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 기업·공공기관으로 직행…심사 통과율 100%
'보은 인사 수단' 전락…제도 유명무실
인사혁신처의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결과' 자료를 살펴본 결과 윤석열 대통령실 출신 인사 중 '취업제한심사'를 받은 이들은 총 25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박숙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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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용산 참모진'이 내년 4월 총선을 위해 속속 대통령실을 나오는 가운데, 출마 대신 기업·공공기관으로 거취를 옮긴 이들도 적지 않다. 고위공직 퇴직자는 새로 취업할 곳에서의 업무와 직전 업무가 밀접한 연관성이 있을 경우 취업이 제한되는데, 취업 전 자진해 관련 심사를 받은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은 25명뿐이었고, 모두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더팩트>가 인사혁신처의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결과' 자료를 전수분석 해보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부터 2023년 11월까지 대통령비서실과 대통령경호처 소속 퇴직공직자 중 '취업제한심사'를 자청해 받은 이들은 총 25명(대통령비서실 19명, 대통령경호처 6명)에 그쳤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퇴직 공직자는 3년간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기관이나 업체에는 취업할 수 없다. 공직자가 퇴직 후 취업을 염두에 두고, 재직 기간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업무를 불공정하게 수행할 가능성을 막는다는 취지다.
다만 별도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가능하다. 즉, 자진해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받고 결과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실에서 현재 근무하고 있는 인력은 400여 명으로 추정되는데, 지난해 언론에 알려진 행정관급 면직자 규모만 50여 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셀프 심사자' 규모는 적은 셈이다.
심사 결과 25명은 취업가능, 또는 취업승인 판단을 받아 모두 심사의 문턱을 넘었다. 취업 예정처는 이지스자산운용, CJ제일제당, SK쉴더스, SK에코플랜트, (주)에스피네이처, (주)현대자동차, (주)카카오모빌리티, (주)비바리퍼블리카, (주)녹십자홀딩스 등 사기업 및 민간단체가 12곳, 공기업·공공기관·공직 유관단체가 8곳, 법무법인 2곳, 특수법인 2곳, 법정기관 1곳 등이었다.
25명 중 21명은 취업 예정처와 직전 업무가 밀접한 연관성이 없다고 인정받았다. 나머지 4명에 대해선 업무 연관성은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지만 '퇴직 전 소속했던 기관에서 처리한 업무의 성격과 취업하려는 기관에서 담당할 업무의 성격을 고려할 때 취업 후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적거나', '취업하려는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자격증 등을 통해 그 전문성이 증명돼 취업 후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적은 경우'에 해당한다는 예외 판정을 받았다.
임헌조 전 대통령실 시민소통비서관은 공항철도 경영본부장에 취임해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도 사기업과 민간단체에 취업 예정이라고 밝힌 이들은 12곳이었다. /공항철도 누리집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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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명의 심사 대상자 중 비서관급에서는 3명이 재취업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8월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 및 시위 입체 분석'이라는 제목의 대통령실 내부 문건 유출 사건이 발생하자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임헌조 전 시민사회수석실 시민소통비서관은 그해 12월 공항철도 경영본부장으로 취임했다. 지난 3월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갑작스레 사퇴한 김일범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은 현대차그룹 부사장으로 영입돼 활동하고 있다. 최철규 전 대통령비서실 국민통합비서관은 지난 5일 강원랜드 부사장에 선임됐다.
행정관급에서도 다수의 재취업 현황이 확인됐다. 강윤묵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실 행정관이 한국IPTV방송협회 사무총장으로 거취를 옮겼다. 또 윤재우 전 디지털소통비서관실 선임행정관도 대통령실에서 2개월간의 짧은 근무를 마친 후, 올해 3월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 기획경영이사로 취임했다. 그는 김무성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당대표 시절 비서실 부실장을 지낸 바 있다. 심영주 전 국토교통비서관실 행정관은 지난 9월부터 (주)에스알 부사장으로 취임해 활동하고 있다. 임기는 2년이다. 심 전 행정관은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의 정책보좌관 출신으로, 지난해 5월 국민의힘 김은혜 경기지사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도 합류해 활동한 바 있다.
전문성 문제가 제기되며 '보은 인사' 논란도 불거졌다. 대통령경호처 출신 인사가 건설공제조합의 상임감사로 임명된 것이다. 지난 4월 선임된 최윤호 건설공제조합 상임감사는 대통령경호처에서 기획관리실장과 차장을 역임했다. 건설공제조합은 국내 종합건설사들이 출자해 만든 민간기관으로, 업무 연관성과 상관없이 위에서 내리꽂는 '낙하산 인사'라는 반발이 내부에서 나왔다. 대통령경호처 출신 인사가 건설공제조합 상임감사로 임명된 경우는 전임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이번이 6번째다.
'취업제한심사' 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는 비판은 역대 정부에서도 반복되어온 지적이다. 2017년 6월부터 2022년 5월 기간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가 퇴직 이후 재취업을 위해 받은 취업심사 건수는 총 74건인데, 이 가운데 94%인 70건이 '취업 가능·승인' 판정을 받았다. 취업제한 판정을 받은 지 한 달도 안 돼 같은 회사에 취업 승인이 된 경우도 있었다. 김영식 전 대통령 법무비서관은 법무법인 광장에 변호사로 취업하기 위해 심사를 받았으나 부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성 및 공정한 직무수행을 저해할 가능성 등을 고려해 취업이 제한됐다. 그러나 같은 달 이뤄진 재심사에선 예외규정이 인정된다며 취업이 승인됐다.
대통령실을 비롯해 각 부처 공직자들이 심사를 받지 않고 취업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예외 규정도 모호한 점이 가장 문제로 꼽힌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9월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총 2081명의 취업심사 대상 퇴직 공무원들이 취업심사를 받지 않고 임의로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3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016년부터 2022년 6월까지 이뤄진 7개 부처 퇴직공직자의 재취업 심사 통과율이 83.5%(430건 중 359건)이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업무의 공정성 확보'라는 제도의 원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심사 제도 규정을 정교하게 다듬고, 법 위반에 대해선 더 엄격히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취업 심사를 받지 않고 취업한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지만, 고발 여부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재량에 맡기고 있어 현재는 주로 과태료 부과만 이뤄지고 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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