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아프리카에서 대통령의 딸로 태어나 평양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그야말로 영화같은 인생을 산 여성이 있습니다
한국말을 모국어처럼 잘 하고 한반도가 고향이라 말하는 모니카 마시아스 씨를 김정아 기자가 만났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대통령의 딸로 태어나 평양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그야말로 영화같은 인생을 산 여성이 있습니다
한국말을 모국어처럼 잘 하고 한반도가 고향이라 말하는 모니카 마시아스 씨를 김정아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인구 78만 명의 작은 나라 아프리카 적도기니.
적도기니의 초대 대통령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의 딸 모니카는 1979년 7살의 나이에 평양으로 보내집니다.
조카가 일으킨 쿠데타로 실각위기에 처하자 아버지가 친분이 있던 북한의 김일성에게 가족을 부탁한 겁니다.
[인터뷰:모니카 마시아스, (41세)]
"우리를 김일성 주석에게 맡긴다면서 공부 끝나고 기니에 와서 나라 건설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김일성 주석은) 잔소리를 잘해요. 나이 드신 분들이 어린사람들한테 잔소리하듯이..."
모니카는 특수고위층만 들어간다는 만경대혁명학원에서 11년 동안 교육을 받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혹독한 군사훈련!
[인터뷰:모니카 마시아스, (41세)]
"식량을 딱 한 주일분을 줘요. 그런데 첫 번째 날, 두 번째 날에 너무 배고파서 7일 분량을 다 먹어버렸어요. 그래서 다음 주에 새로 받을 때까지 굶었던 거예요."
반미 감정이 고조된 북한에 살 때는, 여느 북한사람들처럼, 남한 사람들을 불쌍하다고 여겼다는 모니카 씨.
그러나 직접 자유세계를 경험하고 나서는 혼란스런 생각을 접었습니다.
[인터뷰:모니카 마시아스, (41세)]
"암만해도 남한이 경제 쪽으로는 발전이 됐잖아요. 선진국이고 북한에 비해, 가꾸는 데서는 확실히 차이가 나요. 진짜 문화는, 대한민국 문화는 하나예요 체제가 다를 뿐이지..."
외국인 신분으로 틈새의 자유도 누리며 보낸 평양 대학 시절.
그때 들었던 가수 조용필의 '친구여'는 늘 그녀의 가슴속에 깊게 남아있습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한반도가 엄마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고 싶다는 모니카 씨.
[인터뷰:모니카 마시아스, (41세)]
"한반도가 있어서 제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YTN 김정아[ja-kim@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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