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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이태원 참사

'김골라인 혼잡 200%'인데 정부는 "대책 완료"…이게 韓 현실 [이태원 참사 1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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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홍대 클럽거리 앞에 설치된 인공지능형 CCTV.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로 전 구역을 살피고, 인파사고 가능성이 있다면 LED화면을 통해 경고메시지를 알린다. 이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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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밤 서울 마포구 홍대 앞 클럽 거리. 3m 정도의 좁은 골목을 수십명의 인파가 쉴 새 없이 오갔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처럼 경사로에 좁은 골목들이 T자로 연결돼 있었다. 인파 속에 솟은 철제 기둥에는 LED 전광판과 스피커·확성기가 달린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었다.

쉬지 않고 회전하며 골목 구석구석을 촬영하는 이 CCTV는 지난 6월 설치됐다. 서울시가 인파 밀집도를 실시간 확인하기 위해 구축한 ‘지능형 인파 카운팅 시스템’의 눈 역할을 한다. 1㎡당 운집 인원이 4명을 초과하면 사고 위험이 큰 ‘심각 단계’로 인지하고, 구청 관제실과 경찰·소방에 즉시 경고를 보낸다. LED 전광판과 스피커·확성기로 인파에도 경고 메시지를 송출한다. 지능형 CCTV는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당일 용산구청 당직자들이 아수라장이 된 이태원 거리 상황을 30여분 간 감지하지 못한 사태를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취지에서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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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의 한 길거리에 설치된 지능형 폐쇄회로(CC)TV. 지능형 CCTV는 인파를 자동 감지해 밀집도를 파악한다. 사진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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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능형 CCTV가 모든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2025년까지 확보된 정부 예산은 100억원으로 필요한 모든 곳에 CCTV를 새로 설치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CCTV 대당 설치 비용은 1000만원 이상으로 추산 된다. 서울시에선 시 예산 78억원을 더해 올해까지 909대를 추가 설치할 예정이지만, 정부 차원에서는 총 설치 목표치를 산정하지 않은 채 예산을 추가 확보하는 대로 설치를 하겠다는 계획만 세워둔 상태다.

기존 CCTV를 활용하는 방안도 한계가 뚜렷하다. 노후화된 기기가 많아 지능형 CCTV로 쓸 수 없는 곳이 많다.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자체 관리 CCTV 중 설치된 지 10년이 넘은 기기는 전체의 14.06%(7만6121대)에 달한다. 최근 설치했더라도 화질이 200만 화소 이하면 지능형 CCTV로는 활용할 수가 없다. 총 3477대가 지능형 CCTV로의 전환이 불가능하다. 지자체마다 시스템 운용 방식이 제각각인 점도 문제다. 행안부 관계자는 “시스템 표준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97개 과제 중 13건 완료…뜯어보니 형식적 논의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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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지난 3월 2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대회의실에서 '안전시스템개편 종합대책' 제1차 추진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행정안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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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형 CCTV는 이태원 참사 이후인 지난 1월 정부가 발표한 ‘국가안전시스템개편 종합대책’(종합대책)의 일부다. 5개 전략과제 아래 세부과제 97개를 2027년까지 완료하겠단 계획을 세웠다. 중앙일보가 전문가 4명과 함께 종합대책을 분석한 결과, 예방·대비 관련 과제가 30여개인데 반해 대응·복구 관련 과제는 50여개, 나머지 10여개는 대형재난 시 유류품 처리지침 등 그 밖의 과제였다.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장은 “예산 편성이 대응·복구에 지나치게 쏠려 있어 후진국식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예방·대비에 더 초점을 맞췄어야 한다는 의미다.

97개 과제의 완료율은 13.4% 수준이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행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97개 세부 과제 중 지난달까지 추진 완료된 과제는 13건이었다. 그러나 완료된 과제 가운데는 형식적 논의를 되풀이하는데 그친 과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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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대중교통 인파사고와 관련된 3개의 과제가 대표적이다. ‘수도권 전철 혼잡 완화 방안 마련’의 경우 정부가 ‘완료’로 분류한 과제다. 완료 사유는 “서울시 등 관계기관 협의 등을 통해 수도권 전철 혼잡 완화방안을 수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토부가 4월부터 광역버스 340여대를 추가 투입하는 등 대책을 내놨음에도 김포 골드라인 출근 피크시간(오전 7시 50분~오전 8시 10분) 혼잡률은 9월 기준 200%로 개선 효과가 미미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혼잡 완화방안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해 용역을 수행 중이다. 안전요원 배치, 탑승 제한 등 정도가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 건축물 대상 시정 명령 등 협력’ 역시 추진 완료로 분류된 과제다. 이태원 참사 당시 해밀턴 호텔의 불법증축물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에 따라 참사 현장 인근 불법건축물 6개 동에 대해선 시정이 완료됐다. 그러나 이태원 외 밀집 사고 위험이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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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진행 중인 84개 과제도 “실행계획 미흡” 평가



2027년까지 완료하겠다는 84개 대책의 실현 가능성이 미지수란 지적도 잇따랐다. 예방·대비 과제로 분류된 기초 지자체 재난안전상황실 상시 구축 방안이 대표 사례다. 종합대책 경과보고서엔 “지자체별 상황실 상시운영 계획 수립·제출을 독려한다”는 내용만 담겼을 뿐,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전히 기초 지자체 228곳 중 상황실 구축 계획이 없는 곳이 46.9%(107곳)에 달했다. “방향성은 맞지만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미흡하다”(송창영 광주대 재난안전학과 교수)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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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안전리빌딩 시범사업 대다수는 지역 특성과 관련 없는 스마트 횡단보도 도입이었다. 스마트 횡단보도는 횡당보도를 밝게 비춰 안전사고를 예방한다. 사진 성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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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가 각 지역 특성에 맞게 안전대책을 수립하고, 중앙정부가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도록 한 ‘대한민국 안전 리빌딩’ 과제를 두고는 목표와 추진 경과가 따로 논다는 평가가 나왔다. 중앙정부가 특별교부세를 통해 지원하는 시범사업들이 스마트 횡단보도 설치, 드론 활용 재난 관측 등 지자체별 위험 특성과는 큰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에 따른 전염병 유행 등의 예측 대응체계를 마련하겠다는 ‘신종재난 위험요소 발굴’은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종 재난 대응·관리 책임자를 명시하는 재난안전법 개정 계획 등이 없어서다. 행안부 관계자는 “신종재난 위험요소가 재난안전법에 명시되는 건 아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관리할 의무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매뉴얼을 개정하는 등 대처가 땜질식으로 이어져 왔는데, 이번 종합대책 역시 완료 후에 그 연장선에 머물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최희천 아시아안전교육진흥원 연구소장은 “이태원 참사 이후 다중인파밀집이 신종 재난요소로 떠올랐다고 하는데, 1959년 부산 공설운동장 압사 사고 때부터 위험성이 제기됐다”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재난 관리 체계가 총체적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만 원장은 “컨트롤타워가 현장 지휘와 조정 역할을 다 하려다 보니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현장 지휘는 현장에 있는 지자체에 맡기고, 이를 잘 수행할 수 있게 지자체 역량을 키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정민‧하준호‧이영근‧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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