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기자와 만난 김씨는 “힘들어도 피해자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 목소리로 이야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박진성 시인 2심 실형 선고 관련 피해자 김현진씨(왼쪽)와 이은의 변호사가 지난 1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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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씨는 늘 재판정에 출석해 ‘발언’했다
지난 8일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박씨는 그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블로그 등을 통해 김씨의 폭로가 허위라고 주장해 왔다. 박씨는 “‘재발방지’의 목적으로 법률 전문가의 자문을 구한 뒤 게시한다”며 김씨의 주민등록증을 온라인에 유포하기도 했다. “이틀에 걸쳐 지웠지만 지워지지 않은” 김씨의 개인정보는 무차별적으로 퍼졌다. 피해자를 향한 도를 넘은 글이 온라인상에 넘쳐났다.
박씨는 문단 내 성범죄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승소한 판결을 앞세워 언론사들에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고 합의금을 받아냈다. 그 소송들에 김씨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김씨는 “피해자의 증언이 반영되지 않은 재판이자, 박씨와 언론사 간 합의로 끝난 흐지부지한 결과”라고 말했다. 김씨는 법원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어떤 면에선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였다. 김씨 사건을 맡은 이은의 변호사는 민사소송 1심에서부터 재판부에 ‘당사자 심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2021년 4월 9일, 김씨는 재판정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로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그날은 그의 생일이기도 했다. 그는 “피해자가 문서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두 손이 벌벌 떨릴 정도로 긴장했지만 최대한 제가 당한 피해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계속 ‘2차 가해’에 시달린 터라 법정에 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피해자가 나선다는 것은 다른 한편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가 나섰을 때 판사의 반응이나 법정 분위기가 확실히 달랐다.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는 생각에 계속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발언 기회를 계속 만들었고, 김씨는 재판정에 출석해 매번 발언에 나섰다.
김씨는 항상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2015년 박진성에게 성희롱을 당했습니다’라는 말로 증언을 시작했다. 그는 “그때마다 언제나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그 한 문장을 자신의 언어로, 공개적으로 말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탓이었다. 김씨는 “그건 사실 (성희롱을 당한) 2016년부터 계속 제가 해온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침묵하지 말고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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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피해자였지만 오히려 박씨와 그에게 동조하는 사람들로부터 ‘허위 미투 가해자’로 지목됐다. 그는 “가해자는 물론이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 모두 가해자를 ‘허위 미투의 피해자’로 만들려는 것 같았다. 사회적으로 권위가 있는 사람들이 (박씨에 대해) 발언하고 이를 언론이 그대로 전하면, (기사를 본 이용자들에 의해) 악성댓글이 달리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박씨를 ‘괴물’로 만든 건 가해자에 동조한 이들 모두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법 체계부터 남성 중심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장애 남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온 가부장제 사회의 법 체계 안에서는 ‘영점’이 잘못돼 있다”며 “성범죄 피해가 대부분 여성인데도, 객관화되고 합리화한 기준표가 잡혀 있지 않다. 여성의 피해 사실을 의심하고, ‘그 정도’는 괜찮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허위 미투’라며 믿고 싶은 것을 노골화한 결과가 바로 ‘박진성 사례’”라고 말했다.
피해자를 오히려 ‘허위 미투 가해자’로 내몬 백래시는 이 지점에서 발생했다. 실제 박씨의 주장에 동조한 이들은 페미니즘 전체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고 ‘무고 피해를 보여주는 사례’라고도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미투 이전엔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 문제되지 않았는데, 미투 이후 그 행동이 ‘부당한 폭력’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이에 불안을 느끼고 불만을 갖게 된 이들이 ‘박진성 사례’에 이입한 것이라 본다”며 “엄밀히 보면 ‘자기 합리화’, ‘자기 연민’에 가깝다”고 말했다.
박씨의 실형 이후 사회는 놀랍도록 조용하다. 가해 행위에 동조했던 사람들도 아무 말이 없다. 김씨는 “(항소심에서) ‘1년 8월의 실형’이 선고돼 법정 구속까지 됐는데, 사회가 너무 조용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그간 가해자의 상황은 자살 소동까지 자세히 언급하고 기사로도 실어줬으면서 제 사건의 진행 과정과 그 안에 담긴 서사에는 침묵하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자기 합리화’에 편승했던 사람들이 이번 판결을 계기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을 때 사회가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침묵하지 말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한테 사과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사회에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대로 이뤄낸 판결, “포기하지 않아 고맙다”
민사소송 2심이 진행됐던 청주지방법원 앞에서 김현진씨(가운데 모자이크한 사람)와 연대한 사람들이 기념 촬영을 했다. 김씨 오른쪽에 이은의 변호사(오른쪽에서 세번째)와 이 변호사 뒤에 천희란 작가(파란 마스크)도 함께 했다. 김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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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을 꿈꿨던 김씨는 현재 IT계열 쪽에서 일한다. 아직 시를 읽기는 “어렵다”고 했다. “2017년 2차 가해가 시작되던 때부터 시를 쓰거나 읽기가 힘들어졌어요. 최근에 좋아하는 송승언 시인의 <철과 오크> 시집을 읽으려고 했는데 몇 장 보다가 더 읽지 못했습니다. 어떤 부분이 비어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당장 채워질 것 같지는 않지만, 서서히 자연스럽게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혼자였지만 그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사건을 담당한 이 변호사뿐만 아니라 연대자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의 또 다른 피해자인 유진목 작가는 직접 나서서 김씨의 초기 소송 비용을 모았고 천희란 작가는 김씨의 재판을 하나도 빠짐없이 방청하며 자리를 지켰다. 모두가 연대자이면서 김씨 사건의 기록자였다. 김씨는 “연대해주는 분들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많은 이들이 손잡고 어려운 강을 건넜는데, 그 선두에서 피해자가 포기하지 않아 고마웠다. 연대했던 사람들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 유선희 기자 yu@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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