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열사 신원 확인 등 일부 성과에도 핵심쟁점은 '미완'
조사위 종료 이후 진상규명 이어갈 후속 조치 필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금남로에 모인 시민 |
(광주=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해 4년 전 출범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의 공식 조사 활동이 종료됐다.
5·18을 폄훼·왜곡하던 사실을 바로 잡고 시민을 짓밟던 계엄군의 만행을 밝혀냈다는 일부 성과를 올렸지만, 발포 명령자 책임 규명·가(암)매장 경위·행방불명자 소재 파악 등 정작 밝혀내야 할 핵심 쟁점은 미완으로 남았다.
절박함 속에서 결과를 기대하던 5·18 관계자들과 시민은 다시 한번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출범 후 4년간의 조사 활동…밝혀낸 성과는
조사위는 2019년 출범한 뒤 최근까지 4년간 21건의 직권조사와 75건의 신청 사건에 대해 사실관계를 조사했다.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계엄군 2만317명 중 2천857명(14.06%)에 대한 면담 조사를 벌여 318건의 진술 조서·녹취 등을 증거 자료로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을 향한 발포 명령이 정당방위(자위권) 차원이었다는 기존 신군부의 주장과 달리 과잉 진압이라는 것을 증명할 여러 사례를 재확인했다.
특히 시위대가 모여있는 곳에 기관총을 쏘거나 조준경을 장착한 저격용 총으로 조준 사격했다는 사실이 가해자의 증언을 통해 확인했다.
사건을 축소하려 했던 신군부의 자료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항쟁 기간 숨진 사망자의 사망 경위도 원점에서 재검토해 잘못된 기록을 바로잡았다.
40년 넘게 이름 없는 시신으로 묻혀있던 5·18 무명 열사 5명 중 3명의 신원을 확인한 것도 성과로 꼽힌다.
당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시신과 뒤바뀌어 안장됐다는 사실을 조사위가 유전자 감식 등으로 확인했다.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공수부대원의 사죄를 끌어내기도 했다.
이 공수부대원은 조사위에 자신의 행위를 고백하며 사죄 의사를 전했고, 유족 역시 이를 수용하며 40년 만에 계엄군이 사죄한 사례로 기록됐다.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설이 허위라는 사실을 밝혀냈고, 북한군 개입설의 근거로 악용된 간첩 이창용·손성모 사건이 5·18과 무관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마지막 기회" 진상규명 원년으로…조사위 본격 가동 (CG) |
◇ 풀리지 않은 5·18 진상규명…다시 미궁으로
5·18 진상규명의 핵심 쟁점은 집단 발포 명령자와 그에 대한 책임 소재 규명·행방불명자 소재 파악 등이 꼽히지만 어느 것 하나도 성과로 내놓지 못했다.
1980년 5월 19일 광주고 앞에서 이뤄진 첫 발포 사건부터 이튿날 광주역 집단 발포,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에 대한 상황과 명령 체계, 실탄 통제 여부를 규명했지만 끝내 발포 책임자 규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발포 책임자를 규명하기 위해 존재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에서 조사위는 물적 증거를 찾는 것 대신 저인망식 조사 기법을 활용했다.
말단 병사부터 지휘관까지 각자가 겪은 상황을 모아놓으면 그것이 특정한 책임자를 가리킬 것이라는 판단이었지만, 진술 거부를 당하기 일쑤거나 진술의 신빙성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조사가 늦어지는 사이 신군부 중요 인물 5인 중 4명(전두환·노태우·이희성·황영시)이 세상을 떠나 발포 명령자 책임 규명은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됐다.
가(암)매장 유해 발굴과 행방불명자 규모·소재 파악 역시 오리무중이다.
조사위는 5·18 당시 암매장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사망자·민간인 시체 처리 과정에 대한 조사를 벌였고, 광주 외곽 봉쇄 작전에 참여한 98명의 증언으로 암매장 추정지 7곳을 발굴·19건의 유해를 발견했지만 모두 5·18과의 연관성은 확인하지 못했다.
5·18 직후 시체 처리반이 활동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힌 바 있지만 구체적인 물증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해 발굴하는 5·18 조사위 |
◇ "재조사 발판 마련해야" 광주시민 한목소리
5·18 관련자들은 조사 활동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며 추가 조사 또는 재조사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요구했다.
한시 기구로 출범한 조사위의 활동 마무리가 5·18 진상규명의 '완전한 종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다.
이기봉 5·18 기념재단 사무처장은 "시민들은 조사위 활동이 종료됐다고 해서 진상규명 역시 종료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조사위 수준은 아니더라도 국가 차원에서 핵심 쟁점은 재조사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내년 6월께 공개되는 조사위 결과보고서와 미흡한 결과를 내놓을 수밖에 없던 조사위의 조사 여건 등을 교훈 삼아 새로운 조사기구 마련도 촉구했다.
40여년전 열흘간의 항쟁을 조사하기에는 정원 72명이라는 조사위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데다 조사 환경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양재혁 5·18 유족회장은 "오월의 진실을 조사위가 밝혀줄 것이란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감도 크다"며 "조사 활동이 종료됐다고 하더라도 아직 밝혀내지 못한 과제에 대해서는 조사 기한을 두지 않는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방대한 역사적 사실을 지닌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단번에 이뤄내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미완의 5·18 진상규명을 위한 별도 기구가 설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da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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