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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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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1도 2도 아닌 제3당이 성공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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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쉽] 유럽 역사에서는 이런 조건을 갖춘 제3당이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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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쉽 네 줄 요약

· 제3당의 성공조건으로는 카리스마적 인물, 새로운 의제 설정, 변화를 갈망하는 사회분위기가 필요합니다.

·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혜성처럼 등장해 기존 정치를 뒤흔들었고, 창당 1년 만에 집권했습니다.

· 영국 노동당은 산업화로 인해 늘어난 노동자 계층에 호소하는 의제로 100년 가까이 유지되던 양당 구도를 무너뜨렸습니다.

· 독일 녹색당은 1968년에 분출된 변화의 에너지를 토대로 환경, 젠더, 평화라는 새로운 이슈를 정치로 끌어들여 확고한 제3당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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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다가오자 정치권에서 제3당의 깃발을 올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제3지대'로 불리는 이들을 꼽아보면 국민의힘에서 나온 이준석 신당,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온 이낙연 신당이 있고 민주당과 정의당에서 갈려 나온 금태섭과 류호정 등의 신당이 있다. 선거를 앞두고 제3당을 만드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결국 양당으로 흡수 통합되는 역사가 한국에선 반복되어 왔다. 소선거구제라는 선거 제도가 있는 한 양당제는 고정값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제도' 탓만 하며 새로운 정치 시도는 불가능의 영역으로 남겨둘 수는 없다. 이번 뉴스쉽에서는 유럽 정당의 역사를 통해 제3당의 성공조건을 살펴보려고 한다. 제도를 제외한 제3당의 성공 요소로 인물, 의제, 사회적 분위기를 꼽을 수 있다.

카리스마적 인물 - 프랑스의 마크롱



유럽의 주요국들은 다당제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대표적인 보수정당과 진보정당, 양당을 중심으로 연합이 형성된다. 독일에는 기민당과 사민당, 영국에는 보수당과 노동당이 있다. 프랑스도 공화당(전신은 대중운동연합)과 사회당이 양대 정당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1981년부터 1995년까지 15년간 사회당의 미테랑이, 다음 10년간은 공화당의 시라크와 사르코지가, 2012년부터 5년간은 사회당의 올랑드가 번갈아가며 집권해 왔다. 그런데 가장 최근 총선인 2022년의 상황을 보면 프랑스 하원 577석 중 공화당은 61석, 사회당은 26석밖에 얻지 못할 정도로 쇠락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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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양당을 군소정당으로 만든 건 2017년 대선이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에마뉘엘 마크롱이 기존의 정치판을 흔들었다. 2017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됐고, 같은 해 총선에서 자신이 이끄는 정당 '앙 마르슈!(전진, 현재 당명은 르네상스)'를 1당으로 만들었다. 2017년의 선거를 계기로 등장한 마크롱과 르네상스는 양당 중심의 정치 구도를 바꿔놓았고 8년째인 지금까지 이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제3지대가 등장해 양당 구도를 재편할 수 있었던 성공조건 중 하나는 마크롱이라는 인물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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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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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은 돌연변이다."

프랑스의 유명 소설가 미셸 우엘벡의 말이다. 젊고 잘생긴 정치인 마크롱은 39살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파리정치대학과 국립행정학교를 나온 엘리트였다. 투자은행에 다니던 금융인이었던 마크롱은 사회당 올랑드 정부의 경제부 장관으로 발탁되며 본격적으로 정치행보를 시작했다.

그가 활약한 2017년은 기존 양당에 대한 불신이 높은 시기였다. 공화당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비리로 유죄 선고를 받았고, 사회당의 올랑드 대통령은 무능으로 지지율이 4%까지 떨어졌다. 실업률은 10%가 넘었고, 노조의 불만과 시위가 넘쳐났다.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도심에서 테러가 일어나면서 프랑스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프랑스 국민들은 이전의 '강한 프랑스'를 만들어줄 리더를 원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크롱은 프랑스 국민들에게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인물로 등장했다.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혁명을 통해 군주를 몰아낸 경험이 내재돼 있지만, 양가적으로 나폴레옹이나 샤를 드 골처럼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한 영웅을 바라는 감정도 가지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프랑스가 '유럽의 병자'로 불리며 사회경제적인 침체를 겪을 때, 상황을 타개할 국민적 영웅을 바라는 시기였고 마크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새로운 정치인이 기성 정치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세를 불려 가는 것은 제3당의 자연스러운 공식이다. 그 공식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건 마크롱이라는 인물에게 그럴 만한 매력과 카리스마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2017년 당시에는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테러('샤를리 에브도 사건') 이후 극우 정당을 이끄는 마린 르 펜이라는 새로운 얼굴도 인기를 얻는 시점이었다. 마크롱은 기존의 정당인 사회당의 장관으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곧 올랑드 대통령, 사회당과는 선을 그었다.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분위기에서 2017년 대선은 마린 르 펜을 지지하는 극우파와 프랑수아 피용을 지지하는 보수 우파, 장뤼크 멜랑숑의 극좌파 등 새로운 깃발들이 줄지어 등장했지만, 승자는 '진보적 중도'를 표방하는 마크롱이었다.

