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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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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원에 현대힘스 구주 받으세요”… 공모주 인기에 ‘피싱’ 수법도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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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권자 물량으로 증권사에서 하는 일반청약과는 무관합니다.”

코스닥시장 상장을 추진하는 현대힘스 홈페이지에 뜬 공지의 일부다. ‘기업공개(IPO) 추진 및 상장 확정 안내’라는 해당 공지에는 IPO 공모가는 6300원(희망 공모가 범위 상단)이지만, 3000원에 공모주 신청을 받는다고 적혀 있다. ‘170% 수익’이라는 말도 쓰여 있다.

그러나 이 홈페이지는 현대힘스가 운영하는 ‘진짜’ 현대힘스 홈페이지가 아닌 ‘가짜’다. 홈페이지 공지에는 현대힘스 대표자 오흥종이라는 이름까지 적혔다. 오 대표는 그러나 3년 전 사임한 인물이다. IPO 시장을 향한 투자자 관심이 커진 것을 이용한 ‘피싱’ 홈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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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힘스 공모주 투자자 '피싱'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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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첫날 주가가 공모가 대비 4배로 오르는 이른바 ‘따따블’ 종목이 등장하는 등 공모주 투자 열기가 뜨거워지자 투자자의 관심을 미끼로 공모주 사기가 번지고 있다. 온라인 리딩방을 넘어 가짜 홈페이지가 개설되는 등 사기 수법마저 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대힘스 가짜 홈페이지는 현대힘스가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지분증권)를 제출한 이달 8일 즈음에 개설됐다. 현대힘스는 선박 블록 제작이 주력 사업으로 희망 공모가 범위 기준 최대 2194억원 몸값에 코스닥시장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힘스 가짜 홈페이지는 현대힘스 증권신고서 속 공모개요에 거짓을 교묘하게 섞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가령 공모주식 수 870만7000주와 현대힘스가 상장 주관사와 정한 희망 공모가 범위를 그대로 쓰면서도 구주매출 규모만 조작했다.

현대힘스는 2008년 4월 당시 현대중공업의 선박 블록과 배관 제조 부문을 현물 출자해 만들어졌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제이앤PE가 2019년 4월 특수목적법인(SPC) 허큘리스홀딩스를 세워 HD한국조선해양으로부터 지분 75%를 인수하면서 최대 주주에 올랐다.

홈페이지는 현대힘스 증권 신고서 내 주식 소유현황 형식을 그대로 활용하며 최대 주주에 허큘리스홀딩스를 표기했다. 지분율 75%도 바르게 적시됐다. 2대 주주는 지분 20%의 HD한국조선해양으로 적었다. 여기에 김현우라는 개인이 지분 5%를 보유하고 있다고 표기했다.

그러면서 김현우가 가진 지분을 공모가보다 저렴하게 매각한다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김현우씨가 가진 구주(148만주)를 희망 공모가 범위의 절반 수준인 3000원으로 신청을 받아 상장일 주가 상승과 관계없이 130~170%의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유혹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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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힘스 가짜 홈페이지 내 대주주 등 지배구조 현황이 거짓으로 표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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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현우는 진짜 증권신고서에는 없는 인물이다. 현대힘스 지분은 허큘리스홀딩스와 HD한국조선해양이 각각 75%, 25%로 양분하고 있다. 현대힘스 측은 “5% 지분을 가진 주주로 나오는 김현우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로 완전한 사기다”라고 말했다.

피싱 피해는 이미 예고된 채다. 해당 홈페이지에서 일부 물량을 신청해 본 결과 비라이트인베스트라는 곳으로부터 “물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증거금부터 얼른 내야 한다”는 답이 왔다. 비라이트인베스트먼트는 엑세스바이오의 투자 자회사로, 역시 명의만 도용됐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가짜 홈페이지를 열고 대표자 이름과 주주 현황 등에 사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는 방식의 피싱”이라며 “이들은 구주 물량을 싸게 넘긴다면서 투자자를 유혹하고, 증거금을 받은 뒤 상장일에 잠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상장 전 특별공모를 한다고 꾀어내는 방식의 사기는 빠르게 번지고 있다. 공모주의 가격제한폭 확대 조치 시행 후 상장일 따따블을 기록한 종목이 최근 잇따랐고, 상장 후에도 급등세를 지속하는 공모주가 나오면서 자연히 투자자의 공모주 관심이 커진 탓이다.

내년 1월 중 코스닥시장 상장을 목표한 벤처캐피털 HB인베스트먼트도 표적이 됐다. HB인베스트먼트는 진짜 홈페이지에 ‘최근 임직원을 사칭해 거짓 투자 권유 사기, 보이스 피싱 등 행위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피해가 없도록 각별히 주의를 요한다’고 공지했다.

HB인베스트먼트 관계자는 “과거 회사로 HB인베스트먼트 명함을 돌리며 구주권자 물량을 싸게 넘긴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이냐는 연락을 받고 해당 내용을 공지했다”면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등에서 투자 권유가 이뤄졌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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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인베스트먼트 홈페이지 내 투자 유의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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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후 연일 주가 상승을 이어가고 있는 LS머티리얼즈와 ##에코프로머티리얼즈도 공모주 사기의 대상이 된 바 있다. 당시 LS머티리얼즈는 공모주를 특별공급한다는 사기 사이트가 개설됐고,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에 참여하라는 피싱이 돌았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의 안일한 대응이 공모주 사기의 확산 및 진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하반기 최대어로 꼽혔던 두산로보틱스 상장 당시 한 차례 사기 청약 주의보를 내린 이후 사기 청약 심화에도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금감원은 자산운용검사국 내에 불공정거래 조사 전문가 중심의 유사투자자문업자 등의 불법행위 단속반을 설치하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와 업무협약을 체결, 공동 단속도 추진 중이라고 설명하지만 현대힘스 가짜 홈페이지는 이날까지도 버젓이 사전 공모주 신청을 받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전문가는 “신고가 늦어지는 투자 사기의 특성상 수사에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게 사실이지만, 사기 사이트 등의 적발은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면서 “묻지마식 투자를 삼가고 기업공시 내용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dont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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