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대재해를 감축하기 위해 위험성 평가와 점검을 강화했지만, 대형건설사들의 안전불감증이 여전해 약발이 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정부는 올해 남은 기간 동안 건설사들의 위험성 평가 역량을 강화하고, 고위험 사업장에 대해 집중 점검을 실시할 방침이다. 또 최근에 추락사고가 다수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안전조치 여부를 집중 점검해 재발 사고를 막겠다는 계획이다.
◆ 9월까지 산업재해 사망자 10% 줄었지만…중·대형건설사 큰 폭 증가
고용노동부가 6일 발표한 '2023년 9월말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현황'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누적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459명(449건)으로 전년 동기 510명(483건) 대비 51명(10.0%) 감소했다. 사고건수 역시 34건(7.0%) 줄었다.
다만 업종·규모별로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특히 50인(억) 이상 중·대형건설사들의 중대재해가 갈수록 늘고 있어 정부가 시행 중인 '중대재해처벌법'이 무색해질 정도다. 중대재해 대상자도 대부분 외국인들로, 외국인 건설근로자들에게 '죽음의 공사 현장'이 되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전체 건설업 사망자는 240명으로 전년(253명) 대비 13명 줄었다. 같은 기간 사망사고건수 역시 243명에서 235명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50인(억) 이상 건설업 산업재해 사망자와 사망사고건수는 각각 15명, 21건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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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시공능력 상위 10대 건설사의 경우 중대재해 재발률이 높았다. 반복되는 중대재해로 고용부의 집중 감독 대상에 오른 DL이앤씨, 현대건설, 롯데건설, 대우건설 등이 대표적이다.
DL이앤씨는 지난 1월 27일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7건의 사망사고로 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는 국내 모든 건설사 중 최대 수치다. 이에 고용부는 올해 하반기 DL이앤씨 전 사업장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3분기 중 실시된 시공현장 감독에선 안전보건 관리 미흡이 적발돼 3억8000만원의 과태료도 부과했다.
현대건설과 롯데건설, 대우건설 등도 고용부 감독 대상에 포함됐다. 현대건설은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6명(6건), 롯데건설과 대우건설은 각각 5명(5건)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고용부는 5명 이상 사망자를 낸 현대건설·롯데건설·대우건설의 전국 모든 현장에 대해 10~11월 중 일제 감독을 실시할 예정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망사고가 발생한 현장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엄정히 수사해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마친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건설사들의 안전불감증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중에서도 올해 들어 집중 사망사고를 낸 DL이앤씨가 집중 타깃이 됐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마창민 DL E&C 대표이사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3.10.12 leehs@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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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창민 DL이앤씨 대표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사고를 막을 책임을 가진 원청으로서 굉장히 안타깝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다"며 "피해자와 유가족께 깊은 유감과 위로를 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업의 전반적인 부분을 디테일하게 파악하고 있는 제가 좀 더 확실한 안전 대책을 수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노력에 못 미쳐서 결과가 좋지 않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마 대표는 1년 전 환노위 국정감사장에도 증인으로 출석해 "안전 대책을 강화하고 현장에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다짐이 무색하게 올해도 사고는 이어졌다.
◆ 고용부, 건설사 위험성 평가 역량 강화…건설업 집중 점검
정부도 대형건설사들의 반복되는 중대재해를 심각히 보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건설사 위험성 평가 강화, 건설업종 집중 점검 외에 뚜렷한 해법은 없는 상황이다.
류경희 고용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반적인 중대재해는 감소하고 있는데 50억 이상 건설업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면서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저희들도 고민이긴 한데, 확실한 것은 처벌과 단속만으로는 중대재해를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은 매우 명백한 것 같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서울=뉴스핌] 이정식 고용부 장관이 3일 오후, 경기 광주시 소재 석재 제조 가공업체를 방문하여 사업장의 폭염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사진=고용노동부 ] 2023.08.03 photo@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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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건설사들의 안전 문화·관행을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장관은 "대형 건설사에서 반복적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아직도 안전보건관리체계가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뿐만 아니라 안전 문화·관행을 전반적으로 다시 한번 살펴보고 대대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수천억원에서 수조원 규모의 대형건설 현장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공사 환경이 열악한 50억원 이상 1000억원 미만의 공사 현장에서도 중대재해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최태호 고용부 산재예방감독정책관은 "공사규모 800억원 이상은 토목 공사가 많은 편이고, 120억원에서 800억 구간은 건축 공사가 많은데 통계적으로 보면 건축 분야에서 토목 부분보다 중대재해가 많이 일어나는 경향성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류 본부장은 "50억 이상 건설업은 (사고사망자가) 전년 동기 대비 15명 늘었는데 120억~800억 사이 중규모 건설 현장은 오히려 더 증가했다"면서 "이 중규모 건설 현장을 우리가 어떻게 안전 관리하느냐에 따라 사실상 중대재해의 획기적인 감축 성공이 여기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류 본부장은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정부 계획에 대해 "산업안전 쪽에서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문제이기 때문에 처벌과 단속은 있어야 한다"면서도 "처벌과 단속이라는 일면 규제 가지고 이걸 완벽하게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접근법도 같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류 본부장은 "정부의 처벌에 의한 규율보다는 스스로 마음이 통해서 실천하는 자기 규율이 안전의 효과는 훨씬 더 클 것"이라며 "그 핵심적인 수단이 위험성 평가이고, 위험성 평가에 대한 결과가 반드시 근로자들에게 전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패트롤카를 활용한 건설현장 점검 모습 [사진=안전보건공단] 2019.11.04 jsh@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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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의 부족한 수사 인력도 중대재해를 막지 못하는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재 고용부의 중대재해 수사 정원은 100명 남짓이다. 수사 업무가 가중되면서 다른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 30명을 재배치해 현재 운영하고 있는 현원은 130명이다. 내년 고용부 예산안에 중대재해 수사관 15명 충원 계획을 반영했는데, 고용부 의지가 관철된다 해도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는 역부족이다.
류 본부장은 "많은 경우에는 수사 결과 보고서 총 서류가 1만4000페이지에 달한다. 이거 하나 만드는 작업도 쉽지 않은 과제"라며 "옛날보다 강제 수가가 거의 30배 증가했다. 현재로서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충분한 노하우도 축적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업무에 로드가 걸리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우리 쪽에서 수사를 끝내고 내사 종결이든, 아니면 검찰로 송치하든 끝낸 게 한 31%~32% 정도쯤 되는데 (수사가)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내년에 인력이 추가된다고 해도 쉽지 않은 상황일 것"이라고 토로했다.
j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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