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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이태원 참사

이태원 참사, 충분히 아시나요?[뉴스레터 점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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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벌어졌던 현장.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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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점선면 11월1일자(https://stib.ee/ZqY9)에 게재된 글입니다. 경향신문 대표 뉴스레터 점선면은 이슈와 기사를 엄선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점선면을 구독해 더 많은 뉴스레터를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로 접속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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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태원 참사 후 1년, 우리는 질문 앞을 여전히 떠나지 못하고 있어요.

국회의 국정조사가 있었고, 경찰과 검찰이 수사했습니다. 재판이 진행 중이에요. 참사와 얽힌 수많은 사실이 수사되고 드러나고 보도됐습니다.

인파 밀집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도, 제대로 예방·구조·수습하지 못한 이들의 과실이 쌓이고 겹쳐 많은 이들이 황망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우리는 차츰 알게 됐어요.

그럼에도 유가족들은 계속해서 ‘진상 규명’을 외칩니다. 처음엔 의아했어요. 그간 쏟아져 나온 팩트 속엔 정작 진상이 없다는 이야기인지, 진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말의 뜻을 곱씹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마침 넥스트레벨 독자님께서도 이런 의견을 주셨어요. “당시 사건의 타임라인을 정리한 기사도 보았고, 어떤 부분에서 정부의 대처가 미흡한지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진상을 규명한다는 것이 특정 부처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인지,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점선면은 이태원 참사 이후의 ‘진상 규명’에 대해 다룹니다. 구호가 된 말의 딱딱한 표피를 넘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우리가 알게 된 것과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정리하려 해요. 수사와 재판만으로는 왜 참사의 ‘진상’에 다가갈 수 없는 건지 함께 들여다봐요.

이태원 참사 수사·공판 기록을 지난 한 달간 들여다본 사회부 강은·김송이 기자와 함께 준비한 점선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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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 2022년 10월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벌어진 후 1년이 흘렀습니다.

· 국회의 국정조사,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와 서울서부지검의 수사가 이어졌고,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책임자 처벌’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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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규연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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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은 538명의 사건 관계자를 조사해, 24명을 입건했고, 23명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 이중 6명은 구속 송치됐지만 재판 과정에서 모두 보석으로 석방됐습니다.

· 검찰은 송치된 23명 중 12명을 기소했습니다. 구속 송치됐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송병주 전 112상황실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최원준 전 용산구 안전재난과장, 박성민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 등이 여기 포함됩니다.

·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기소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경찰 조사 단계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안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습니다.

·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과 함께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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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이후 1년이 흘렀지만, 책임자 처벌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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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수사와 재판이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라는 의문에 충분한 해답을 주었는지 따져보는 겁니다.

지난 1년간 쏟아져나온 관련 보도들을 참고해, 그동안 우리가 새롭게 알게 된 것과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을 정리해봤어요. 모든 수사기록이 공개된 것이 아니고,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기에 ‘중간 점검’ 삼아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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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경찰 특수본 수사 보고서.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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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말 몰랐을까?

지난해 3년 만의 ‘노 마스크’ 핼러윈을 맞아 예년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이태원에 몰릴 거라는 건, 일찌감치 예견됐죠. 그런데도 참사 이후 수사 대상이 된 경찰·공무원들은 ‘그런 사고가 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며 입 모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받는 혐의, ‘업무상과실치사상’*를 구성하는 핵심 요건이 바로 ‘예견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사고가 벌어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업무상 주의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집니다.

* 업무상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해 많은 시민들이 상해를 입거나 사망에 이르게 한 죄

그러나 ‘몰랐다’는 이들의 말은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당초 “인파 밀집에 따른 위험성 제기가 없었다”던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이태원 참사 발생 12일 전 이미 화상회의에서 핼러윈 인파 집중 ‘위험성’을 수차례 언급하며 대책 마련을 지시했던 것으로 드러났죠.

이태원을 관할하는 용산경찰서도 핼러윈 인파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용산서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다중인파 안전사고 대책을 세워왔거든요. 소속 정보경찰은 사고 발생 3일 전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몰릴 것을 우려해 경찰 대응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용산구청도 모르지 않았어요. 구청은 참사가 일어나기 2주 전에 열린 ‘이태원 지구촌 축제’ 당시 인파 밀집을 ‘대비’해 구청 직원들을 통제 인력으로 투입한 바 있죠. 핼러윈 주말엔 더 많은 사람이 몰릴 것이고,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렇다면 의문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사고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 경찰도 지자체도 누구 하나 사전 대비를 하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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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 마련된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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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 아무도 대비하지 않았을까?

