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 고철연구소 소장 겸 이에스지(ESG) 네트워크 대표가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2년의 성과와 개선과제를 주제로 인터뷰하기 전에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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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적용 2년 추가유예를 위해 ‘쇼’를 한 것 같다.”
김경식(62) 고철연구소 소장 겸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네트워크 대표는 정부와 국민의힘이 지난 12월27일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 보완책으로 발표한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에 대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혹평하면서, “정부가 보다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소장은 “더불어민주당이 50인 미만 사업장의 법적용 유예를 위해 제시한 요구조건들이 충족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예할 명분이 약하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애초 2024년 1월27일로 예정된 50인 미만 사업장의 법적용을 중소기업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2년 추가유예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정부 준비부족 사과, 추가 예방대책과 예산 마련, 경제단체의 2년 뒤 법시행 약속을 유예조건으로 제시한 바 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김 소장과 시행 2년을 맞는 중대재해법의 성과 평가와 개선과제를 주제로 인터뷰했다. 중대재해법은 2018년 12월 김용균씨 사망사고를 계기로 제정됐다. 태안화력발전소의 하청 노동자인 김씨는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져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중대재해법은 중대 사망자 등이 나오면 안전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을 물리는 내용인데, 경영계와 보수언론은 무리한 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 소장은 대기업(현대제철) 임원 출신의 ESG 전문가로, 기업의 진정한 ESG 실천을 강조한다. 그는 진보·보수언론을 가리지 않고 폭넓은 기고와 강연활동을 통해 “기업들의 ESG 경영이 ‘레토릭’(말장난)처럼 느껴진다. 정말로 착해지려는 게 아니라 착한 척만 한다”고 쓴소리를 한다.
김 소장과 인터뷰는 지난 12월2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이뤄졌다. 정부여당의 지원대책이 발표된 27일 추가 전화인터뷰를 했다.
―1월말이면 중대재해법을 시행한지 2년이 된다. 논란이 큰 만큼 법시행 효과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시행 첫해인 2022년 중대재해 사망자가 644명으로, 한해전인 2021년의 683명에 비해 5.7%(39명) 줄었다.(고용노동부는 2021년 통계 미공개. 언론 취재로 보도됨.) 사망사고 건수 역시 8.1% 줄었다. 2023년에도 1~3분기 누적 사망자가 459명으로 2022년 1~3분기의 510명에 비해 10%(51명)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는 7% 줄었다. 법시행 효과가 있다고 봐야 한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망자 비중이 2021년 63.7%에서 2022년 61%로 낮아졌다.
“중소기업도 노력하면 산재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법시행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재해유형에서 추락·끼임·부딪힘 등 3대 기본 안전수칙 미준수 사고 비중이 2021년 67.8%에서 2022년 65.4%, 2023년 1~3분기 61.2%로 계속 낮아졌다. 산업현장의 안전의식 개선으로 볼 수 있나?
“단순 사망사고의 비중이 작아지는 것은 안전의식이 개선되는 신호다. 2018~2020년 산재 사망자 2011명의 요인을 분석해보니, 작업방법 미준수, 안전보호구 미착용 등 안전의식 미흡으로 인한 사고 비중이 66.5%에 달했다.”
―2022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13일까지 1년 11개월동안 모두 31건이 기소되었다. 대법원이 지난 12월 중대재해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한국제강의 경영책임자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법시행 이후 실형 확정은 처음이다.
“대법원의 실형 확정은 의미가 있다. 다만 비슷한 산재 사망사고가 반복적으로 벌어진 사업장인데도 법정 최소형량(징역 1년)에 그친 것은 솜방망이라는 비판을 받을만하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사망자가 줄었는데도, 한국경총(회장 손경식)은 법시행 효과가 없다고 한다. 보수언론은 한술 더 떠 사망자가 늘었다고 주장한다. <조선일보>의 2023년 12월5일자 사설(사고 예방 효과 입증 못한 중대재해법), <매일경제>의 10월22일자 기사(중대재해법 사망사고 더 늘어)가 단적인 예다. 중대재해법을 무력화하기 위해 정부통계까지 왜곡해서 국민의 눈을 가리는 짓 아닌가?
