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현장에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기억공간 예술감독 맡은 권은비 작가 인터뷰
159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참사의 기억을 지우거나 왜곡하려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하지만 기억하지 않으면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기억 투쟁’을 벌이는 이들이 있다.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기록한다. 이들은 말한다. “진실과 기억의 힘이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고.
[주간경향] 10·29 이태원 참사 발생 현장에 지난 10월 26일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이 조성됐다. 참사를 기억하려는 마음과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공간이다. 기억공간 조성은 참사를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기억 투쟁’의 결과이자 과정이다.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자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미완성이다. 참사 1주기를 앞두고 기억공간이 마련된 건 큰 의미를 지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태원 참사의 기억공간인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조성에서 예술감독을 맡은 권은비 미술가가 지난 10월 2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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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비 미술가가 “아직 끝난 게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는 이번 기억공간 조성에서 예술감독을 맡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책임 있는 행정기관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권 작가는 지적했다.
권 작가는 “기억은 곧 실천”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억공간이 만들어졌다고 마침표가 찍히는 게 아니라 기억공간의 게시물 등을 주기적으로 변경함으로써 누군가 계속해서 기억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이번 기억공간을 ‘중간정비’, ‘중간단계’로 규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참사 현장 골목 초입에는 3개의 빌보드(게시판)를 설치했다. 이곳에 참사 설명과 추모 메시지, 예술작품 등이 걸렸다. 이런 내용은 두 달에 한 번씩 교체할 계획이다.
기억공간의 바닥에는 ‘우리에겐 아직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습니다’라는 표지석을 삽입했다. 게시판에는 ‘그날 밤을 기억하는 모두의 오늘이 안녕하길 바란다’는 문구를 넣었다. 외국인 희생자들을 고려해 한국어 등 14개 언어로 적었다. 권 작가는 “사회적 논의를 통해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고 기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라며 “통계로 잡히지 않는 생존자·부상자·목격자 등 신체적·정신적 고통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을 모두의 안녕을 바란다는 뜻도 담겼다”고 말했다.
권 작가는 “희생자들에게 ‘이태원에 놀러 간 게 잘못’이라는 잘못된 프레임을 누군가 씌우고 있다”라며 “‘기억 투쟁’을 통해서 ‘사람은 누구나 안전하게 놀 권리가 있다’는 명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권 작가는 독일 베를린예술대학교에서 기억공간 등 사회적 맥락 속 공공미술을 공부·연구하고 관련한 연대 작업을 벌여왔다. 지난 10월 2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권 작가를 만났다.
-기억공간의 개념부터 설명하면.
“한국에서 학술적으로 기억공간이란 표현을 쓴 건 몇 년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추모비, 기념비라고 하면 보통 돌로 조각된 비석 등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기억공간은 이런 비석에 국한하지 않고 박물관, 공원 등 다양한 공간을 아울러 지칭한다. 독일 등 해외의 학계에서도 여러 국가폭력이나 재난참사와 관련해 사용하는 개념이다.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은 실내 공간, 유가족의 공간, 분향소로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길’이라고 명명하게 됐다.”
-참사 현장에 조성한 이유는.
“기억을 하려면 구체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등. 기억공간 조성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현장성이다. 바로 이곳에서 참사가 벌어졌다는 메시지를 사회적 공간에 남겨야 하는 것이다. 참사 현장에는 외국인도 많이 방문했는데, ‘여기야’라는 단어를 많이 들었다. 아무리 장황하게 설명해도, 현장에 가서 참사를 기억하는 것과 전혀 다른 장소에서 기억하는 건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그렇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지난 10월 26일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에 조성된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 바닥명판이 설치돼 있다.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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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작가는 1994년 성수대교 참사와 1995년 삼풍백화점 참사의 사례를 들었다. 성수대교 참사의 위령비는 현재 걸어서 갈 수 없다. 참사 현장과 상당히 떨어져 있고 도로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권 작가는 “시민이 걸어서 갈 수 없는 이상한 공간”이라며 “나도 몇 번 방문했지만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탑도 마찬가지로 현장과 동떨어진 곳에 있다. 두 참사의 기념비는 모두 참사 이후 3년 만에 조성됐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기억공간의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기 어렵다. 권 작가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성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고려한 점은.
“보행을 최대한 확보하는 한도 내에서 설치하는 게 중요한 과제였다. 안전을 위해 설치물이 또 다른 장애물로 작용하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바닥이나 벽 중심으로 배치했다. 휠체어 등을 타서 보행에 어려움이 있는 분들도 접근성이 좋았으면 했다. 이들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골목 일부가 사적 소유이다 보니 실현하기 어려웠다. 기존 재난참사의 기억공간이 현장과 먼 곳에 만들어지는 이유도 토지의 소유권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명칭에 ‘안전’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이유는.
“이태원 참사가 준 충격은 ‘길을 걷는 것’ 자체가 안전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안전이 반드시 들어가야 했다. ‘10·29’ 날짜를 넣은 건 ‘4·16’이라고 하면 세월호 참사를 연상하듯, 이태원 참사 또한 날짜를 통해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참사를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우리에겐 아직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습니다’라는 표지석 문구는 어떤 의미인가.
“이태원 참사 초기에 희생자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을 두고 사회적으로 많은 갈등이 벌어졌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이름은 언론에서 자연스럽게 다뤘지만 이태원 참사는 달랐다. 희생자 호명에 정답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앞으로 사회적 논의를 통해서 이름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이름을 부르고 기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기억을 하려면 기억하려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이름을 떠올리지 못한다면 기억은 추상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 이런 과제를 명확하게 남기자는 맥락에서 이처럼 한 줄로 표현했다.”
