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7 (월)

이슈 이태원 참사

이태원파출소 경찰의 1년 “올해는 혐오 없이 추모만 가득하길”[이태원 참사 1주기-④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찰이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첫 핼러윈 기간을 맞아 시민 안전을 위한 종합대책을 시행한 가운데 경찰들이 2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을 순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0월 말, 핼러윈 주간이 다가오면 서울 용산 이태원파출소 경찰관들은 한껏 긴장한다. 지난해 이태원파출소에서 근무하던 최성호씨(가명)도 다를 바 없었다. 코스튬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활기찬 분위기를 즐기는 이태원 밤거리에 수년째 투입됐던 그에게도 핼러윈은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날’이었다.

“핼러윈하면 이태원이잖아요. 신고가 접수된 곳으로 경찰차가 갈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리거든요. 지난해 10월29일도 마찬가지였어요.” 최씨가 지난 25일 인터뷰에서 1년 전 참사 당일을 회상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엔 으레 사건·사고 신고가 빗발친다. 그날도 이태원파출소 경찰들은 한시도 쉬지 않았다. 주취자 난동, 폭행, 강제추행, 무전취식…온갖 신고에 이리 뛰고 저리 뛰게 될거라 각오했었다. 이미 몇 주 전부터 수차례 회의로 실무적인 준비를 해둔 터였다.

오후 10시가 조금 지난 시각, 최씨는 지원 요청을 받고 사고 골목 바로 옆에 있는 해밀턴호텔로 향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앞을 헤쳐가며 사람들을 뚫고 들어갔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깔려 있었는데, 맨 앞의 사람들은 이미 쇼크 상태가 오고 있었고 뒷줄도 사람들이 갈수록 눈을 감고 있었어요.” 골목길에서 158명의 사람이 압사당하는 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 순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최씨는 끌려나오지 않는 이들을 끌어내려 애썼다. 속속 도착한 동료 경찰관과 소방관들이 골목 곳곳에서 구조 활동을 벌였다. 최씨는 “다음날 손아귀가 쥐어지지 않을 정도로 온 힘을 다했다”며 “지쳐서 탈진할 것 같던 순간에는 시민분들이 구조 활동과 인원 통제를 도와주셨다”고 했다.

경향신문

지난해 10월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아 인파가 몰려 대규모 인명사고가 발생, 인근 도로에 구급차가 서 있다. 권도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씨의 기억 속 시민들의 얼굴은 다양했다. 구조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인간 띠를 만들어 주던 이들, 간호사라며 심폐소생술(CPR)에 나선 이들, 구조된 사람들이 바로 호송될 수 있도록 도로상으로 날라준 이들이 그 새벽, 그 거리에 있었다.

경찰은 숙명처럼 죽음을 가까이한다. 하지만 이토록 많은 죽음을 목격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동이 텄을 때 최씨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경찰은 변사나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가족분들께 통지를 드립니다. 그때마다 가족분들이 오열하는 것을 보게 돼요. 그 골목에 있던 분들의 가족들 생각이 먼저 나더라고요.” 가족을 잃은 울음의 비통함을 알기에 그는 이 무수한 죽음 앞에서 더 죄스럽다고 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고, 그래서 늘 죄송합니다.”

지난 1년,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해 쏟아진 혐오의 말은 최씨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참사 현장에 찾아와 유가족 옆에서 ‘외국에서 행하는 축제를 괜히 즐겨서 죽은 것’ ‘속죄하라’ 소리치는 이들을 볼 때 그는 도저히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최씨는 “그날 이태원에 모인 사람들은 즐겁게 하루를 보내려 했을 뿐이고 거기서 참사가 일어난 것”이라며 “희생자들을 욕하는 것도, 어떤 슬픔과도 비교할 수 없는 슬픔을 겪은 유가족을 비난하는 것도 있어선 안 될 일”이라고 했다.

최씨는 여전히 지하철에서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뜨면 심장이 내려앉는다고 느낀다. 주변 동료 중 ‘혼자서 잠을 못 자겠다’거나 ‘사람 많은 곳을 못 가겠다’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게 일상을 버티다 다시 핼러윈이 찾아왔다. 최씨는 ‘같은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경찰·소방·구청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딱 한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고 했다. 최씨는 “이번 1주기 추모식 때, 일반 시민분들이 많이 와 유가족분들을 위로해주시면 좋겠다”며 “유가족에 대한 모욕이나 혐오 없이, 오직 추모하는 마음만 가득한 자리이길 바란다. 그것만을 바란다”고 했다.

경향신문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은 29일 참사가 발생했던 서울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 골목에 마련된 10.29기억과 안전의길에서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놀러 가서, 죽었다[이태원 참사 1주기]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0241507001#c2b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 독립언론 경향신문을 응원하신다면 KHANUP!
▶ 나만의 뉴스레터 만들어 보고 싶다면 지금이 기회!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