“이거(보고서) 누가 쓰라고 했나. 주말이고 하니까 집회에 총력 대응해야 한다.”

참사 3일 전, 정보관이 올린 ‘이태원 할로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 보고서’를 본 김진호 당시 용산서 정보과장의 말입니다. 용산서 정보경찰을 이태원 축제에 배치해야 한다는 직원의 의견은 그대로 묵살됐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는 ‘이전에는 핼러윈 축제 때 정보관이 배치되지 않았냐’는 특수본의 질문에 이렇게 답해요. “그건 대통령실이 이전되기 전의 일이다.”

‘대통령실’은 검찰과 경찰 수사기록 곳곳에 등장합니다. 김 전 정보과장은 “당시 대통령실 근처에 맞불 집회가 있었고, 대통령실에 구체적인 위험성이 있는 상황이라 집회 관리에 집중했다”고 말합니다. 실제 이날 경찰 경비·정보 경력은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역 집회 현장에 온통 집중돼 있었죠.

구청은 어땠을까요. 참사 당일 밤 8시40분쯤 용산구청 당직 직원 2명은 이태원 인파 밀집 지역으로 출동하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이들의 행선지는 삼각지역으로 돌연 바뀝니다. 박희영 구청장의 지시로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을 벽에서 떼는 작업에 투입됐기 때문입니다.

경찰과 지자체는 대통령실 인근의 집회 관리에 집중하느라, 시민 안전에는 손을 놓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그렇다면 왜일까요? ‘시민 안전 관리’가 ‘대통령실 이전’ 이슈보다 뒷순위로 밀리게 된 데에는 어떤 조직 문화와 시스템이 관여돼 있는 걸까요? 수사기록만으로는 이를 명쾌하게 알긴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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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은 29일 참사가 발생했던 서울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 골목에 마련된 10.29기억과 안전의길에서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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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듭된 112신고는 왜 무시됐을까?

쏟아진 112신고에도 조치가 없었던 경찰의 대응은 참사 직후부터 문제가 됐죠. 참사 4시간 전부터 이미 “압사당할 것 같다”는 등 11건의 신고가 있었고, 참사가 발생한 10시15분부터 45분간 100건이 넘는 신고가 접수됐어요.

경찰의 지휘·보고 체계 곳곳에 난 구멍이 그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일단 112신고를 접수하는 서울경찰청 상황실에 문제가 있었어요. 참사 당일, 이태원 근처에서 코드제로(긴급상황 최고단계) 신고만 13건이 접수됐습니다.

매뉴얼에 따르면 당직 근무자인 상황팀장은 이를 상부에 보고하거나 전체 근무자와 공유해야 했죠.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다른 지역에도 많이 코드제로가 발령됐다”는 것과 “관할서인 용산서에서 특별한 보고가 없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상황의 긴급성을 인지하지 못한 겁니다.

상황실을 총괄하는 상황관리관 류미진 총경은 그날 밤 상황실에 없었습니다. 그가 참사를 인지한 시각은 밤 11시39분입니다. 사고 발생 후 1시간24분이 지난 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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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경찰서 이태원파출소 전경.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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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신고를 실시간으로 전파받은 용산서에서도 대응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어요. 참사 전 접수된 11건의 압사 관련 신고 중 경찰이 출동한 것은 4건에 그쳤는데, 심지어 이 출동기록들조차 허위로 조작됐다는 정황이 포착된 바 있습니다.

참사 당일 9시1분, 서울청 112상황실은 용산서에 이렇게 전합니다. “핼러윈 관련해서 계속된 추가 신고로 대형사고 및 위험방지건 있는 상황”이니 “이태원 관련해 확인” 잘 해달라고요.

이임재 당시 용산서장은 ‘대형사고’의 위험을 이 시점에서 충분히 알 수 있었어요. 그는 이날 밤 8시30분부터 서장 관용차에 대기하면서 112 무전 내용을 청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별다른 지시는 없었습니다.

그는 저녁을 먹다 뒤늦게 현장 상황을 들었지만, 딱히 서두르진 않았다고 해요. 밤 9시47분에서야 이태원 파출소로 향하다, 한남동 대통령 관저가 걱정된다며 그쪽으로 차를 돌렸죠. 이임재 전 용산서장이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한 것은 참사 발생 후 40여분이 지난 11시5분쯤이었습니다.

이처럼 경찰은 사태의 긴급성을 적시에 인지하지 못했고, 알고서도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행동한 원인이 대체 뭘까요.

