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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1 (금)

“옆에 있던 여자더러 조끼 벗어달라”던 40대男, 파도 헤치며 혼자 5명 구했다 [우리사회 작은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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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튜브 매달려 먼 바다로 표류하던
아이 2명과 엄마 등 일가족 구조
파도 뚫고 수백미터 헤엄쳐
한 차례 구조 후 또다시 바다에 입수
“할일 했을 뿐, 상 받는 게 쑥스러워”


매일경제

바다에 표류하던 일가족 등 5명을 구한 이형태 씨.[사진 제공 =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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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3일 강원도 고성군의 한 군사지역 인근 한적한 해변. 고요한 오후, 어디선가 “사람이 떠내려 간다”는 소리와 함께 다급한 광경이 펼쳐졌다.

엄마와 함께 고무튜브에 매달린 아이 2명이 강한 파도에 먼 바다까지 떠밀려 간 것인데, 이를 본 가족의 이모가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파도가 일어 체력이 급격히 소진되면서 구조에 나선 이모는 가족과 함께 구조를 기다려야하는 상황에 처했고 게다가 몸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해변에서 이를 지켜 본 한 남성이 연이어 바다에 들어갔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에 결국 이 남성도 오히려 ‘요구조자’(구조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 신세가 됐다.

일가족과 남성 등 5명의 요구조자는 먼 바다로 점점 떠내려갔다.

군사지역 인근 해변이라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된 곳이었기 때문에 주변에는 인적이 뜸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곳을 지나던 주민 이형태(42) 씨가 현장을 마주하게 됐다.

“군사지역과 인접해서 원래 들어가면 안되는 해변인데 입구를 막았던 철망을 거둬들인 터였어요. 그래서 일부 피서객들이 해변에 들어갔더라고요. 먼 바다로 떠밀려 가는 사람들을 보고 구조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어요.”

이씨는 해변으로 뛰어가 구명조끼를 입은 한 여성을 보고 구명조끼를 벗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119에 구조 신고를 해달라고 소리친 후 입고 있던 반팔, 반바지 차림에 구명조끼를 걸치고 바다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수영을 익혀요. 저도 수영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수영 하나는 수영선수 못지않게 자신 있어 하는 이씨였지만 요구조자들이 이미 먼 바다로 떠내려 간데다 너울성 파도로 인해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씨는 바다에 표류하고 있는 엄마와 아이 2명, 이모 등 일가족과 이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한 남성까지 5명을 구해야 했다.

악조건 속에서 이씨는 우선 호흡이 불가할 정도로 힘든 상황이 된 아이들의 이모에게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건넸고 구조에 뛰어든 남성까지 수심이 낮은 곳까지 구조했다.

시간은 촉박했다.

“가족의 이모는 물에 가라앉기 시작해 이미 호흡이 어려웠어요. 우선 제가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그 이모에게 입혔어요. 구조에 나섰던 남성도 기진맥진한 상태여서 이들을 우선 수심이 낮은 곳까지 데려왔어요.”

이씨는 이들을 먼저 구조하고 가족의 이모가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다시 걸치고 바다로 또다시 뛰어들었다.

“튜브에 매달린 가족들이 점점 더 먼 바다로 갔어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바로 연이어 구조에 나섰죠.”

연이은 구조로 이씨도 체력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수백미터를 헤엄쳐 다시 엄마와 아이 2명에게 다가간 이씨는 뒤에서 밀 테니 튜브를 꼭 잡고 있으라고 했다.

“파도가 워낙 높아져서 파도에 맞으면 튜브에서 튕겨나갈 수 있었어요. 그래서 튜브와 아이 손을 꼭 잡고 있으라고 아이 엄마에게 말했죠.”

엄마와 아이 2명을 수심이 낮은 곳으로 구조하던 중 뒤에서 몰아친 파도를 맞고 그 충격에 남자 아이가 순간 튕겨져 나갔다.

“아이가 물속에 빠지는 것을 보고 다시 아이를 찾아야 했어요. 찰나의 시간이 정말 긴 것 같았죠. 그렇게 아이를 다시 찾아 가슴에 안고 구조했어요. 그 사이 엄마와 다른 아이는 해변에 닿았고 그렇게 모든 구조가 끝났어요.”

이씨는 해변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든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어요. 다리가 너무 아프고 경련이 와서 움직이질 못했어요. 그렇게 10여분쯤 그대로 누워 있었죠. 그 사이 구조대가 출동하는 걸 봤어요.”

지난해에도 바다에 표류하던 사람을 구조한 적이 있다는 이씨는 전화통화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며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로 이 일이 알려지는 게 쑥스럽다고 했다.

“다시 이런 상황을 마주해도 지체 없이 구조에 나설 것 같아요. 저도 7살 딸이 있는데 엄마와 아이들이 긴박한 상황에 처한 게 남의 일 같지가 않았죠. 이 일은 주변에 알리지도 않았어요.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상까지 준다니 최근에서야 아내에게 이 일을 털어놨죠.”

이씨는 이번 일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하 재단)에서 주관하는 ‘2023 생명존중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재단은 지난 2009년부터 생명존중대상을 통해 경찰, 소방, 해양경찰, 일반인 총 4개 부문에 걸쳐 시민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헌신적으로 인명 구조에 나선 공로자를 발굴하고 포상을 해오고 있다. 일상 속 생명존중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취지다. 올해부터는 생명존중 문화를 널리 확산한 문화예술 부문 시상도 신설했다.

시상식은 오는 15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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