“모두 이해가 안 간다. 언론이 자기가 보고 싶은 부분만 가져다가 침소봉대하는 편향적인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려면 정확한 통계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노동부의 중대재해 통계는 너무 복잡하고, 정작 필요한 통계는 없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사후적으로 사고 결과를 단순 집계·분류하는 데 그치고, 제대로 분석을 안하는 것이다. 사고원인을 분석해서 대책을 마련해 실행하고, 다시 그 효과를 분석해서 신규 대책에 반영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예방효과를 거둘 수 있는데, 통계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 둘째, 정부가 있는 통계도 숨긴다. 2021년은 법시행 이전이라 통계기준이 다르다고 하는데, 언론보도를 보면 노동부가 내부적으로는 통계를 갖고 있다. 셋째, 월별이나 분기별 구분없이 누계로만 통계를 발표하고, 사고 발생 회사별로 발표를 안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노동부는 회사별 발표를 않는 것에 대해 수사 진행, 개인정보 침해, 법인 명예 훼손 등의 이유를 제시하는데.
“왜 정부가 그런 걱정을 하나? 오히려 노동부가 회사별 현황 발표를 하지 않다 보니, 언론이나 시민단체가 자체 기준으로 부정확한 수치를 내놓아 혼선이 빚어진다. 회사별로 산재 발생빈도인 사고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사고사망자 수)도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경각심을 준다.”
―한국의 사고사망만인률은 2021년 기준 0.43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4위로 거의 꼴찌 수준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인데, 정부여당은 2021년 법제정 당시 3년을 유예했던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적용을 2년 더 유예하려고 한다. 반면 노동계는 지난 3년간 뭐하고 있었냐면서, 법 실효성 상실을 이유로 반대하는데.
“2023년 1분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 사망자가 전년 동기 대비 12.9%(19명)나 감소했다. 제조업 사망자와 50인 이상 사업장의 사망자도 모두 줄었다. 법시행 1년이 지나면서 사고 기업이 잇달아 기소되고, 원청대표로서 처음 구속된 한국제강의 재판이 열리고, (법위반 1호 사건인) 삼표 양주 채석장 사망사고로 정도원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기업들이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이후 분위기가 다시 이완되면서, 사망자 감소율이 줄었다. 법시행 효과가 더 커질 수 있었는데 아쉽다.”
―당정이 발표한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에는 83만7천개 사업장 전체를 대상으로 산업안전 대진단 실시, 8만개 중점관리 사업장 지원, 공동안전관리전문가 600명 지원 등이 담겼다. 기존 내용과 재탕이고, 실효성도 없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자발적인 대진단은 큰 효과가 없다. 공동안전관리자 1명이 20개 사업장을 담당하는 것도 너무 벅차다. 이번 대책을 위해 2024년 예산안에 1조2천억원을 편성했다지만, 실질적인 신규예산은 공동안전관리전문가 지원을 위한 126억원에 그친다. 현대제철의 경우 당진공장 한곳의 안전투자만 5천억원에 달한 적도 있다. 정부가 지난 3년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는데, 새로운 대책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유예를 위해 쇼를 한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정부가 보다 파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번 대책이 미흡하다는 평가다. 민주당은 2년 뒤 법시행에 대한 경제단체 약속도 요구했는데, 중기중앙회만 응하고 한국경총과 한국경제인협회는 침묵했다.
“민주당의 요구가 충족됐다고 보기 어렵다. 유예할 명분이 약하다. 전체 경제단체가 약속해도 국민이 믿기 어려운데, 경총과 한경협이 2년 뒤 다시 유예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도 유예가 불가피하다면, 이번 정부 안으로는 안된다. 지원대책을 제대로 만들어서, 법과 시행령에 반영해야 한다.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 문제는 법제정 당시부터 진통이었다. 민주당도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반성이 필요하다.”
