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지금처럼 국민에게 답이 없는 시험지만 계속 내놓으면 정치 불안정, 국가 위기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며 “정치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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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대표는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지난 대선부터 국민은 윤석열·이재명 둘 중 한명을 고르라는, 내키지 않는 시험 문제를 받아 들었다. 이대로 가면 내년 4월 총선에 똑같은 시험 문제를 3년째 받게 된다”며 “(새로운 선택지가) 나와야 한다. 현재 정답이 없다고 믿는 국민(무당층)이 30%인데, 그 숫자를 줄이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는 물론 돈 봉투 의혹 등에 휩싸인 민주당에 대해선 “정치에 절망하는 국민이 요구하는 건 성직자처럼 도덕적이라는 게 아니다. 그저 국민 평균만큼이라도 깨끗하고 정직해다오, 이게 그렇게 어렵나”라고 꼬집었다.
지난 6월 귀국 이후 대학 강연을 하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던 그는 총선을 4개월여 앞두고 잇달아 공개 발언을 통해 윤석열 정부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그간 윤석열 정부의 잘못에 대해서는 SNS를 통해 비판했지만, 민주당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도 자제했다”며 “스스로 개혁하기를 기다렸던 것인데, 다섯 달을 지나면서 기다림의 밑천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Q : 대외 활동이 부쩍 늘었다.
A : “그간 대한민국 현실을 지켜봐 왔는데, 이제는 말을 하고 필요한 행동도 해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Q : 어조도 세졌다. 임기 절반도 지나지 않은 현 정부를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A : “이대로 가면 민주화 이후 최악의 정부로 기록될 것 같다는 얘기다. ‘이대로 가면’이란 전제를 달았다. 지금이라도 크게 변해서 그런 불행을 피하길 바란다. 경제·정치·외교 어느 한 분야도 퇴행하지 않은 곳이 없다.”
Q : 뭐가 제일 문제인가.
A : “일반 국민은 경제가 제일 심각하다. 반찬을 줄여야 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 경제성장률은 물론 잠재성장률까지 1%대로 떨어졌다. 모처럼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부활했으니 잘해줬으면 좋겠다.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배치하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판단하면 오류가 줄 것이다. 작은 경험 가진 사람으로서 제안 드린다.”
Q : 야당인 민주당에 민심이 향하는 것도 아니다.
A : “다 아는 것 아닌가. 대표를 포함해 수많은 의원이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그래도 별일 아닌 것처럼 뭉개며 지나가고 있다. 국가 위기, 국민 고통에 대한 응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관해 토론도 별로 안 한다. 이런 데 국민이 질린 것 아니겠나.”
Q : 민주당에서 ‘암컷’ 등 막말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A : “한심하다. TV 시사 프로그램 주제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민주당 막말이다. 더 치명적인 건 의원들 단체 토론방에서 논쟁이 계속됐다는 것이다. 막말을 실수로 할 수 있지만, 그걸 옹호하는 국회의원이 있다? 그럼 민주당은 뭐가 되나. 통렬한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
Q : 법원이 이재명 대표 최측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에게 징역 5년 형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했는데 민주당은 조용하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였다.
A : “도덕적 감수성이 무디어졌다. 그 정도 사건이어도 ‘중대한 범죄가 아니다’ 이렇게 뭉개고 지나가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지 않나. 그래서 어떻게 국민 신뢰를 받겠나. 정치에 절망하는 국민이 요구하는 건 성직자처럼 도덕적이라는 게 아니다. 그저 국민 평균만큼이라도 깨끗하고 정직해다오, 이게 그렇게 어렵나”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선을 넘는 팬덤 정치도 의지만 있으면 바꿀 수 있다”며 “이를 방치하면 당내 민주주의를 억압하게 되고 당이 질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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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대표는 민주당에서 5선 의원을 지내면서 전남지사, 국무총리, 당 대표 등 요직을 모두 거쳤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날 ‘민주당이 어떻게 해야 하냐’는 물음엔 “별로 충고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개선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슨 충고를 하겠나. 말해봤자 부질없는 일이라는 걸 안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팬덤 정치에 대한 우려가 크다.
A : “대단히 적대적이고 폭력적이다. 말과 글뿐만 아니라 위협을 느낄만한 행동까지 간다. (그게) 좋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으니 안 바뀌는 거다.”
Q : 여야 적대 정치를 어떻게 바꿔야 하나.