경찰은 원인의 하나로 ‘기술’의 부재를 지목한 듯합니다. 참사 발생 직후 발족한 ‘경찰 대혁신 태스크포스(TF)’가 내놓은 대혁신의 결과가 그렇습니다. 112신고가 3회 이상 접수되면 작동되는 ‘선제 대응 시스템’, 중요 상황 정보를 지휘관의 휴대전화로 자동 전파되는 ‘112사건 전파앱’을 앞세웠죠.

이밖에 지방 경찰청의 상황팀장을 기존 ‘경정’에서 ‘총경’으로 상향배치하는 등 조직 쇄신안도 있지만, 그걸로 충분한지 알 수 없습니다.

이번 참사로 드러난 지휘·보고체계의 ‘구멍’은 왜 발생했는지, 일선 경찰관들은 왜 그렇게 소극적으로 대응했는지 납득할 만한 분석과 설명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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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규연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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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더 빨리 구조할 순 없었을까?

“너무나 외로웠다. 소방관들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없었고, 구조한 사람들을 놓을 장소조차 마련되지 않을 정도로 인파들이 통제되지 않았다.”

지난 1월의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 참사 현장에 최초로 출동했던 유해진 용산소방서 현장대응팀 팀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현장 도착 당시 경찰을 거의 보지 못했다며 공동 대응의 아쉬움을 토로했어요.

참사 직후 구조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차량 통제, 인력 배치만 신속히 이뤄졌어도 희생자 규모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은 계속 나왔습니다.

인파와 차량을 통제할 경찰 경비기동대가 현장에 최초로 도착한 시간이 11시40분입니다. 참사 발생 후 1시간25분이 지나서였죠.

경찰 지휘부가 사태를 너무나 뒤늦게 파악하는 바람에 인력배치가 늦어졌습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사건을 인지한 시각이 밤 11시36분, 윤희근 경찰청장이 최초로 인지한 시각이 밤 12시14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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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2022년 10월29일 밤 구조 작업 현장.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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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청 경비과장은 그날 밤 11시44분에서야 김광호 서울청장으로부터 경찰관 기동대를 투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수사과정에서 그는 지시를 더 빨리 받았더라면 기동대를 더 빨리 투입할 수 있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죠.

이같은 내용은 특수본이 김광호 서울청장과 이임재 전 용산서장을 검찰에 송치하며 작성한 보고서에도 쓰여 있습니다. 보고서는 두 사람을 두고 “사고 발생 이후에도 신속한 상황 및 전파, 기동대 경력 요청을 하지 않아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를 더 크게 만든 과실과 이로 인한 사고 발생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소방·경찰 등 인명 구조 기관 간 혼선도 문제였습니다. 이를 정리했어야 할 재난콘트롤타워가 제때 가동되지 않았던 것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사고 발생 4시간 후인 오전 2시30분에나 가동됐고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아예 설치되지도 않았어요.

이 밖에도 구조가 더 빨리 이뤄지지 못한 원인들은 더 있습니다. 재난안전통신망이 작동하지 않았고, 소방 인력을 총동원 할 수 있는 ‘소방대응 3단계’가 첫 신고 이후 1시간30분 이상 지나 내려진 점 등이 그렇습니다.

그나마 경찰의 지휘·보고 체계의 문제는 수사를 통해 어느 정도 포착된 편이라면, 나머지 원인들은 제대로 분석되지도 못했어요.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조직 내 혹은 조직 간의 쌓이고 얽힌 문제로 생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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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이후 맞이한 첫 핼러윈 기간, 경찰들이 참사 현장 인근을 순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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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경찰은 왜 자꾸 뭘 숨길까?

참사 이후 핼러윈에 앞서 이태원의 인파 사고 우려하며 경찰의 대응 필요성을 주장한 보고서들이 삭제됐어요. 보고서를 은폐해 ‘사고가 일어날 것을 몰랐다’며 경찰의 책임을 면해보려는 시도였죠.

박성민 전 서울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과 김진호 전 용산서 정보과장이 이들 보고서 삭제를 지시한 혐의를 받습니다. 검찰은 이들이 “경찰이 사고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여론 형성을 시도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어요.

