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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리커창 옛집, 산처럼 쌓인 조화…중국 정부는 추모열기 차단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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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7일 별세한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안후이성 허페이시 훙싱로 80번지 일대에서 28일 추모객들이 조화를 헌화하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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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과 황하는 거꾸로 흐를 수 없습니다. 인민의 좋은 총리 잘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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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창


지난 27일 별세한 리커창(사진) 전 중국 국무원 총리를 추모하는 움직임이 중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29일 고인이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냈던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집, 고인의 부친이 살았던 딩위안현 주쯔촌의 집, 그가 7년간 근무했던 정저우시의 루이 호수공원엔 조화를 들고 찾아온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에는 27일 10대 초반의 어린 학생의 첫 조화로 시작된 훙싱로 현장의 조문 영상이 퍼졌다. “물은 배를 뒤엎을 수 있다(水可覆舟)” “벽을 보며 10년을 지냈으면 벽을 부숴야 한다(面壁十年图破壁)” “인민의 입장, 개혁 개방” 등과 같이 정권 비판을 담은 듯한 추모사도 확산됐다. 노동자의 임금 체불에 분개하고, 월 소득 1000위안(18만원)에 못 미치는 6억 중국인의 애환을 토로했던 생전 발언을 담은 영상도 돌고 있다.

추모가 허용된 허페이·정저우와 달리 베이징은 조용했다. 리 전 총리의 시신은 27일 오후 상하이를 떠나 베이징 시자오 공항을 통해 301 병원에 안치됐다. 운구가 베이징에 들어서자 시민들은 차량 경적을 울리며 조의를 표했다고 홍콩 성도일보가 보도했다. 다만 28일 기자가 방문한 천안문 광장과 고인의 모교인 베이징대에선 추모 움직임을 찾을 수 없었다. 익명의 한국 유학생은 “중국 학생들은 리 총리의 석연찮은 죽음에도 언급을 피한다”며 “지난해 백지시위 이후 엄격해진 교내 단속 영향인 듯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천안문 광장에 게양된 오성홍기는 29일에야 조기로 바꿔 게양 됐다.

중국 당국은 여론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앞서 28일 중국 외교부는 왕이 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예방한 소식을 전하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의 추모 발언은 제외했다. 웨이보의 검색 해시태그인 ‘#리커창동지서거#’는 29일까지 누적 조회가 28억회를 넘어섰지만, 당국은 사망 이튿날부터 순위에서 제외했다.

리 전 총리의 장례식은 다음 달 3일 전후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묘지에서 엄수될 것으로 외신들은 예상한다. 리 전 총리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의 참석 여부도 외신 등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 10월 20차 당 대회장에서 퇴장을 당하면서 리 전 총리의 어깨를 쓰다듬었던 후 전 주석은 지난해 12월 장쩌민 전 주석의 영결식 이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리 전 총리의 사후 중국에 더는 할 말을 하는 ‘소신 총리’가 사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 20일 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국무원은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견지한다”며 당정 분리 원칙을 41년 만에 폐기하는 내용의 국무원 조직법 개정 초안을 심의했다. 개정안에는 총리의 권한이 담기지 않아 향후 총리의 위상은 더욱 왜소해질 것이라고 싱가포르 연합조보가 보도했다.

한편 리 전 총리와 베이징대 동기인 우궈광 스탠퍼드대 선임연구원은 27일 미국의소리(VOA)에 기고한 추모의 글에서 “중공 체제에서 자신을 왜곡하며 권력의 사다리를 올라갔던 리커창, 상식·양심·민중에 대한 동정심을 가졌던 리커창 두 명이 있었다”고 썼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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