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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美日中蘇의 남북교차승인 유엔서 제안…키신저의 한반도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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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노태우·YS·DJ·노무현 등 한국 대통령 다수와 대면

트럼프 시절 '美中 빅딜' 통한 한반도 해법 조언하기도

연합뉴스

1974년 11월 한미정상회담에 배석한 키신저(맨 오른쪽)
[연합뉴스 자료사진]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29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한국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9년부터 1977년까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며 한반도 문제에도 깊이 관여했다.

국무장관 시절인 1970년대 중반 유엔에서 중국과 소련이 한국을 승인하고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승인하는 이른바 '교차승인' 구상과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을 제안한 일이 대표적이다.

1975년 9월 유엔 총회에서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은 "북한 및 북한의 동맹국이 대한국 관계개선 조치를 취하면, 한국과 미국도 그것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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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6월 뉴욕서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과 악수하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키신저 본인이 주도적으로 기획한 미·중, 미·소 데탕트의 흐름 속에, 이른바 '강대국 정치'를 통해 한반도 냉전구조를 뒤흔든다는 과감한 구상이었다.

모든 외교의 중심에 미중, 미소 등 강대국간의 관계를 올려 놓았던 고인은 이른바 한반도 주변 4강인 미·소·중·일을 움직여 한반도의 냉전 구도를 깨고 긴장을 완화하려는 제안을 던진 셈이었다.

결국 1991년 탈냉전의 흐름을 타고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은 성사됐지만 '4강'의 남북한 교차 승인은 아직 북미, 북일 수교가 이뤄지지 못함으로써 미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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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청와대에서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만난 김대중 당시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더욱이 키신저가 현직에 있을 당시에는 본격적으로 불거지지 않았던 북한 핵문제가 한반도 안보의 '게임 체인저'로 자리한 지금은 교차 승인이 더욱 요원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본격화하기 전에 키신저의 교차승인 구상이 실현됐다면 북핵 문제와 한반도 안보 지형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또한 키신저는 국무장관직에서 물러난 뒤인 1985년 11월 중국 방문 때 중국의 당시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과 만나 정치 문제는 남·북한이 양자 회담을 하고 군사·안보 문제에 대해 남·북·미·중이 4자 회담을 하는 한반도 관련 투트랙 회담 구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제안에서 보듯 키신저는 생전 한반도 문제를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한 강대국 관계의 큰 틀에서 조망했고, 강대국간 타협을 통해서만 중대 진전을 만들 수 있다는 견해를 고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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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청와대서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과 만난 노무현 당시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다른 세계 각 지역의 현안들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문제에서 역시 '대국 관계' 중심의 현실주의 시각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런 성향은 그의 저작과 기고에도 적시돼 있다.

2014년 펴낸 '세계질서'(World Order)에서 "(한국전쟁 때) 미군이 평양-원산 라인에서 진격을 멈췄으면 북한 전쟁수행 능력의 대부분을 궤멸시키고 북한 인구의 90%를 흡수해 통일 한국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며 "국경을 놓고 중국과 문제가 될 소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썼다.

또 2017년 8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는 "워싱턴과 베이징의 상호이해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본질적인 선결 조건"이라며 "구체적인 행동을 담은 미·중 공동성명을 통해 평양을 더욱 고립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2018년 1월 상원 군사위의 국가안보전략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선제공격으로 북한을 다루려는 유혹은 강하다"면서 "세계의 중요한 지역, 적어도 아시아권에 의한 지지 없이 중국과 러시아 접경에서 하는 미국의 독자전쟁을 매우 우려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외교정책을 조언했던 그는 미중간 타협을 통한 북핵 해결 방안 차원에서 북한 정권 붕괴 후 주한미군을 대부분 철수한다는 약속을 미국이 중국에 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생전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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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청와대에서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만난 이명박 당시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1974년 11월 청와대에서 열린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제럴드 포드 당시 미 대통령의 정상회담 때 국무장관 자격으로 배석한 바 있다.

또 공직에서 은퇴한 후 1990년 노태우, 1997년 김영삼, 2001년 김대중, 2003년 노무현, 2010년 이명박, 2015년 박근혜 등 당시 한국의 현직 대통령을 예방해 외교·안보정책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바 있다.

1973년 8월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김대중(DJ) 납치사건' 때 미국이 박정희 정권에 DJ 신변 안전 보장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설도 있었다.

그러나 필립 하비브 당시 주한 미국대사와 로널드 레이너드 당시 국무부 한국과장이 그 과정을 주도했으며, 키신저의 실질적 역할은 미미했다는 주장도 레이너드 전 과장 아들의 2003년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을 통해 제기된 바 있다.

1974년 3월, DJ가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할 경우 받아들일 것을 주한 미국대사관에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이 지시했다는 사실이 1998년 공개된 미국 비밀 외교전문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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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뉴욕에서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과 환담하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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