―경영계와 보수언론은 중대재해법이 무리한 규제라며 계속 완화 요구를 한다. 사업주의 재해 예방 의무가 지나치게 추상적·포괄적이어서 현장 혼선과 과잉 처벌이 우려된다는 주장인데.
“법원(창원지방법원 형사4단독 강희경 부장판사)이 지난 11월 중대처벌법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기각 결정하면서 정리가 됐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와 처벌 조항이 명확성, 과잉금지, 평등원칙에 모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모든 기업이 이에스지(ESG) 경영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노동자 인권, 생명, 안전은 ESG의 사회책임 중에서 가장 핵심 사항이다. 경제계가 중대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보다 중대재해법 완화에 매달리는 것을 어떻게 보나?
“ESG의 가장 기본은 이해관계자와의 따듯한 공존이다. 사람이 매일 죽어나가는데 (50명 미만 사업장의) 법 적용만 유예하자는 것을 ESG라고 할 수 있겠나?”
―중대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실질적 책임자(오너)의 진정한 사과를 가장 강조하고 싶다. 정부가 기업들의 자율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강조하는데, 오너(총수)의 진정한 사과문화가 조직에 자리잡을 때 가능하다. 사고 다발 사업체인 디엘(대림), 에스피씨(SPC), 현대비엔지스틸의 공통점은 사고가 나도 오너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 뒤늦게 사과한다. 코오롱의 이웅렬 회장은 2014년 경주 리조트 붕괴사건 때 새벽에 현장으로 내려가 엎드려 사죄했다. 오너가 진정한 사과를 하면 안전관리에 대한 조직문화가 바뀐다.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제대로 된 개선책을 내놓게 된다.”
―평소 기업별 특성에 맞는 대책을 강조했는데.
“정부정책은 사업장의 특성과 규모 등을 고려해야 한다. (사망사고 다발 업종인) 건설업과 조선업은 수주산업, 다단계 하도급, 비정규직 위주라는 공통점이 있다. 회사 규모가 크지만, 손익관리는 현장이나 블록 단위로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중소기업과 유사하다. 이익 우선주의에 따라 빨리빨리(공기단축) 문화가 뿌리내려 있고, 안전투자도 소홀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기업 규모별로 안전투자에 대한 접근도 다르다.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기소된 한 전문경영인은 ‘법상 벌금상한인 10억원은 너무 약하다’고 말한다. 벌금이 많아야 미리 (안전)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아예 투자할 여유가 없다고 하소연하는데?
“국가의 직접 지원이 필요하다. 매뉴얼, 안전인력, 설비 투자를 지원해야 한다. 특히 50인 미만 사업장을 위한 맞춤형 지원대책이 나와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획기적인 대책은 없나? 중대재해 다발 업체는 아예 하도급 거래를 금지하는게 가능한가?
“하청을 금지하면 실제로 일을 할 사람이 없어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 현장의 안전의식 미흡을 개선할 수 있는 근본대책이 있다. 노사의 단체협약에 작업자가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징계하는 조항을 넣는 것이다. 일례로 안전모 착용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3진 아웃이든 감봉이든 징계하는 것이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녹취 노영준 보조연구원
김경식 소장은 누구?
김경식 고철연구소 소장 겸 이에스지(ESG)네트워크 대표는 영풍광업을 시작으로 강원산업·인천제철을 거쳐 2020년말 현대제철에서 기획실장(전무)으로 물러날 때까지 31년간 국내 에너지 관련 기업에서만 근무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탄소중립, 기후위기, 에너지전환, ESG경영, 중대재해, 노사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퇴임 이후 고철연구소와 ESG네트워크를 만들어 왕성하게 기고·강연·컨설팅 활동을 하고 있다. 2023년 5월에는 ESG가 자본주의를 구원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착한 자본의 탄생>이라는 저서를 냈다. 10월에는 미국 콜롬비아대 비즈니스스쿨 초청으로 뉴욕을 방문해, ‘한국 철강산업의 탄소중립 도전과제’를 주제로 발표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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