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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슈 이태원 참사

곳곳에 안내요원·안전펜스… “1년 전 이랬다면” 안타까움만 [심층기획-이태원 참사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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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돌아온 핼러윈

1년 전보다 이태원역 이용객 75% 감소

혼잡 없이 차분… 핼러윈 분장도 드물어

경찰기동대 10개 부대 등 1260명 투입

골목별 출입 지도 붙여놓고 동선 유도

용산구는 인파감지 CCTV로 모니터링

시민들 “진작 했어야 할 조치…” 씁쓸

참사 골목엔 추모 발길… 꽃·음식 놓여

‘1년 전에도 이렇게 준비했다면….’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28일 밤 찾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는 1년 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핼러윈(10월31일) 주말을 맞았다. 지난해의 75% 정도로 줄어든 인파에 추모 분위기가 더해지면서 ‘핼러윈의 성지’라고 불렸던 예년 이태원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자리를 채운 건 안전사고에 대한 만반의 준비 태세와 추모의 발걸음이었다.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도 일부 공존했지만 전반적인 공기는 차분했다.

세계일보

안전펜스 사이에 두고 우측통행 핼러윈 데이를 앞둔 지난 2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과 마포구 홍대거리에 안전펜스가 설치됐다. 서울시 데이터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 기준 이태원 관광특구에는 약 1만4000명이 운집했다.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해에는 같은 시간 5만7000여명이 모였는데,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올해 홍대거리 인파는 약 8만명, 강남역은 약 5만명을 기록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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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9시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 내려 1번 출구로 나가는 동안에만 형광 조끼를 입은 안전 요원 10여명과 마주쳤다. 지하철 역사에는 이태원 골목별로 일방통행 입구와 출구를 나눠 명시한 지도가 붙어 있었다. 거리로 나오자 고개만 돌리면 인파를 관리하는 경찰, 구청 관계자들이 보였다. 대로에는 경찰차와 구급차들이 줄지어 대기 중이었고, 한쪽 차로 일부를 통제해 도보 가능한 구역이 넓어져 있었다. 녹사평역 쪽에는 경찰·소방·구청 등 유관기관이 모인 합동 현장 상황실이 마련됐다.



해가 진 뒤에도 한산하던 이태원 거리는 오후 9시 반 이후 다소 북적이기 시작했지만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도 통행에 지장이 될 만한 인파는 모이지 않았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데이터에 따르면 핼러윈 주말인 27일과 28일 오후 8~10시 이태원관광특구 일대 인파는 1만2000~1만4000명 수준을 보였다. 용산구 관계자는 “28일 6호선 이태원역 이용객은 전년 토요일 기준으로 75%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세계일보

핼러윈 데이를 앞둔 27일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 인근에서 경찰관들이 순찰을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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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참사의 시작점이었던 해밀톤호텔 뒤편 세계음식문화거리로 들어서자 양방향 통행로를 구분하기 위해 설치된 경찰 울타리가 눈에 띄었다. 300m가량 길게 쭉 이어진 이 길을 높이 1m, 두께 30cm의 질서유지용 울타리가 반으로 갈랐다. 인파가 순식간에 몰리더라도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이들이 뒤엉킬 위험이 없었다.

경찰과 용산구청 직원들은 시민들의 우측통행을 유도하며 동선 관리에 나섰다. 길 중간에 사람들이 멈춘 채 모여 서 있으면 “안전을 위해 서둘러 이동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서울 경찰은 이날 경찰관 620명과 경찰관기동대 10개 부대 등 총 1260명을 이태원을 비롯한 서울 곳곳의 취약 시간·장소에 투입해 인파 관리에 대응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참사가 발생한 좁은 골목은 언덕에서 내려가는 방향으로만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용산구청 통합관제센터에서는 구 관제요원 4명과 경찰 2명, 관제플랫폼 관련 인력 등이 세계음식문화거리, 퀴논길 등 이태원 일대에서 들어오는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했다. 일반 CCTV와 달리 화면상 면적, 밀도, 도로폭, 기울기, 인원수를 자동으로 감지하는 인파감지(피플 카운팅) CCTV가 이태원로 일대에 47대 설치됐다. 밀집도가 1㎡당 4명 수준으로 감지될 경우 ‘경계’ 단계로 구분하고 서울시와 경찰·소방 등에 전파하는 재난 안전 시스템이 처음 가동된 것이다. 지난 27∼28일 모든 시간대의 밀집도가 기준보다 낮아 특기할 만한 상황은 없었다고 구 관계자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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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데이를 앞둔 27일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 인근에서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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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명의 희생을 딛고서야 나타난 변화에 시민들은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30대 직장인 조모씨는 “국가가 진작 했어야 할 조치들을 이제야 하고는 시민이 안전함을 느끼는 현실이 다행스러우면서도 너무 안타깝다”며 “1년 전 이러한 대비를 하도록 지시하지 않은 이들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이 조성된 사고 골목은 평소보다 많은 이들이 다녀갔다. 음료수와 간식, 꽃을 내려놓고 잠시 묵념한 뒤 돌아서는 발길이 이어졌다. 위로의 말로 가득한 추모의 벽 옆에서 활동가들은 참사 1주기를 맞아 준비한 보라색 팔찌와 리본 등을 시민들에게 건네며 “이태원 참사를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이날 이태원에서 핼러윈 분장을 한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태원관광특구 초입에 있는 유명 생활용품점에는 예년과 달리 핼러윈 관련 용품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외국인 손님은 “핼러윈 장식을 사려고 왔는데 하나도 없다”며 “참사 기억 때문에 일부러 아무것도 들여놓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주일 전 주말까지도 거리에 쿵쿵 울려 퍼지던 음악 역시 이날은 확연히 덜 들렸다.

정지혜·박유빈·이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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