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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급이 다른 연예인 마약 사건에 나라가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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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슈

연예인 마약 잔혹사

이선균·지드래곤 등 톱스타 연루

가짜뉴스·마약 리스트 나돌아

정치권 ‘정부 실정 덮기’ 음모론

박정희 때 ‘대마초 파동’ 떠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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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선균이 지난달 28일 인천논현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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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톱스타 엘(L)씨, 마약 혐의로 내사 중’이라는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톱스타 엘씨’는 배우 이선균으로 특정됐다. 그는 보도 9일 만인 지난달 28일 인천 논현경찰서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약 투약 혐의가 알려진 뒤 처음이었다. 그는 간이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았다. 이선균은 유흥업소 실장 집에서 함께 마약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실장에게서 협박을 받아 3억5천만원가량을 뜯겼다며 공갈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이어 지난달 25일엔 빅뱅 출신 가수 지드래곤도 마약 투약 혐의로 입건됐다. 지드래곤은 변호인을 통해 “마약을 투약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고 오는 6일 출석해 조사를 받는다.

최근의 연예인 마약 사건은 톱스타들이 한꺼번에 거명되면서 대중의 관심이 집중됐다. 가짜뉴스가 쏟아졌고 확인되지 않은 마약 연예인 리스트도 돌았다.

1975년 긴급조치 9호와 대마초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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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지드래곤. 연합뉴스


정치권으로도 불똥이 튀었다. 이경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지난달 21일 페이스북에 “연예인 마약 기사로 덮어보려고요?”라며 “김건희씨와 고려대 최고위 과정 동기인 김승희 비서관 딸이 학폭 가해자로 전치 9주 상해를 입혔다. 사면 복권해 김태우를 강서구청장 선거에 내보낸 윤석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데, 이런 기사가 ‘이선균 배우의 마약 투약 의혹’으로 덮여가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달 26일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와이티엔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서 “정권 위기 상황에서 연예인 마약 이슈를 터뜨리는 것이 오비이락일까, 우연의 일치일까 그런 생각이 든다”며 “누군가 의도하고 기획했을 수도 있겠다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타이밍”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안 의원은 “(내 주장에) 근거는 없다”고 했다.

이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같은 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장이 근거가 있냐’고 묻자 “마약은 정치를 모른다. 저 정도면 병 같다”고 말했다.

연예인 마약 사건을 두고 이렇게 음모론이 불거지는 이유는, 과거 독재정권이 사람들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마약 사건을 활용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연말에 연예계 대마초 파동이 일었던 1975년은 박정희 대통령이 그해 5월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하면서 민심이 흉흉한 시절이었다. 오일쇼크의 여파로 물가 역시 급등하고 있었다. 그해 12월 윤형주·이장희 등 포크송 가수들이 습관성의약품관리법 위반 혐의로 잡혀 들어갔다. 이 법은 마약을 뺀 의약품과 대마초를 규제 대상으로 한다. 뒤이어 신중현·김추자도 같은 혐의로 연행됐다.

박 대통령은 1976년 법무부를 연두 순시한 자리에서 직접 대마초를 언급하며 “공산당과 싸워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마당에 젊은이들이 대마초를 피우고 있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일”이라며 “현행법 최고형을 적용하라”고 지시까지 했다.

조용필은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이듬해 대마초 흡연 혐의로 모든 방송에서 출연을 금지당했다. 1977년까지 연예인 137명이 구속되거나 입건됐다. 김정호·정훈희·남진·장현·김세환·임희숙·김도향 등 톱스타들이 대마초 파동에 대거 연루됐다.

습관성의약품관리법은 1970년 11월부터 시행됐다. 신중현은 1960년대에 대마초를 피워 당시 간단히 조사를 받고 약식기소돼 벌금까지 냈는데, 박정희 정권은 그 이후에 제정된 법으로 혐의를 소급해 그를 구속했다. 신중현은 2006년 미국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1972년 아침 청와대 직원이라고 밝힌 사람이 박정희 찬가를 만들도록 강요했다.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독재정권을 증오했기에 거부했다”며 “구속된 것도 이 사실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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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적발돼도 얼마 안 가 복귀


연예인 마약 사건을 모두 음모론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마약에 연루된 연예인은 팬들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가수 전인권은 1987년부터 2008년까지 다섯차례 구속됐다. 1987·1992년엔 대마초 흡연 혐의, 1997·1999·2008년엔 필로폰 투약 혐의였다. 그룹 부활의 리더로 잘 알려진 김태원도 1987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입건됐고, 1991년에도 같은 혐의로 또 입건됐다.

1990년대엔 가수 이승철과 배우 박중훈, 코미디언 신동엽이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2000년대에도 가수 강산에와 가수 싸이가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적발됐다. 배우 김부선은 2004년 “대마초 흡연을 막는 건 헌법의 행복추구권을 위배한 위헌”이라며 위헌심판 제청 신청을 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최근엔 수면 마취제인 프로포폴을 상습 투약한 연예인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방송인 에이미, 배우 이승연·박시연 등이 미용 시술과 통증 치료를 위해 프로포폴을 상습·불법적으로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올해도 가수 돈스파이크와 배우 유아인의 마약 투약 의혹이 불거졌다.

우리 사회에서 마약이 대중화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연예인은 마약에 더욱 쉽게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인기를 유지하기 위한 극도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마약에 빠져들고 관리를 위해 성형외과나 피부과를 찾는 연예인이 프로포폴 등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한번 적발돼도 큰 타격을 입지 않고 시간이 지난 뒤 복귀하는 경우가 잦다는 점 역시 연예인 마약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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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폰 투약으로 처벌받은 아이돌 그룹 출신 남태현이 지난달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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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재활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장에는 필로폰 투약 혐의로 처벌받은 가수 남태현(아이돌 그룹 위너 출신)이 참고인으로 나왔다. 그는 현재 인천에 있는 마약 재활 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그는 “심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다가 끝에 다다랐다고 느꼈을 때 대마초를 시작했고 결국 필로폰까지 접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어 “(재활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이들은 20명밖에 안 될 정도로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다”며 “정부 지원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남태현은 같은 날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에서 “마약은 전염병 같은 바이러스이고, 치료 재활은 백신이다. 중독자 한명이 중독자 천명을 만들지만, 회복자 한명이 많은 중독자를 회복시킨다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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