일부 경찰의 일탈일까요? 글쎄요. 최근 김광호 서울청장이 이 보고서 삭제건과 관련이 있다는 수사기록이 새롭게 드러났습니다. 김진호 전 용산서 정보과장이 보고서 삭제 지시를 내리기 하루 전, 김광호 서울청장과 15분가량 직통 전화를 했던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수상한 ‘은폐·조작 의혹’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검찰은 참사 당일 112신고 처리 결과가 조작된 정황을 포착했어요. 이임재 전 용산서장은 참사 현장에 뒤늦게 도착한 사실을 은폐하려고 상황보고서를 조작한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경찰이 뭘 자꾸 숨기는 이유, 그것만은 명백해 보여요. 미흡한 대응으로 인한 형사·징계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죠. 이 과정에서 참사의 ‘진상’까지 함께 은폐될 수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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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수사·재판은 이태원 참사을 일으킨 여러 사람의 잘못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잘못이 발생한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는 충분히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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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월호 참사가 남긴 교훈

1년간의 수사와 재판을 통해 밝혀진 것, 정말 많습니다. 앞서 정리한 내용들은 일부에 불과해요. 그런데도 왜 유가족은 여전히 ‘진상 규명’을 요구할까요?

어떤 행위의 ‘위법’ 여부를 찾는 데 집중하는 ‘수사’만으로는 “참사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꼭 필요한 질문들”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경찰과 지자체는 왜 인파 사고를 대비하지 않았는지, 참사 당시 구조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졌으며 어떤 문제로 지연됐는지, 기관 간 공조는 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재판에서 다뤄지지 않는 수많은 ‘왜’들이 여전히 답을 기다리고 있어요.

“(이태원 참사) 조사기구가 만들어진다면 법적 처벌에 대한 질문은 후순위에 두었으면 합니다. ‘이상민 장관을 처벌하는 조사를 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기면 오히려 참사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꼭 필요한 질문들이 생략될 수 있어요. 구조가 어떻게 잘못됐는지부터 알아야 상층에 대한 책임도 제대로 물을 수 있거든요.”

지난 2월 사회학자 박상은씨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월호 조사 실패 사례를 연구해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이라는 책을 썼던 그는 “개인 처벌을 위한 사법적 관점이 다른 문제의식들을 압도했던 세월호 조사 사례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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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추인영씨가 과거 이태원에 놀러갔던 사진을 살펴보는 유가족의 손길.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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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사=조사라는 정부에게

강은 기자 역시 이렇게 말합니다.

수사기록을 계속 보다 보면 아이러니하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건 수사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구나.

여러 기관의 비합리와 과실이 층층이 쌓여 터진 참사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혐의로 구성할 수 없는 문제들,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부분들 역시 참사를 일으킨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예를 들어 경찰이나 지자체가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체계나 조직문화가 많이 망가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법적 처벌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죠. 이 책임을 어떻게 물어 문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더 필요해요.

처벌 아닌 ‘구조적 원인’에 집중한다는 건 결국 조직의 문화와 체계를 만든 ‘윗선’을 겨냥하는 일입니다.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구성원의 행동과 조직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 제대로 따져 보려면 법을 떠난 조사와 정치적 책임 묻기가 필요해요.

이들 윗선이 조직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왔는지 제대로 살펴봐야 합니다. 예컨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03년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폭발했을 때, 백악관·의회·NASA 본부와 같은 국가 지도부의 과거 지시에 담긴 ‘생산성 압박’이 사고의 구조적 원인임을 지목해냈죠.

이태원 참사에서도 같은 방식의 규명이 필요해요. 핼러윈 인파 밀집의 위험이 숱하게 경고됐는데도 경찰과 지자체 공무원들이 이태원 현장이 아닌 용산 대통령실에만 신경을 쏟게 만든 조직 문화의 뿌리가 무엇인지 찾아내야 합니다.

수사가 곧 조사라는 윤석열 정부의 태도는 우리가 봐야 할 참사의 ‘진상’을 도리어 가립니다. 1년 간 수사와 재판을 벌이고도 우리는 여전히 희생자의 마지막 행적도, 정확한 사인도, 시신의 이송 경로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태원 참사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이태원참사특별법에 국민의 관심이 모이게 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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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처벌에 집중하는 수사만으로는 조직문화 등 다양한 구조적 원인이 얽혀있는 참사의 전모를 밝히기 어렵습니다. 이태원참사특별법이 필요한 이유예요.

세 줄 점선면

▶ 이태원 참사 이후 1년이 흘렀지만, 책임자 처벌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 그간의 수사·재판은 이태원 참사을 일으킨 여러 사람의 잘못을 드러냈지만 그러한 잘못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 개인의 처벌에 집중하는 수사만으로는 조직문화 등 다양한 구조적 원인이 얽혀있는 참사의 전모를 밝히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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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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