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도부 합의 이뤘지만 민주당 의원 설득 실패
3년 전 예고된 법안 손 놓다가 뒤늦은 땜질 시도마저 불발
국민의힘 의원들이 1일 본회의 산회 직후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처리 촉구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고영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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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유예하는 법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가 1일 무산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유예조건으로 내건 산업안전보건청 신설에 국민의힘이 합의했는데도 내부 반발에 부딪쳐 좌초됐다. 이로써 지난달 27일부터 시행된 법 적용을 늦출 수 없게 됐다. 타협은 실종되고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상대를 적대시하는 정치권의 한계가 또다시 드러났다.
야 "노동자 생명이 더 중요", 여 "국민 심판 있을 것"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에 앞선 의원총회에서 정부·여당이 제시한 수정안을 받지 않기로 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산업현장에서 노동자 생명이 더 중요하다”면서 “현재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은 그대로 시행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규탄대회를 열고 반발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노총의 눈치를 보느라 민생 현장을 외면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며 "민주당의 비정함과 몰인정함에 대해 국민이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끝내 민생을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민생보다 정략적으로 지지층 표심을 선택한 것 아니냐"며 이같이 밝혔다고 김수경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전했다. 윤 대통령은 "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 산업 현장에서의 혼란을 막고 영세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대책을 즉각 강구해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노사는 희비가 엇갈렸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일제히 환영 입장을 냈다. 반면 중소기업중앙회 등 17개 중소기업 단체는 “매우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남은 2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안이 다시 논의돼 처리되기를 간곡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민주노총·정의당·진보당 주최로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중단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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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지도부 합의 이뤘지만 민주당 의원 설득 실패
민주당 의총 직전까지만 해도 정부·여당이 제시한 수정안에 원내지도부가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서 협상 타결 쪽에 무게가 실렸다. 수정안은 중대재해법을 2년 유예하고 산업안전보건지원청을 신설하되, 신설 기관에서 단속과 조사 기능을 제외해 기업 부담을 덜어주자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추인을 거부했다.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은 안전 사회로 가기 위한 상당한 진전은 분명하고, 이를 조건으로 (중대재해법 적용) 시한 유예를 추가로 하는 것을 논의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의원총회에서 의원들 상당수가 부정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3년 전 예고된 법안 손 놓다가 뒤늦은 땜질 시도마저 불발
중대재해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은 3년 전부터 예고된 일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기존 유예기간이 임박하도록 뒷짐만 졌다. 정부 또한 유예 불발에 대비한 준비보다 유예 가능성을 기대하며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행 직전 산업 현장의 우려가 분출하자 정치권은 부랴부랴 2년 유예라는 땜질 처방안을 내놨지만 그마저도 접점을 찾지 못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촉구 전국 중소기업인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법안 유예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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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가 이해관계를 좁히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의심스럽다"며 "정치권이 양극화된 채로 진영 싸움에만 몰두하면서 아무것도 안 되거나, 힘으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재협상 여지가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지만 전망은 어둡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입장 변화가 있어서 협상을 제안해 온다면 언제나 협상에 응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영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법 시행 이후 다시 추가로 유예하는 상황은 수용하지 않겠다는 게 오늘의 결정”이라고 못을 박았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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