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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슈 이태원 참사

‘대통령실 연관’ 등 30가지 규명 숙제[이태원 참사 1주기-망각과 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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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제 보고회

“사실관계·문제 제대로 밝혀내야 사회제도 개선”

경향신문

지난 10월 23일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제 보고회’가 열렸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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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간 경찰청 특별수사본부 수사, 재판, 국정조사 등을 통해 진상규명 작업이 진행됐다. 일각에서는 이를 거론하며 별도의 독립조사기구를 설치하자는 ‘특별법’에 반대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은 단편적이며 참사의 원인이나 책임규명 또한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등 ‘윗선’의 책임소재는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국정조사에 출석한 책임자들 발언의 사실 여부 확인도 불충분했다. 국정조사의 허위발언이 재판 과정을 통해 밝혀졌어도 재판의 핵심쟁점이 아니라는 이유로 더 파고 들어갈 수 없는 한계도 있었다.

일관된 관점, 포괄적인 조사 필요


지난 10월 23일 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제 보고회’를 열고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30대 과제를 제시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양성우 변호사는 “책임규명은 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장 등 일선 실무책임자를 기소하는 데 그쳤다. 경찰청장이나 행정안전부에 대한 조사는 없었고, 그 책임을 물을 의지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국정조사의 한계도 뚜렷했다. 지난 1월에 나온 국회의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결과보고서는 종합의견에서 “자료제출 미흡을 비롯한 정부 당국의 비협조, 짧은 조사기간 등으로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구조적이고 포괄적인 원인과 책임규명을 하지 못했다”라는 취지의 결론을 내렸다.

경찰수사, 국정조사 등 기존의 조사는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참사 당일 현장에 각 기관의 담당자들이 몇 명이 있었고, 어떤 임무를 갖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조차 정확히 확인하지 않았다. 이날 진상규명 과제 총론을 발표한 최희천 박사는 “진상조사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사회제도 개선까지 이어져야 한다. 참사 당일 현장의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파악되지 않았는데 현장 대응의 문제점을 도출할 수 있을까”라며 “영국 힐즈버리 참사보고서(1989년 영국 힐즈버리 축구장에서 97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에는 희생자들을 살릴 수 있었던 골든타임에 어떤 조치들이 진행됐고, (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몇 명은 더 생존할 수 있었는지까지 나온다”라고 말했다. 이 정도로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하고 문제점을 파악해야 재발방지 대응체계도 마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기존 조사가 갖고 있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특수본이나 검찰조사는 형법적 책임을 따지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위법성 여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정조사는 여러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지만, 물리적·시간적 한계로 다수의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채 종료됐다. 책임자 처벌은 물론 이를 넘어서는 참사의 원인과 전개 과정을 일관적인 관점에서 포괄적으로 이해하려면 독립된 조사기관의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최 박사는 “모든 원인 규명 활동의 최종 목적은 또 다른 참사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모든 기관의 활동을 관통하는 일관된 판단 기준으로서 ‘피해자의 희생이 확대됐던 과정’과 어떻게 연동됐고, ‘피해를 줄이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염두에 두고 추가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보고회에서는 경찰, 소방,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서울시, 용산구청 등 기관별 추가조사 과제가 조목조목 제시됐다. 먼저 경찰에 대한 추가조사 과제를 발표한 신재윤 변호사는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이임재 용산경찰서장 등 주요 경찰조직의 책임자들에 대한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사 당시 충북 제천 캠핑장에서 자다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해 비난을 받았던 윤희근 경찰청장은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신 변호사는 “경찰청장의 불입건으로 경찰청장의 지휘권 행사 태만과 참사 발생 간의 인과관계에 관한 추가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수본은 불입건 근거 중 하나로 경찰청장이 안전사고 위험성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를 받은 사실이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신 변호사는 “경찰청 정보국은 2022년 9월 서울청을 비롯한 각 지방청 정보부에 ‘가을축제, 행사 안전관리 실태 및 사고 위험요인’ 제목의 보고서를 하달했고, 용산경찰서 정보과는 2022년 10월 4일 ‘이태원 핼러윈데이 축제’도 포함해 안전관리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지적했다. 윤 청장이 인파사고의 위험성에 관해 사전에 보고를 받았는지 여부에 대한 추가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신 변호사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대응의 적절성 및 김 청장에 대한 기소 지연 이유, 용산경찰서장의 늑장대응에 대해서도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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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주요 추가조사 과제(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민변 발표)


‘대통령실 이전’ 관련성 규명도 과제


또 참사 당일 이태원에 정보관이 파견되지 않은 이유, 경찰 내부보고서 삭제 이유,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의 관련성 등도 경찰을 대상으로 한 진상규명 과제에 포함돼 있다. 전수진 변호사는 용산경찰서 관내 대규모 축제에서는 정보관이 배치됐고, 코로나19 기간 이전에도 정보관이 파견된 정황이 재판 과정을 통해 드러났다고 전했다. 만약 정보관이 파견됐다면 무전을 이용해 긴급한 상황에 대비했을 수 있었다. 전 변호사는 참사가 발생한 해에만 정보관이 파견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핼러윈 축제 당일 경찰이 집회·시위에 집중한 정황은 밝혀졌지만, 용산 대통령실 이전과의 관련성은 부인돼왔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 다음날 박성민 서울경찰청 정보부장이 “용산 이전이 근본적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있다”며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사고 책임과 연결될 가능성을 차단하려 한 정황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바 있다. 전 변호사는 “경찰이 집회·시위에 집중한 이유가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이 있는지 용산경찰서 및 서울경찰청의 핼러윈데이 경찰력 배치가 대통령실 이전에 따라 달라졌는지 여부 또한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소방,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서울시, 용산구, 피해자지원 등에 대한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참석자들은 언급했다. 적절한 영상송출시스템과 재난안전통신망이 작동하지 않은 이유, 응급조치가 이뤄지지 못한 이유, 구급차 이송과 사망자 판정 과정, 참사 예방단계에서 행정안전부의 책임, 유가족에 대한 정보제공 지연 등의 과제가 총망라됐다.

30개의 굵직한 규명과제는 여전히 진상규명이 미완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제들은 결국 독립된 조사기구를 설치하는 ‘특별법’ 제정을 가리킨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여당의 반대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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