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 우려 등 민생 문제가 주로 논의된 이날 오찬을 계기로 양측 간 신뢰 회복을 위한 주춧돌이 마련됐다는 게 여권의 평가다. 반면에 야당은 밀실 회동이라고 깎아내렸다.
대통령실 초청 형식으로 마련된 회동은 2시간 오찬에 이은 37분 차담까지 총 157분간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보랏빛 넥타이를 했고, 한 위원장은 노타이에 양복 차림이었다. 윤 대통령이 자신보다 10분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한 위원장에게 악수를 청하자 한 위원장이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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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과 국민의힘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오찬에 앞서 “한 위원장님”이라고 존칭을 쓰며 “저쪽이 어린이정원이고, 이쪽은 분수정원”이라며 주변을 설명했다. 한 위원장은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따금 건물 위치 등을 물었다. 한 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취임 후 윤 대통령과 오찬을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 위원장님, 요즘 수고가 많으십니다. 여기는 처음이시죠.”(윤 대통령)
“네 처음입니다.”(한 위원장)
“(창가 쪽으로 걸어가며) 잠깐 이리 좀 와 보시겠어요.”(윤 대통령)
“저기 보이는 곳은 어딘가요.”(한 위원장)
이어 두 사람은 흰색 라운드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식사했다. 메뉴는 중식이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와 대통령실 이관섭 비서실장, 한오섭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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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공약 택배’ 2호는 철도 지하화…내일 수원서 발표
식사 중에는 주로 민생 현안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먼저 윤 대통령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민생 개선을 위해 당정이 배가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민생 현안으로는 반도체를 비롯해 주택, 철도 지하화 등이 논의됐다. 특히 윤 대통령은 철도 지하화에 대해 “철도가 도시 한가운데를 관통하면 도시가 동서남북으로 단절된다”며 “도시 발전을 위해 소통할 방안으로 전체 구간을 지하화하지 않아도 1㎞만 지하화해도 소통이 된다. 그러면 도시가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7일부터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과 관련해서도 영세사업자의 어려움을 걱정했다. 한 위원장은 “국회에서 협상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이 최근 잇따르는 정치인 테러에 우려를 표하자, 윤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관련 대책을 신속하게 마련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오찬 뒤 나가는 한 위원장에게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내 집무실로 가서 차 한잔 더 합시다”라고 제안했고, 한 위원장은 “물론입니다”라고 화답했다. 37분간의 티타임은 당초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다른 오찬 참석자들도 함께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차담에서도 줄곧 민생 살리기에 당정이 협력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오갔다”며 “157분이라는 회동시간이 ‘윤·한’ 관계를 말해 주는 것 아니겠냐”고 전했다.
오찬 뒤 윤 원내대표가 관련 브리핑을 했다.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선 이런 얘기가 오갔다.
Q : 김건희 여사 의혹 해소 방안도 논의됐나.
A : “없었다. 민생문제, 이와 관련된 국회 상황을 주로 얘기했다.”
Q : 한 위원장 사퇴 요구 문제에 대한 언급도 없었나.
A : “그렇다.”
Q : 총선 공천에 대한 언급은.
A : “선거 관련 논의 자리가 아니었다.”
이날 회동을 두고 여권에선 “서로의 신뢰를 쌓아가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두 사람이 앙금이 남았을 수는 있지만 일단 얼굴을 맞대고 의견을 나누면서 신뢰 회복을 위한 주춧돌을 마련해 가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민생을 핑계로 2시간40분 가까운 회동을 했지만, 정작 나온 내용은 없었다. 무슨 얘기를 나눴기에 꽁꽁 숨기려 하느냐”며 윤 대통령이 밀실정치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충돌 원인이 된 ‘김경율 사천·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 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지만 자주 소통하다 보면 간극이 좁혀지면서 해결 방안을 찾아가지 않겠는가”라며 “총선을 앞두고 당정 간 화합과 소통 강화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 위원장은 31일 ‘철도 지하화’를 총선 주요 공약으로 발표한다. 윤 대통령과의 오찬 회동에서 이 문제가 거론된 지 이틀 만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29일 “한 위원장이 31일 경기 수원시를 찾아 철도 지하화 공약이 담긴 ‘국민택배’를 배송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8일 1호 공약 ‘저출생 종합 대책’에 이어 교통 문제 해결을 통한 수도권·지방 격차 해소 정책인 철도 지하화를 사실상 2호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철도 지하화는 도심 철도를 땅 밑으로 옮기고 그 부지를 복합 개발하는 사업으로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5일 민생토론회에서 “철도와 도로로 단절된 도시 공간을 지하화해서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며 전국 교통 지하화 사업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현일훈·박태인·이창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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