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한국언론진흥재단 집무실에서 만난 김효재 이사장. 이승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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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에 '위기'는 익숙한 말이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의 파도가 밀려오면서 그 위기의식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커졌다. 한국 언론 정책을 연구하고, 교육과 취재 지원을 맡고 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이 새 선장과 항해를 한 지 100일이 지났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정치인과 행정 관료를 거쳐 흔들리는 한국 언론의 중책을 맡게 된 김효재 이사장(71)을 지난 24일 만났다.
김 이사장은 "언론사 기자로 시작해 마지막에 언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영광스럽다. 그렇지만 한국 언론이 처한 상황을 보면 부담스럽고 답답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언론에 있을 때보다 우리 사회가 기자를 보는 시각이 좋지 않은 쪽으로 달라져서 혹시라도 우리 세대의 잘못은 아닌지 굉장히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삼중 위기론'부터 꺼냈다. "한국 언론이 이른바 삼각파도를 만난 거 아닌가 싶은 정도로 굉장히 어렵죠. 먼저 레거시 미디어 독자와 시청자가 급격히 줄면서 다른 미디어로 넘어가는 단계가 있었죠. 두 번째로 이제는 뉴스 자체를 보지 않는 단계에 왔어요. 한마디로 뉴스를 보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마지막은 신뢰의 상실입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본연의 기능인데 언론이 편을 갈라서 권력의 나팔수가 됐다는 불신이 생겼습니다. 신뢰 상실이 시장 상실보다 더 큰 위험입니다."
실제로 언론재단에서 지난주 발표한 '2023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포털을 통한 뉴스 이용률이 조사 이래 최초로 70% 이하로 떨어졌고(69.6%), 유튜브 같은 동영상 플랫폼 이용률은 2018년 33.6%에서 2023년 72.2%까지 증가했지만 그 가운데 뉴스를 보는 비율은 2021년 26.7%에서 2023년 25.1%로 줄어들었다.
이런 위기에 더해 최근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미디어 환경은 격변하고 있다. 올해 언론재단의 화두도 AI다. 김 이사장은 "AI 환경에 대한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대응에 역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AI 예산을 153억원의 대규모로 편성했다. 무엇보다 올해 자체적인 '빅카인즈AI'를 공개한다. 과거의 기사를 바탕으로 답변하는 대화형 AI로, 54개 언론사의 기사 데이터 8000만건이 구축된 빅카인즈에 생성형 AI 기능을 탑재했다.
그는 "내부적으로 시험하고 있는 단계인데 물론 오픈AI 등에 비하면 매우 미흡한 수준이지만, 단 하나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장점은 있다"고 말했다. 뉴스룸 맞춤형 AI 도구 개발도 지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뉴스 기사 본문을 입력하면 제목, 키워드를 자동으로 추출해준다거나 기사를 동영상으로 자동 변환시켜주는 도구 등이다. 무엇보다 교육이 가장 적극적인 대응책이다. 그는 "작년에만 70개 언론사·400여 명이 교육받을 만큼 인기가 뜨거웠던 AI 활용 기자 교육도 올해는 2000명 선까지 늘리고 수습기자 교육에도 AI를 포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자의 업무를 AI가 대체할 수 있게 되면 일자리도 함께 사라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김 이사장은 "이세돌이 알파고에 진 뒤에도 바둑기사가 없어지진 않았다. 창의력은 인간 기자만이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다. 거기서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심층 취재 기사의 산실이 되고 있는 언론재단의 취재 지원 사업은 작년에 7건이 각종 기자상을 수상할 만큼 성과가 있었다. 올해에는 '언론사 간 협업 프로젝트'를 신설할 계획이다. 김 이사장은 "BBC, 뉴욕타임스 등이 한국으로 아시아 본부를 옮긴 데다 해외에서 한국과 한국 기업을 향한 관심이 전례 없는 수준이다. 이제 국내와 해외 언론사의 공동 취재를 할 여건이 무르익은 것 같다. 이를 통해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콘텐츠가 생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증오와 불신을 부추기는 가짜뉴스는 한국 언론을 넘어 한국 사회의 큰 숙제가 됐다. 가짜뉴스와의 전쟁에서는 무엇보다 "언론 내부의 신뢰도 회복이 가장 중요하고, 언론재단은 이를 위한 플랫폼을 마당처럼 열어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가짜뉴스를 퇴치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없다. 그 확산 속도가 워낙 빠르고 그로 인한 피해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아서다. 이 문제에서는 가짜뉴스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우리의 답은 '미디어 리터러시(매체 이해력)' 교육"이라고 말했다.
언론재단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위한 '플랫폼'을 자처했다. 작년 900여 개 학교에 미디어 교육 강사 130여 명을 파견했고, 학생 4만9000명이 언론재단의 미디어 교육에 참여했다.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고 일기를 쓰는 '뉴스읽기 뉴스일기(日記) 공모전', 학생들이 팩트 체크 결과를 겨루는 '체커톤 대회'를 열었는데 수준이 높았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관련해 핀란드의 경우를 참고할 만합니다. 꽤 오래전부터 핀란드는 초·중·고교에서 뉴스의 진위를 판별하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같은 경우도 법제화해서 가짜뉴스 판별 같은 교육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가 학교 현장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 전 단계로 그걸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해서 연구하고 실행에 옮기는 역할을 언론재단이 하게 될 것입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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