마크롱은 24살 연상의 교사이자 세 자녀를 가진 여성과의 일편단심 러브스토리를 통해 더욱 개혁의 아이콘으로 이미지를 굳혔다. 집권 후에는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노란 조끼 시위 등으로 리더십에 타격을 잃고 지지율이 낮아지며 어려움을 겪긴 했다. 하지만 최근 마크롱은 다시 '인물'을 내세워 위기를 타개하려고 하고 있다. 34살의 가브리엘 아탈을 역대 최연소 총리로 임명하면서 자신의 후계자로 내세웠다. 가브리엘 아탈은 마크롱과 마찬가지로 잘생기고 젊은 엘리트인 데다 성소수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기존 정치권과 다른 개혁적 이미지를 가졌다. 가브리엘 아탈이 여론조사에서 40% 지지율로 1위를 하면서 마크롱이 만든 정당 르네상스는 여전히 집권 여당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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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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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의제 - 영국 노동당



프랑스의 사례로 보았듯 제3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끌어갈 '인물'도 중요하지만, 정치를 통해 어떤 것을 하겠다는 '의제'가 필요하다. 영국 노동당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려 한다. 영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1등만 국회의원이 되는 선거제도 때문에 양당제로 귀결되는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제3당이 성장하기 힘든 조건이다. 영국의 정치는 토리파와 휘그파에서 이어져 내려와 19세기에는 보수당과 자유당의 양당 구도로 굳어졌다. 근대화가 진행될 시기인 19세기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랬듯 보수정당인 보수당은 지주층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었고, 자유주의를 주장하며 당시 진보적인 역할을 맡은 자유당은 금융업, 상업 등에 종사하는 중간계급의 정당이었다.

양당 구도가 100년 가까이 굳어진 상황에서 새롭게 탄생한 제3당인 영국 노동당은 결국 자유당을 밀어내고 집권 가능한 정당이 됐다. 영국 노동당은 노조가 만든 정당이다. 189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유럽에서 산업화와 민주화가 일어났다. 공장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계급으로 자리매김하고, 보통선거제가 도입되면서 국민 누구나 정치에 참여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정당을 만들어 노동자 계급의 요구를 대변하겠다는 의제로 탄생한 것이 영국 노동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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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은 노동자의 '계급정치'를 내세우며 최저임금의 도입, 일할 권리, 정부가 철도나 광산을 소유해 관리하는 집산주의 등의 의제를 던지면서 기존에 있던 자유당과 차별화했다. 자유당은 제3당인 노동당이 등장하자 처음엔 연합하며 보수당에 반대하는 '진보연합'으로 활동했다. 1차 대전 중이던 1915년 노동당은 처음 자유당의 연립정부에 들어가게 된다. 1924년에는 자유당의 협력으로 처음으로 집권까지 하게 된다. 자유당이 내세웠던 의제는 자유주의였다. 신흥 부르주아로 불리는 금융인, 사업가 등 중간계급의 지지기반으로 한 자유당은 자유무역이나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보수당에 맞서왔다. 그런데 시대가 변화하면서 투표권을 가진 노동자 계급의 급격한 성장을 대변하는 정당이 되지는 못 했다. 당시의 '시대정신(zeitgeist)'를 포착해 의제화한 노동당이 결국 자유당을 밀어내고 집권정당이 됐고, 지금까지 영국은 보수당과 노동당의 양당제로 굳어져왔다.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는 때에, 어떤 의제를 내세우며 '다수연합'을 만들어내느냐가 새로운 정당의 성공조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변화를 갈망하는 분위기 - 독일 녹색당



마지막으로 살펴볼 제3당의 성공조건은 '사회 분위기'다. 어느 정당이든 변화를 원하는 사회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성공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영국 노동당이 기존의 자유당을 대체한 사례도 1차 대전이라는 혼란한 상황과 사회주의 혁명의 유행 등 시민들 사이에 변화에 대한 갈망이 존재했던 측면이 크다. 이번엔 독일 녹색당의 사례를 살펴보려 한다.

독일 녹색당은 1980년에 창당됐지만 그 뿌리는 1968년에 일어났던 '68운동'에 있다. 역사적으로 1848년과 1968년 두 차례만이 세계 혁명이 일어났던 시기라고 보는 시각도 있던 만큼, 당시는 변화의 에너지가 넘치는 해였다. 68운동은 프랑스 파리의 대학교에서 처음 촉발됐다. 기성세대의 질서를 거부하고 권위주의를 타파하자는 구호로 시작된 대학교의 시위가 성 해방, 인종 차별에 대한 금지, 베트남 전쟁 반대, 소련 전체주의에 대한 반대 등 요구사항으로 번졌다.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서른이 넘은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말라" 등의 구호가 넘쳤다.

프랑스에서는 대학생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불을 지르며 경찰과 충돌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독일에서도 대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졌고, 이후에는 '적군파(RAF)'라는 무장한 투쟁조직까지 나와 폭탄 테러를 하는 극단주의자도 생겨났다. 68운동의 움직임은 아시아와 신대륙까지 번졌다. 같은 시기 일본에서는 '전공투(전학공투회의)'라는 이름으로 대학생들이 헬멧과 쇠파이프를 들고 바리케이드를 친 뒤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베트남전 반전 운동을 중심으로 성을 해방하고 마약을 즐기는 등 자유를 외치는 히피문화가 확산됐다. 1969년에 열린 음악축제인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이런 모습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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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일본 전공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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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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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우 기자 dennoc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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