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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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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제작된 '어른 김장하'…"어른의 의미 재발견하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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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방송 다큐로 반향 일으킨 작품…15일 개봉

연합뉴스

'어른 김장하'의 한 장면
[시네마 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이 작품의 제목을 정할 때 '어른'이란 단어가 가부장적인 게 아닌가, '꼰대' 같이 나쁜 의미가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그러나 생각해 보면 어른은 사실 나쁜 의미가 아니었던 거죠. 진주의 한 관객은 '어른이 이렇게 푸근한 단어, 기대고 싶은 단어라는 걸 재발견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경남 진주에서 약 60년 동안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남몰래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아낌없이 나눠준 김장하(79) 선생의 삶을 조명해 큰 반향을 일으킨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의 김현지 감독은 8일 서울 용산구의 한 영화관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른 김장하'는 MBC경남의 PD이기도 한 김 감독이 방송용으로 제작해 지난해 말 방영한 다큐로,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아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서도 공개됐다. 미공개 클립을 추가하는 등 편집을 거쳐 영화로 제작돼 오는 15일 개봉한다.

김 감독은 처음부터 개봉을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만들었다며 "성공적으로 개봉하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털어놨다.

'어른 김장하'는 김 감독과 경남도민일보 기자 출신 김주완 작가의 공동 취재로 이뤄진 결실이다. 김 작가는 30년 전 기자 시절 김 선생을 취재하려 시도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 2021년 김 감독이 김 작가에게 다큐 제작을 제안하면서 두 사람의 공동 취재가 시작됐다.

이 작품은 30년 만에 김 선생의 인터뷰를 시도하는 김 작가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김 작가는 김 선생의 한약방을 찾아가 이것저것 묻지만, 선생은 자신의 선행이 드러날 만한 질문만 나오면 입을 닫아버린다.

결국 인터뷰를 포기한 김 작가는 김 선생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을 찾아간다. 이른바 '주변 취재'에 나선 것이다.

김 선생이 선뜻 내준 돈으로 대학에 다닌 장학생, 선생의 기부로 운영된 지역 신문사, 서점, 시민단체, 극단 등에 속한 사람들의 증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김 선생은 돈을 내주면서도 훈계 같은 걸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의 사연을 끝까지 묵묵히 들었다.

김 작가는 "선생님은 장학금을 주면서도 '공부 열심히 해라', '훌륭한 사람이 돼라' 이런 주문조차도 하지 않았다"며 "제가 선생님의 삶과 태도에서 가장 많이 영향받은 것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과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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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김장하'의 한 장면
[시네마 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남에게 도움을 주고 나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김 선생의 마음은 "줬으면 그만이지, 보답받을 이유가 없다"는 그의 말에 집약돼 있다.

김 선생의 장학생 중에는 헌법재판소 문형배 재판관도 있다. 이 작품엔 문 재판관이 고교 시절 김 선생을 찾아가 장학금을 받았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김 선생은 문 재판관에게 "이 사회의 것을 네게 줬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사회에 갚아라"고 말했다.

김 선생은 이날 시사회에도 나오지 않았다. 김 감독이 시사회 얘기를 꺼냈더니 선생은 "저는 안 갑니다, 왜 가나요"라며 한마디로 거절했다고 한다. 시사회엔 김 감독과 김 작가 외에 선생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김 선생의 장학생으로 지금은 증권사에서 일하는 김종명 씨는 "남이 제게 그렇게 해줄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 한 일"이라며 "그렇게 (장학금을) 받고 나니 '이런 세상도 다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또 다른 장학생인 정경순 씨는 김 선생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돈을 보내려고 했다가 "너나 잘 살아라"라는 말을 들은 기억을 떠올리며 "제겐 부모님 같고, 아주 큰 오빠 같고, 큰 나무 같은 어른"이라고 털어놨다.

김 선생은 남에겐 한없이 베풀면서도 자신에겐 엄격했다. 다큐는 오래돼 다 닳은 옷을 입고, 수십 년 동안 같은 찻잔과 방석을 쓰는 김 선생의 검소한 모습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약간 구부정한 몸으로 종종걸음을 하듯 걸어가는 김 선생의 뒷모습을 자주 비춘다. 이기주의에 빠져 남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을 만큼 각박해진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선생의 뒤를 한 번이라도 따라 본다면 어떻겠냐고 말하는 듯하다.

김 감독은 시사회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요즘 인터넷을 하다 보면 우리가 사랑해온 단어들이 오염되는 것 같아 너무 슬퍼요. 단어의 뜻이 원래 뜻과 다르게 사용되는 거죠. 김장하 선생님은 어른이란 단어를 원래 의미로 되돌렸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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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김장하'의 한 장면
[시네마 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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