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영화제·선댄스영화제 출품 ‘베이스볼 하모니’
미 캘리포니아 컬버시티·산타클라리타 극장서 상영
미 캘리포니아 컬버시티·산타클라리타 극장서 상영
어느 야구인을 다룬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잔잔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는 한국인과 흑인의 혼혈아다. 동아대(총장 이해우) 72학번 동문이자 야구부 4번 타자였다.
김영도 씨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베이스볼 하모니’가 국제영화제에서 여러차례 수상하자 동아대학교는 그의 스토리를 알려왔다.
그는 한국인과 흑인의 혼혈아다. 동아대(총장 이해우) 72학번 동문이자 야구부 4번 타자였다.
김영도 씨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베이스볼 하모니’가 국제영화제에서 여러차례 수상하자 동아대학교는 그의 스토리를 알려왔다.
동아대 출신 한국 최초 흑인혼혈 야구선수 김영도 씨의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포스터. |
‘베이스볼 하모니(BASEBALL HARMONY, 감독 Joo-il Gwak·Amy Hutchinson)’는 한국 최초의 흑인혼혈 야구선수이자 체육교사, 야구감독이었던 김 씨의 인생 역경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 기독교 영화제’에서 베스트 다큐, 베스트 감독, 베스트 작가, 베스트 음악·편집 상을 휩쓸었다.
140년 전통의 ‘레인칼리지’에서 주최한 ‘Award ceremony at Lane doc festival’에서도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세계 최고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 출품작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베이스볼 하모니’는 그가 스스로 고아원에 걸어 들어간 사연, 어머니 산소 방문, 야구선수 시절 친구들, 교사로 재직했던 대신중학교, 35년 만에 다시 잡아 본 야구 감독용 노크배트, 이제는 인종차별 발언을 너털웃음으로 웃어넘길 수 있게 된 김 씨의 모습을 담았다.
김영도 씨가 활약했던 동아대 야구부의 동료선수들. |
이 영화는 한국 야구 역사 일부분이자 80년대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 2023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5% 생활인구로 자리잡은 이민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는 7일과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컬버 시티와 산티클라리타 시티에서 각각 상영될 예정이다.
1950년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김영도 씨는 한국전쟁 중 태어난 흑인혼혈이 그랬듯 차별과 설움을 겪으며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다 9살 때 고아원에 스스로 들어갔다.
6학년 때부터 야구를 배우기 시작하며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야구를 시작하자마자 그는 실력을 발휘해 동대문중학교 야구부에 뽑혔고 동대문상고에 진학해서도 1루수 4번 타자로 활약했다.
1968년엔 동아대 야구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당시 유일한 지방 팀이었던 동아대를 지휘한 부산의 대표 야구인 고 안영필 감독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동아대 시절에도 그는 3, 4번 타자와 1루수를 도맡으며 ‘그라운드의 와일드 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중심타선에서 활약하고 신체 조건도 뛰어나며 승부욕도 뒤지지 않았지만 김영도 씨는 한국야구의 주류에 녹아들지 못했다. 후학을 가르치고 싶은 꿈이 있던 그는 동아대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졸업한 김 씨는 1980년 부산 대신중학교에서 체육교사이자 야구감독으로 활동하며 ‘한국 최초의 흑인혼혈 체육교사이자 야구감독’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이때 결혼하고 두 자녀도 태어났으며 경상도 지역 혼혈인협회 회장을 10여년 맡기도 했다.
김영도 씨(맨 왼쪽)의 대학 졸업사진. |
하지만 인종차별은 김 씨 가족을 계속 힘들게 했다. 결국 본인의 인생을 바꿔놓았던 야구도 그만두고 37세가 되던 해 자녀들을 위해 미국 이민 길에 올랐다.
미국 이민 후 야구를 기억에서 잊고 아버지로서 삶을 살았던 그는 다큐멘터리 ‘베이스볼 하모니’에서 야구 이야기를 웃으며 쏟아냈다.
다큐멘터리 제작진과 김영도 씨는 지난해 동아대를 방문해 캠퍼스와 야구부 훈련장 등을 둘러보며 추억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뒤 떠났다.
영남취재본부 김용우 기자 kimpro77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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