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권 행사…정부 이송 11일 만의 결정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SNS에서 “민심 거역한 정권은 오래 못 간다는 거 명심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 및 성남 FC 뇌물 의혹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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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의원들 불참 속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던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0일 “윤석열 정권은 도대체 이 나라를 어디까지 끌어내릴 참이냐”고 분노했다.
이 대표는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윤석열 정권이 끝내 이태원 특별법을 거부하고 유가족과 국민의 뜻을 무시했다”며 이같이 날을 세웠다. 이어 “국가가 책임을 다했다면 평범한 일상으로 남았을 이태원의 10월29일, 우리 국민 159명이 백주대낮에 목숨을 잃었다”며 “누가 책임졌나, 누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나”라고 따져 물었다.
이 대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권은 유가족의 상처를 두 번 세 번 헤집어 놓더니 이제 진상규명마저 거부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 특별법 거부 서명은 대한민국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 각자도생 사회라는 공식 선포”라고 주장했다. 특히 “윤석열 정권이 거부하면 민주당이 한다”며 내세운 이 대표는 “민주당은 더욱 결연한 마음으로 국민과 함께 159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온전한 진상규명으로 국민을 지켜야 할 국가의 책무를 바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비정하고 비상식적인 정권에 엄중히 경고한다”면서, 이 대표는 “민심을 거역한 채 자식 잃은 부모를 이기려 드는 정권은 결코 오래갈 수 없음을 명심하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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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윤 대통령은 같은 날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 지난 9일 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특별법안이 정부로 이송된 지 11일 만이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정부는 해당 법안을 다시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결을 요구하게 된다.
특별법은 이태원 참사 진상 재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구성이 골자다. 특조위는 상임위원 3명을 포함해 11명으로 구성하며 특조위원은 국회의장이 유가족 등 관련 단체와 협의해 3명을 추천하고, 여당(대통령이 소속되거나 소속됐던 정당)이 4명, 야당이 4명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상임위원은 국회의장과 여당, 야당이 각 1명씩 추천하도록 했다. 위원장은 상임위원 중에서 특조위 의결로 선출한다. 특조위 직원 정원은 60명이며, 필요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공무원 파견을 요청할 수 있다. 활동기간은 1년 이내이지만 필요시 3개월씩 두 차례 연장할 수 있어 최대 1년6개월간 활동이 가능하다. 민주당 원안에 있던 특조위의 특별검사 요구 권한은 삭제됐고, 시행 시기도 ‘공포 후 3개월 경과한 날’에서 ‘올해 4월10일’로 수정됐다.
이에 정부는 특조위 업무 범위와 권한이 과도해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고 구성 절차에 공정·중립성이 담보되지 않았다면서, 투입 예산과 행정력은 막대하지만 국민 분열만 조장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재의 요구 사유로 들었다.
한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이 법이 자칫 명분도 실익도 없이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의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참사로 인한 아픔이 정쟁이나 위헌의 소지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진정으로 유가족과 피해자, 우리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재발 방지에 기여할 수 있는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정부도 적극 수용할 것”이라며 “여야가 특별법안의 문제가 되는 조문에 대해 다시 한번 충분히 논의해 주시기를 요청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국회 재의결 관문을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총 298명)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전원 출석 시 199명의 찬성표가 필요하다는 얘기여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에 나서면 정족수를 채우기 힘들고 법안 폐기에 이를 수 있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반민주적 입법 폭주와 정치공작에 맞서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희용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윤 대통령은 총선을 앞두고 재난의 정쟁화를 유도하는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정부의 재의요구권 행사 건의를 깊은 고민 끝에 받아들였다”며 이같이 말하고, “이렇게 무리한 법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대통령에게 의도적으로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민주당의 총선용 악법이라는 취지로 비판했다.
정부는 유가족과의 협의로 ‘10·29 참사 피해지원 종합 대책’을 수립·추진해 실질적인 지원과 예우·추모에 집중할 계획이다. 피해자 생활 안정을 위한 지원금과 의료비·간병비 등을 확대하고, 현재 진행 중인 민·형사 재판 결과가 최종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속도감 있게 배상·지원을 하기로 했다.
종합대책 추진을 위해 국무총리 소속 ‘10·29 참사 피해지원 위원회’를 구성한다. 유가족이 요구해온 영구 추모시설도 유가족·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건립할 계획이다. 다양한 심리안정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참사로 신체·정신적 피해를 본 근로자에 대한 치유 휴직도 지원한다. 이태원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경제 활성화를 시행하는 내용도 대책에 담겼다. 구조와 수습 활동을 하다 피해를 본 이들에 대한 지원 역시 강화하기로 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농성 중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 의결 소식이 전해지자 허탈해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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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방침에 유족 측은 ‘우리가 바란 것은 오직 진상규명’이라며 ‘언제 재정적 지원과 배상을 요구했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협의를 거쳐 피해지원 종합 대책을 수립하겠다는 대목에도 유족 측은 ‘일고의 가치가 없고 단 한 줌의 진정성도 없다’는 입장을 내세운다.
임오경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끝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아홉 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며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아내의 범죄 의혹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으로 부족해서, 사회적 참사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민의를 거부하는 수단으로 삼다니 참 지독한 대통령”이라고 맹비난했다.
임 원내대변인은 “재난을 막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의 이 같은 기본책무를 부정했다”고 쏘아붙였다. 계속해서 “유가족이 바란 것은 보상이 아니라 오직 진상규명이었다”며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명분과 실익이 없고 국민 분열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한덕수 총리의 주장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고 날을 세웠다.
나아가 “국가의 책임을 거부하고 진상규명을 막으며 재난을 정쟁화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정부와 여당”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무책임한 정부의 적반하장에 분노한다. 정부의 책임을 가리려는 윤석열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을 국민은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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