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7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함영매씨 생일을 맞아 오빠 함일송씨가 동생과 조카의 사진을 보고 있다. 김송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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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해서 동생을 호강시켜주고 싶었던 오빠는 꿈을 잃었다. 하나뿐인 동생, 고 함영매씨가 지난해 이태원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후 오빠 함일송씨의 삶은 흑백이 됐다.
영매씨의 생일이던 지난달 7일 경기 군포시 신혼집에서 만난 중국동포 일송씨와 부인 마군령씨는 이사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신혼집 곳곳에서 인테리어와 가구 선정을 도와줬던 동생의 흔적이 떠올라 견디기 힘든 탓이다. “동생이 선물로 준 냉장고와 공기청정기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다 두고 갈 거예요.” 두 사람은 영매씨가 결혼선물로 줬던 냉장고를 바라보며 눈물을 보였다.
마씨는 지난해 영매씨 생일 때 백화점에서 구매한 목걸이를 선물했다. 영매씨는 목걸이가 마음에 든다며 한 달 동안 매일 하고 다녔다.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에 놀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똑 부러진 성격의 영매씨는 지난해 주택 담보 대출을 모두 갚은 뒤 국내 여행을 다니고 취미를 찾아가던 찰나 세상을 떠났다. 일송씨는 한평생 본인보다 가족을 위하던 동생이 이렇게 숨진 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그는 “동생이 이제 꽃길 걸을 일만 남았었는데 이렇게 됐다”며 “인생을 사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함일송씨와 부인 마군령씨. 김송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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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올해 계획했던 결혼식을 기약 없이 미루고 지난 8월 혼인신고만 했다. 일송씨는 ‘동생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나만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 남편의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는 마씨도 매일 마음이 아프다. 마씨는 “남편이 원래 밝은 것을 좋아하는데 이제 화장실 갈 때 불을 켜지 않더라”며 “밖에선 티를 내지 않는데 혼자 있을 때만큼은 어둡게 있고 싶어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얼마나 문드러졌을지 걱정됐다”고 했다.
함씨 남매는 특히 애틋했다. 일송씨가 12살 때 어머니를 여읜 두 사람은 10년 만에 아버지도 떠나 보냈다. 단둘이 남은 두 사람은 한국으로 넘어와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일송씨는 “일찍부터 일하기 시작한 동생이 한국에서 먼저 자리를 잡고 도와줬다”면서 “동생의 도움을 받아 나도 이만큼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동생까지 이렇게 데려가다니 대체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함일송씨가 경기 성남시의 추모관을 찾아 동생 영매씨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송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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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생일에 연차를 내고 경기 성남시의 추모관으로 향한 일송씨는 꽃다발을 세 개 샀다. 동생과 조용히 인사하며 꽃을 둔 일송씨는 나머지 두 개를 들고 같은 추모관의 또 다른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고 김의진씨와 고 김동규군에게 인사하러 갔다. 일송씨는 “추모관에 올 때마다 세 사람을 모두 보고 간다”며 “다른 가족들도 영매에게 꽃을 주고 간다. 아까 ‘누나 생일 축하한다’는 쪽지가 영매에게 붙어있는 것을 보니 또 누군가 다녀갔던 모양”이라고 했다.
다시 동생을 보러 온 일송씨는 세 시간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영매씨가 아들과 찍은 사진을 한참 보던 일송씨는 조카가 눈에 밟힌다고 했다. 똑똑한 동생은 조카의 학교생활부터 고민까지 꼼꼼히 챙겼는데 그 빈자리가 너무 클까 걱정이다. 일송씨는 조카와 ‘엄마에 대해 기억나는 것을 꼭 기록해두자’고 약속했다. 그는 “나도 엄마를 일찍 잃어서 크면서 얼마나 사무치는지 안다”면서 “그럴 때 조카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함일송씨가 본인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뉴스를 보고 있다. 김송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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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저녁 일송씨는 동생이 즐겨 먹던 마라탕을 포장했다. 동생과 함께 끓여 먹던 것을 기억하며 한술 떴지만 음식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는 밥 대신 맥주 3캔을 비웠다. 매일 오전 4시에 출근해야 하는데도 그는 요즘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들기 어렵다고 했다.
참사 이후 뉴스만 보게 됐다는 일송씨는 저녁 뉴스에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오송 참사 유가족들의 기자회견 보도가 나오자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는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이렇게 간절히 외치는데 어떻게 책임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느냐”며 “비가 쏟아지는 날 나이 드신 부모님들이 삼보일배했는데도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도움만 주던 동생에게 더 잘하겠다’는 인생 목표를 담아 ‘꿈을 위해 노력하자’는 문신을 왼팔에 새겼던 일송씨는 “그 꿈이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 오빠는 동생을 다시 보게 해달라는, 이뤄질 수 없는 꿈만 꾸게 됐다. “없으면 안 되는 내 동생 영매야.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 사랑하고 보고싶다, 불쌍한 내 동생.”
함일송씨 왼팔에 ‘꿈을 위해 노력하자’는 뜻의 문신이 새겨져있다. 김송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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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러 가서, 죽었다[이태원 참사 1주기]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0241507001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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