝히라”거나 “다른 방에 있는 여성 수감자를 성폭행하라”는 교도관의 지시를 거부하자, 교도관들이 그를 고문하고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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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기자 예몬이 2022년 프런티어 미얀마에 쓴 기사. 자신이 구금 당시 경험했던 군부의 성학대에 대해 언급했다. 프런티어 미얀마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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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몬은 2022년 본인의 끔찍한 경험을 기사로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군인들이 심문 도중 남녀 모두에게 일상적으로 성폭력을 가했다는 점을 확신했지만, 대부분 피해자가 발언을 원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며 “나 역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침묵을 지키고 싶었지만 (군부의) 성학대가 일상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군부의 만행과 압박에 언론사들은 탈(脫)미얀마에 나섰다. 듀난트 편집장은 “미얀마 내에서 (쿠데타)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매우 위험해졌다”며 “기자들의 신원 보호를 위해 기사에 바이라인(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이름을 밝힌 줄)을 쓰지 않거나 필명을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취재원 연락 문제, 재정적 어려움도


군부가 눈과 귀를 틀어막으면서 취재 환경은 더욱 어려워졌다. 당장 미얀마 정부군의 인권 침해와 반인륜 범죄 현장에 접근할 길이 막혔다. 취재의 가장 기본인 ‘사람’을 만나기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누군가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려면 본인이 기자라는 사실을 밝혀야 하는데, 자칫 군부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타르 기자는 “쿠데타 이후 소스(취재원)와의 연결이 많이 끊겼다. 군부 위협 등을 이유로 종적을 감추거나 전화번호를 바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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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독립 언론 '프런티어 미얀마'의 토머스 킨(왼쪽) 전 편집장이 기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프런티어 미얀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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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으로 몸을 피하면서 체포 위협은 줄었지만, ‘원격 취재’가 쉽지 않다는 점은 어려움으로 꼽혔다. 익명에 더 많이 기대야 한다는 점도 고민이다. 안전상 이유로 취재원들이 자신을 드러내길 원치 않아서다. 듀난트 편집장은 “수집한 정보의 진위를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전화 등으로 크로스체크(추가 검증)를 강화하면서 이전보다 확인이 조금 더 오래 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미얀마 언론인들은 재정적 어려움과도 싸워야 한다. 광고 등 상업적 수익을 내기 어려워진 까닭에 구독료나 기부를 받지 않는 언론사의 기자와 직원은 생계를 이어가는 것도 쉽지 않다. 군부의 보복 가능성도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언론인 생활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권위주의와 고립의 시대를 끝내기 위한 투쟁은 위기 속에서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이들은 군부의 잔인함과 미얀마의 현실을 기록하는 게 자신의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듀난트 편집장은 “미얀마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더 많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전하는 게 프런티어 미얀마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타르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왜 일을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수백 번 넘게 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군부의 만행을 전해야 한다. 기록이 없다면 (쿠데타가) 세상에 알려질 수도 없고,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위험할 수 있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새로운 역사를 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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