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본 이태원 1주기 갈등 배경과 해법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한 시민이 추모 내용이 담긴 포스트잇을 보고 있다. 정다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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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1주기 추모식 참석 논란, 개인 자격으로 추모식을 찾은 여당 인사들, 여당 대표의 짓밟힌 근조화환, 유족을 향해 '멸공의 확성기'를 튼 시위 트럭···.
29일 이태원 참사 1주기 당일 벌어진 이 사건들은, 사회적 참사가 추모의 대상이 아닌 정쟁의 타깃이 돼버린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초상들이다. 참사 희생자·유족·생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끊이지 않고, 참사와 관련한 일체의 정부 책임론을 정치 공세로 치부하는 경향도 1주기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심각한 건 이런 모습이 그다지 낯설지 않다는 점. 지난 1년간 이태원을 추모가 아닌 정치의 시선으로 보려는 숱한 시도는 9년 전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그것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정치권을 향한 요구가 무산된 후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가고,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는 상황 역시 판박이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참사는 미래를 위한 교훈이 되지 못하고 더 큰 갈등의 불씨만 될 뿐이다. 사회적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되는 왜곡, 갈등, 분열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구조적 배경과 그 해법을 사회∙심리 분야 전문가 4인에게 들었다.
극단론의 일상화, 재난의 정치화
문제의 진단은 '맹목적 비난'과 '건전한 비판'을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기준을 두고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사건 자체의 원인에 대한 지적이냐, 피해자에 대한 무조건적 비난이냐의 차이"라고 짚었다. 참사 성격과 무관하게 "근본 없는 귀신 축제에 놀러 간 게 잘못"이라는 식으로 희생자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태도가 2차 가해의 출발이라는 분석이다.
국회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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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날한시에 159명을 삼킨 최악의 비극에까지 냉소가 번지는 원인은 뭘까.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 양극화의 부작용으로 애도행위마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극단적 사고가 일상화된 것"이라고 봤다. 세월호 때 유족 근처에서 이뤄진 '폭식 투쟁'이 당시는 큰 충격을 안겼지만, 이젠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극단적 행동에 무뎌지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임명호 교수는 "감염병 사태를 거치며 차별 정서가 강해진 측면도 있다"고 풀이했다.
이런 식의 혐오가 정치를 만나면, 참사는 더 이상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니라 '동원해야 할 것'이 된다. 신진욱 교수는 "증오는 오늘날 한국 정치 경쟁에서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됐다"면서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 야당이 '대통령 탄핵' 프레임을 끌고 온 것 역시 잘못된 단추였다"고 밝혔다.
특별법 요구가 나온 배경
정부가 참사 이후 '책임 모면'으로 일관했다는 점도 이유가 됐다. 지난해 당국 차원의 사과가 참사 사흘째가 돼서야 나온 것이 단적인 예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는 구난∙구호 활동의 일차적 책임자로서 그 실패를 인정하고 개선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그럼에도 최근 들어 재난 발생의 원인은 밝히되, 대응 실패에 대한 규명은 회피하는 경향이 보인다"고 꼬집었다.
참사가 터질 때마다 반복되는 유가족의 '특별법 제정' 읍소 역시 이런 부조리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노진철 교수는 "국가 차원의 의지가 없으면 얽히고설킨 대응 체계의 실패를 밝혀내기 어렵기 때문에 세월호도 여러 특별법이 필요했던 것"이라면서 "이 경우에도 시민단체와 여론의 동조가 없으면 시행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연대의 이해와 공감 필요해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골목에 추모 내용이 담긴 포스트잇이 붙여 있다. 정다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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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참사 해결의 종착지가 '특별법 제정'이 돼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별법 얘기가 나온다는 얘기는 정부가 진상규명과 유족 위로에 실패했다는 걸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결국 특정 정당에 의해 특별법이 통과하게 되고, 이렇게 정치권 일방의 요구로 진상규명이 추진되면 정치적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요한 건 '누가'가 아닌 '무엇'이 잘못됐는지"라면서 "중립성∙전문성을 가진 조사위원회 설치가 보편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건 '연대의 시선'이다. 가장 달성하기 어려운 단계지만, 그럼에도 한국 사회의 분열 치유를 위한 사실상 유일한 처방이다. 신진욱 교수는 "연대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내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명호 교수는 "이미 다수 시민들의 윤리적 성숙도와 공정 의식은 관(官)보다 높아져 있다"면서 "이들이 목소리를 내면 사회적 참사를 둘러싼 왜곡과 편향도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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