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가방에 녹음기 넣어 발언 수집
대법 “타인 간 대화” 해당…파기 환송
등교하는 학생의 뒷모습. Jeremy Bishop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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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아동학대를 의심한 학부모가 아이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몰래 녹음한 사건에서 녹취파일을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1일 아동학대범죄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교사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교사로 근무하던 A씨는 자기 반 학생 B군에게 약 두달간 총 16회에 걸쳐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다”“쟤는 항상 맛이 가 있다”는 등의 발언으로 정서적 학대행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의 행위는 ‘담임에게 심한 말을 들었다’는 B군의 말에 B군 부모가 B군 가방에 녹음기를 몰래 넣어 등교시켜 발각됐다. B군 부모는 A씨의 교실 내 발언을 녹음한 뒤 A씨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면서 녹취파일을 증거로 제출했다.
1심은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타인 간 대화를 몰래 녹음한 것은 위법증거수집으로 증거능력이 없다”며 항소했다.
2심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는 초등학교 3학년으로서 스스로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었고, 말로 이뤄지는 학대 범죄의 특성상 녹음을 하지 않으면 피고인의 범죄행위를 밝혀내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며 “30명 정도 상당수 학생들이 있는 가운데 이뤄진 대화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라 볼 수 없다”고 했다. 다만 내용상 일부 무죄인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 형량을 벌금 500만원으로 대폭 낮췄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B군 부모가 제출한 녹음파일을 통신비밀보호법상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통신비밀보호법은 ‘타인 간 미공개 대화 녹음 및 청취’를 금지하면서, 이런 식으로 취득한 내용도 재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피해아동의 부모가 몰래 녹음한 피고인의 수업시간 중 발언은 교실 내 학생들에게만 공개된 것일 뿐, 일반 공중에게 공개된 것이 아니라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 해당한다”며 “대화 내용이 공적인 성격을 갖는지, 발언자가 공적 인물인지 등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 여부를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또 “피해아동의 부모는 대화에 참여한 당사자가 아니므로 ‘타인 간 대화’라 보아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파일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원칙에 관해 예외가 인정된 바 없다”며 “교실 내 발언을 학생의 부모가 녹음한 경우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 녹음’에 해당해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판결”이라고 했다.
이번 판결은 아동학대 사건에서 ‘몰래 녹음’을 물적 증거로 제시하는 유사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경우가 웹툰작가 주호민씨 부부의 사례다. 주씨 부부는 아들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등교시킨 뒤 확보한 녹취파일을 근거로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해당 사건은 현재 수원지법에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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