A : “지난 대선부터 국민은 윤석열·이재명 둘 중 한명을 고르라는, 내키지 않는 시험 문제를 받아 들었다. 그 결과를 지금 겪는 거다. 이대로 가면 내년 4월 총선에 똑같은 시험 문제를 3년째 받게 된다. 여론조사를 보면 약 30%는 이 문제에 정답이 없다는 사람도 있다.”
Q : 그러면 1·2번 외에 새로운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인가.
A : “나와야 한다.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제3의 목소리가 나오고, 그들이 캐스팅보트를 쥔다면 정치 양극화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
Q : 선택지를 넓히는 일에 직접 나설 건가.
A : “지금 이 국면에 국가를 위해서 제가 할 일이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하고 있고, 결론이 난다면 그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
Q : 제3지대 신당 추진하는 분 가운데 구체적으로 소통하는 분이 있나.
A : “일부러 만나는 건 아닌데, 간간이 찾아오는 분도 있다.”
Q : 과거 안철수 의원이 제3당을 만들었지만 실패했다.
A : “2016년에 비해 양당 독과점의 폐해는 훨씬 심각해졌다. 이대로 두면 안 된다. 잘못된 시험지 앞에서 끙끙대는 그 몇 년 안에 대한민국이 훨씬 더 망가질 수도 있지 않나. 그런 두려움을 막아주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책임이다.”
Q : 민주당 일부는 ‘적전분열’이라고 비난할 거다.
A : “그런 말 하기 전에 민주당을 매력 있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게 나을 거다.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들어야 민주당이 강해진다’고 생각하면 그게 무슨 좋은 태도인가. 민주당이 내부 문제를 없애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도록 노력해야지, 민주당은 이대로 그냥 가겠다? 그러면 대한민국이 위기에서 구출되겠나.”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이념 과잉으로 시대착오적인 일을 벌이고 있다”며 “균형잡힌 식견과 경험 가진 사람들을 중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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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진행되던 1일 오후 국회에선 민주당 주도로 손준성·이정섭 검사 탄핵안이 처리됐다. 함께 탄핵안이 발의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이날 오전 사의를 표명했다. 국무회의에선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에 대한 거부권이 의결됐다.
Q : 야당의 강행 처리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반복됐다.
A : “둘 다 떼어놓고 보면 합법적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의미 없는 투쟁의 반복이다. 여야가 어려워도 대화해야 한다. 각자 자기 진영만 보고 ‘거부했다’ ‘통과시켰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Q : 이동관 위원장 탄핵안은 어떻게 보나.
A : “원래 잘못된 인사였다. 탄핵안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방통위가 2명으로 운영된 건 누가 봐도 기형적이었다.”
Q : 윤석열 정부 평가가 박하다. 한·일 외교 복원은 긍정적인 것 아닌가.
A : “불만과 불안의 관계개선일 뿐이다. 한국에선 역사문제와 대법원 판단을 동시에 외면한 데 대한 불만이 크고, 일본 입장에선 다음 정부에서도 이 합의가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크다. 정의로운 관계 개선을 근본부터 어그러뜨려 놓았다.”
Q : 문재인 정부도 실책이 많았다. 부동산이 대표적이다.
A : “부동산 정책은 국민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신뢰가 없으니 그다음 정책도 신뢰를 얻지 못한 거다. 공급 부족이라는 비판에 시달린 건 ‘3기 신도시’ 계획을 내놓는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Q :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였다. 정권 교체는 문재인 정부의 실패 아닌가.
A : “동의하지 않는다. 대선 결과가 앞선 정권의 영향이라는 건 잘못된 판단이다. 이명박 정부가 잘해서 박근혜 정부가 창출된 건 아니지 않나. 흔히 국회의원 선거는 회고 투표, 대선은 전망 투표라고 한다. 윤석열·이재명 두 후보 중에 어떤 대통령과 5년을 갈 거냐는 시험지에서 국민이 선택한 결과일 뿐이다.”
Q : 이 전 대표의 ‘엄근진’(엄중·근엄·진지) 캐릭터는 인기 없다는 지적도 있다.
A : “따져보자. 대한민국 정치를 망가뜨린 건 ‘엄근진’의 반대 아니냐. 경솔하고 거칠고 진지하지 않고 그런 행태가 정치를 더 망가뜨렸다. 대중이 좋아하는 정치 행태가 대한민국을 좋게 만들고 있는지 고민해 볼 문제다.”
오현석·김정재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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