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성북구 영암교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도 예배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국민 159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유가족과 시민들이 모인 추모대회에 윤석열 대통령과 주무 장관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여당 대표인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여권은 추모대회가 야당 주도의 정치집회로 변질됐다는 이유를 댔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억울한 죽음들 앞에 국가는 왜 존재하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29일 오후 5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비롯한 정치권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윤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이 장관, 김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등 여권 핵심 인사들은 시민추모대회에 불참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인요한 혁신위원장과 유의동 정책위의장, 이만희 사무총장, 김병민·김예지 최고위원, 이태원을 지역구로 둔 권영세 의원 등이 개인 자격으로 참석했을 뿐이다. 인 위원장은 퇴장하는 길에 추모대회에 참석한 시민들로부터 “네가 왜 와” “여기가 어디라고 오나” “물러가라” 등의 항의를 받았다.
여권은 추모 행사가 정치적이라 불참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26일 통화에서 “민주당에서 대대적인 참석 공문 보내는 등 정치적 행사가 될 우려가 있어 보이는데 정치적 행사에는 대통령이 참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만희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지난 27일 지도부 차원에서 참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대표와 원내대표가 참석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는데, 내용 자체가 민주당에서 거의 전 당원 참석을 독려하는 정치집회의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희생자 추모는 유가족이 빠진 자리에서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김 대표, 이 장관 등과 함께 서울 성북구 영암교회에서 열린 추도 예배에 참여했다. 윤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반드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그분들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의 메시지는 없었다. 윤 대통령의 추도 예배는 교회 신도들이 참석하는 예배가 모두 끝난 뒤 별도로 진행됐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시민추모대회 불참 이유에 대해 즉답을 피하면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고 추도하는 마음은 전국 그리고 세계 어디서나 똑같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사고 재발을 방지하고 더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데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모으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 대표와 윤 원내대표, 한 총리,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도 희생자를 위한 묵념을 진행했다. 윤 원내대표는 오는 30일 국회에서 진행되는 추모식에 참여한다. 이 장관은 전날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의 추모공간을 찾아 헌화하고 묵념한 뒤 안전 현황을 점검하는 것으로 추모대회 참석을 대신했다. 유가족과 함께 하는 시민추모대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다른 형식의 추모를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야당 대표들은 추도사에서 한목소리로 윤 대통령의 불참을 비판했다. 이재명 대표는 “참사를 책임지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책임 있는 정부당국자들은 이 자리조차 끝끝내 외면했다”고 말했다. 이정미 대표는 “대통령이 사죄의 마음을 담아 앉아있어야 할 저 빈 의자가 가슴 시리다”며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사죄의 말씀 올린다”고 했다.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는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 와서 이제라도 가족들을 위로하고 사죄했어야 한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라며 “야당이 주도하는 행사라고? 그럼 여당이 주도하면 되지 않나”라고 일갈했다.
여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통령은 ‘법적 책임만 수사하는 검사’가 아니다. 국가는 왜 존재하며 국가의 책임은 무엇인가”라며 “추모식에 윤 대통령이 함께 해 유가족들을 위로하면 좋지 않겠나”라고 적었다. 이준석 전 대표는 SNS에 추모식 전 서울광장 분향소 방문 소식을 전하며 “저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알아보시고 왜 이제 왔냐는 유가족의 질책은 절박함의 표현일 것이고,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들이 오기를 바라는 기다림의 다른 표현일 것”이라고 밝혔다. 유 전 의원과 이 전 대표 등 비윤석열계 대표 인사들은 이날 추모식에 대거 참석해 당내 핵심 인사들과 대비를 이뤘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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