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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이태원을 보고싶지 않아요. 그곳에서 일하거나 살고 있는 분들의 일상이 다른 의미에서 무너지는 거잖아요.”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서쪽 골목길에서 인파에 갇혔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진 김초롱 씨(33)는 “이번 핼러윈 때 이태원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김 씨는 인터뷰 내내 “일상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표현을 반복했다. 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것조차 힘들었던 자신의 경험을 남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김 씨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 저 역시 타인의 일상을 지켜주고 싶다”고 했다.
29일이면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1년이 된다. 사회적으로 추모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핼러윈’을 언급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참사 관계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피해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되,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 강했다.
동아일보는 참사 1주기를 맞아 생존자와 유가족, 추모 공간 자원봉사자,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회 되길”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6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시민합동분향소에서 서울시 규탄 기자회견을 마친 뒤 영정을 어루만지고 있다. 2023.2.6/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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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참사 당시 인파에 떠밀려 숨 쉬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식당 사장의 배려로 간신히 대피할 수 있었다. 그는 “숨진 희생자들에게 한동안 죄책감을 느끼면서 우울감에 시달렸다. 그런데 저만 힘들어 하는 게 아니더라”며 “비슷한 아픔을 겪은 이들과 연대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또 “내년에는 다시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가고 싶다”고 했다.
김남희 씨(49)와 가족들은 참사 당시 목숨을 잃은 딸 신애진 씨(사망 당시 25세)의 모교인 고려대에 19일 장학기금 2억 원을 기부했다. 그는 “딸의 장례식장에 많은 친구들이 왔다. 부의금으로 딸이 꿈꿨던 일을 대신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애진 씨 없는 삶이 여전히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딸이 떠난 후에야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이었는지 알게 됐다고도 했다. 딸과의 추억을 더듬기 위해 함께 여행 갔던 태국 치앙마이와 일본 교토를 찾기도 했다. 김 씨는 “1년 동안 경험한 일들이 너무 힘들었다”며 “뼈아픈 교훈을 얻었으니 그만큼 더 안전한 사회, 타인의 아픔을 더 공감해 주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김 씨는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딸의 모습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며 대학 졸업사진을 건넸다. 또 “핼러윈 축제가 이태원에서 계속되길 바란다. 이태원을 폐쇄하고 막는 건 희생자들이 원하는 일도, 그들을 위한 일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이태원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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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상욱 씨(53)는 올 4월부터 반년 넘게 매일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고 있다. ‘추모의 벽’에 붙은 시민들의 포스트잇이 떨어질까 봐 신발을 벗고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올라가 테이프를 덧붙인다.
선우 씨는 “피해자 중 가족이나 지인은 없다”면서 “기성세대로서 부채감을 느껴 매일 참사 현장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또 “참사 당시 어른들이 아무것도 못 해줬다는 생각에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선우 씨는 또 “누구도 숨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생존자와 유족이 언제라도 이태원에 다시 와서 하고 싶었던 얘기를 나누며 온전히 추모하고 거리를 걷다 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참사 당시 현장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며 인파를 안내하다 결국 차가운 시신을 옮겨야 했던 경찰에게도 1년 전 그날은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당시 이태원파출소에서 근무했던 A 씨는 올해 다른 파출소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는 “참사 전까지만 해도 이태원파출소는 훈장이자 자랑이었다”며 “하지만 참사 발생 후에는 이태원파출소에서 일한다는 걸 숨기게 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A 씨는 “이태원이 다시 예전처럼 빛나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예전의 이태원은 자유로운 곳, 젊음의 상징이었다”며 “이곳이 추모와 애도의 공간으로만 남는 건 희생자들도 바라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대신 사람 살려야 하니 음악 꺼 달라고 할 필요가 없고, 길 비켜 달라고 소리칠 필요가 없는 더 안전한 곳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최유리 경인교육대 초등교육과 졸업
김영우 서울대 언론정보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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