-‘그날 밤을 기억하는 모두의 오늘이 안녕하길 바란다’는 문장도 14개 언어로 게시하고 있다.
“현재까지 마지막 159번째 희생자는 참사 후 43일 뒤에 사망했다. 생존자가 결국 희생자가 된 것이다. 이처럼 참사가 벌어진 이후에도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또 이태원 참사는 생존자, 부상자, 목격자가 몇 명인지 정확하지 않다. 행정기관마다 통계가 다르다. 통계 외에 목격자 등은 훨씬 많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참사 현장을 봤듯이 말이다. 이는 참사로 인해 신체적 상처나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이 몇 명인지 파악하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이들은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 문구는 이들의 안녕을 바란다는 의미가 있다. 마지막 희생자처럼 아픈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참사 이후 젊은 세대를 만났는데, 이들은 세월호 세대라고 불릴 정도로 유년 시절부터 참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이태원 참사를 또 경험했다. 본인이 참사의 피해자는 아니지만 아픔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지난 10월 26일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에 조성된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 게시판이 설치돼 있다.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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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에 담기는 참사와 관련한 예술작품은 어떤 것인가.
“자그마한 형태의 윈도 갤러리(창문 미술관)라고 보면 된다. 사진 등 이미지로 말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설치한다. 첫 번째는 황예지 사진작가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운데는 20대 여성이 많다. 황 작가도 20대 여성이고 이태원 주민이기도 하다.”
-게시판의 내용을 2개월마다 교체하기로 했다. 어떤 취지인가.
“굉장히 중요하고 중점을 둔 부분이다. 현재의 기억공간은 미완성이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시행되기 전까지는 그렇다. 법을 통해 국가와 지방정부가 추모사업 등의 일환으로 기억공간을 마련해야 최종 완성되는 것이다. 게시판의 제목도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은 미완성입니다’이다. 기억은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개개인이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행위로 드러내지 않으면 공유하기 어렵다. 가장 실천적인 기억공간을 만든다는 게 뭘까 고민했다. 그래서 2개월마다 주기적으로 게시물을 변경토록 했다. 기억공간을 만들어 놨으니 ‘이제 끝이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게시물이나 메시지가 계속 바뀌는 모습을 통해 누군가 계속 기억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점을 실천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기억공간을 조성한 사례는 처음이다.”
-‘중간정비’, ‘중간단계’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완성이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기억공간을 지속가능한 형태로 운영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별법이 없는 상황에서 행정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겐 없다. 행정이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게 절실하다.”
-유지·관리는 어떻게 하나.
“가장 어려운 지점이다. 유지·관리를 위해선 주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행정기관들은 법이 있어야 한다, 선례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상당히 어려웠다. 이번에 설치 비용은 용산구가 부담했다. 내년부터 서울시가 유지·관리 비용의 예산을 책정하겠다는데, 그간 행정이 보여온 행태에 비춰보면 마지막 결재가 나는 순간까지 의심을 거둘 수 없다. 게시물 교체 등의 유지·관리 자체는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상인 등이 협의해 진행할 예정이다. 기억공간을 처음 조성하려고 할 때 예산 얘기가 많이 나왔다. 기존에 시민 모금으로 추진된 사례들이 있었으나, 나는 이번에 모금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음을 주는 건 감사하고, ‘기억 투쟁’의 운동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제 역할을 못 하는 행정에 책임을 묻고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정부가 과연 움직일지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1주기가 오기 전에 약간 무리하더라도 기억공간 조성 작업을 완료해야겠다고 판단한 이유 중 하나다. 특별법 통과까지는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유족분들이 열심히 싸워왔다. 그래서 이번 기억공간도 임시적이지만 마련할 수 있었다. 기억공간 조성은 유족들이 가져가야 할 성과라고 본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지난 10월 26일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에 조성된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의 게시판에 시민이 작성한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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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공간은 ‘경고’의 뜻도 담고 있다는데.
“지난 1월 예술감독을 제안받은 뒤 참사 현장에 여러 번 갔다. ‘사선에서’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곳이 누군가는 희생자가, 누군가는 생존자가 된 갈림길 같았다. 현장 골목 자체도 경사로였다. 이런 상징성을 고려해 기울어진 선의 이미지가 기억공간에 반영됐으면 했다. 그래서 바닥에 조명이 들어간 대각선을 그려서 사람들이 걸을 때 이를 인지할 수 있도록 했다. 독일은 기억공간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뎅크말(denkmal)과 만말(mahnmal)이다. 뎅크말은 생각하는 공간이나 조형물 등을 일컫는다. 만말은 경고의 의미가 있다. 이번 기억과 안전의 길 설치물에는 은은한 조명을 넣어 따뜻함을 나타냈다. 한편으론 왜 이런 참사를 겪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다. 다시 참사를 반복해선 안 된다는 경고의 뜻을 담기로 한 이유다.”
-앞서 ‘기억 투쟁’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집단기억’이라는 게 있다. 개인의 기억이 모여 집단기억이 만들어진다. 집단기억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홀로코스트를 반성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의도적으로 기억공간을 만들었다. 극우세력이 존재함에도 사회적 통념을 만들어 갔다. 기억 투쟁을 통해 집단기억을 만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기억할지는 일종의 기억 투쟁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태원에 놀러 간 게 잘못이다’라는 잘못된 프레임이 존재한다. 기억 투쟁을 통해서 ‘사람은 누구나 안전하게 놀 권리가 있다’라는 명제를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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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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