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10시20분쯤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서 만난 이진희(50) 씨는 보라색 추모 리본을 만들다 눈물을 흘렸다.
이씨의 장녀 고(故) 이민아 씨는 지난해 10월 29일 친구들과 생일 잔치를 하고 귀갓길에 이태원역을 향하다 변을 당했다. 고작 스물네 살에 불과한 꽃다운 나이였다. 중학생 때부터 캐나다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그가 학비를 벌기 위해 잠시 한국에 귀국했던 때였다.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2023.10.23 allpass@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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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경찰의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뛰어간 이씨는 딸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찢어졌다. 이씨는 "얼마나 끌려다녔으면 그 새하얀 나시가 새까매져서...얼마나 끌려다녔으면..."이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그런 아이가 한 두명이 아니었다. 소위 선진국이란 나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게 이해가 안 가고 원통하다"며 "모든 게 우리 잘못인 것 같다. 우리 애는 그냥 집 가는 길에 그렇게 됐다. 하루 아침에 날벼락"이라고 오열했다.
박지란(37) 씨도 고인이 된 지인을 추모하기 위해 분향소를 찾았다. 한동안 지인의 사진을 바라보던 박씨는 "불쌍한 사람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분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다쳤을 때도 선물을 주고 마음 아픈 일이 있으면 늘 베풀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날씨가 좋으면 좋은대로 흐리면 흐린대로 내내 생각났다. 청춘일 때 떠나서 너무 안타깝다"며 "소식을 접했을 때 '멀리있는 일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면서 제 자신도 돌아보게 됐다. (고인에게도) 여러모로 미안하다"고 했다.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2023.10.23 allpass@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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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1주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유족들은 고인을 떠올리며 여전히 가슴앓이를 하고 있지만 진상규명의 길은 멀기만 하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재판 중 변론이 종결된 것은 해밀톤 호텔 재판 뿐이다. 참사의 주요 책임자로 꼽히는 박희영(62) 용산구청장과 이임재(53) 용산경찰서장 등은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9개월 넘게 재판을 받는 중이다. 이들은 '주최자가 없는 행사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 '무전을 제대로 못 들었다' 등의 이유로 혐의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수사도 9개월이 넘었으나 기소 여부 조차 결론나지 않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7월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하면서 복귀했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 의원 183명이 공동발의한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도 3개월째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여당 측은 "법안 내용이 워낙 독소조항이 많고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서 밀어붙이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에 유가족 측은 지난 16일부터 '1주기 집중추모주간'을 통해 참사 책임자들에 대한 엄벌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1년이 흘렀음에도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것도, 처벌받은 것도 없다"며 "정부와 여당은 참사를 반성하고 잘못을 인정하긴커녕 왜곡하고 정쟁이라고 물타기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진희 씨도 "책임있는 사람들은 얼렁 뚱땅 다 풀려났다. 책임 있는 사과와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며 "안전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고 한 번 반짝이는 안일한 태도, 생각들 때문에 참사가 반복된다. 어떻게 죽었는지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가족들은 매일 저녁 추모제와 구술기록집 발간, 1주기 다큐 특별시사회, 청년100인의 대화모임, 이태원 일대의 기억물품 나눔 등의 추모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참사 1주기인 오는 29일에는 서울광장에서 시민추모대회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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