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톤호텔 서쪽 가벽은 그대로…추모의벽 포스트잇 빼곡
물기 맺힌 국화송이엔 '00아, 아빠가 많이 보고싶구나'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기억의 길'에 적힌 추모글 |
(서울=연합뉴스) 정윤주 안정훈 이율립 기자 = 이태원 참사 직후 한동안 한산했던 거리엔 다시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세계음식문화의 거리에는 눈부시게 밝은 네온사인이 거리를 비추고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이 여기저기 퍼졌다.
가게마다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거나 인증샷을 찍어주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참사 1주기(29일)를 앞둔 지난 19일 밤 이태원 거리에서는 외국인 관광객, 젊은 연인,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 가을 공기를 즐기고 있었다.
최근 상권이 회복된 이태원 세계음식문화의 거리 |
상인들은 상권이 회복되고는 있지만 참사로 인한 타격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태원역 인근 일식집 직원 권모(40)씨는 "이태원 참사 이후로 매출이 꾸준히 늘어 참사 전과 비교하면 70% 정도 회복됐다"고 말했다.
이태원 근처에서 10년째 여러 가게를 운영한 고모 씨도 "참사 직후에는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는데 지금은 '이태원 가봤는데 괜찮더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상권이 많이 회복됐다"고 전했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33)씨도 "심각했을 때는 말 그대로 손님이 없어서 가게를 닫았는데, 최근에는 체감상 70%는 회복이 된 것 같다"면서도 "'상권 회복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들이 상인들 사이에 만연하다. 이달 핼러윈 때 '또 무슨 일이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든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올해 핼러윈은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고 있다. 예년처럼 핼러윈을 기념하며 가게를 장식하지도, 프로모션 행사를 하지도 않는다.
이태원역 근방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홍모(60)씨는 "과거에는 이맘때 핼러윈 장식을 하는 가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런 곳이 한 곳도 없다"며 "추모식을 한다고 하니 (핼러윈) 장식을 할 수는 없고, 평소처럼 가게 문 열고 영업하려고 한다"고 했다.
해밀톤호텔 서쪽 가벽 |
참사의 주원인으로 지목됐던 해밀톤 호텔 서쪽 가벽은 그대로 남아있다.
해밀톤 호텔이 참사 전 북쪽에 세운 불법 증축물과 서쪽에 에어컨 실외기를 가리기 위해 설치한 철제 가벽은 이태원 참사 발생 골목의 인구 밀집도를 높여 인명 피해를 더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대해 해밀톤 호텔 측은 북쪽 증축물은 철거했으나, 서쪽 가벽은 불법적 요소가 없어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해밀톤 호텔 측은 "북쪽 테라스 증축물은 정리가 된 게 맞다"라면서도 서쪽 가벽을 그대로 둔 이유를 묻자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서쪽 가벽이 남아 있는 탓에 참사가 악화했던 티(T)자형 골목은 대형차 한 대가 지나가기에도 버거워 보였다.
용산구청 측은 이와 관련 "호텔 서쪽 가벽은 참사 당시에도 불법이 아니었지만, 참사 당시 사고 원인으로 지목돼 작년에 호텔 측에 철거를 요청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지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당시 구청 조처 대상 위반 건축물은 (불법 건축물 1개를 제외해) 7개였다"며 "6개는 시정 완료됐고 1개가 시정되지 않아 경찰에 고발했고, 경찰이 이를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참사가 났던 T자형 골목 |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는 시민들은 추모의 벽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기도할게요. 그곳에서 편히 쉬세요', '부디 하늘에선 편하게 지내시길'과 같은 글귀가 테이프로 단단히 고정된 포스트잇 위에 겹쳐 붙어 있었다.
일본어, 영어, 아랍어 등 외국어로 된 포스트잇들도 여전히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었다.
추모의 벽에 다가가 포스트잇을 한 장 한 장 곰곰이 읽어보는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몇몇 시민은 추모 공간에 마련된 포스트잇을 꺼내 저마다 희생자를 위로하는 글귀를 적었다.
골목 초입에는 막 뚜껑을 연 듯한 청주와 시들지 않은 꽃다발이 네다섯개 놓여있었다.
이슬이 채 마르지도 않은 듯한 국화 송이에는 'OO아, 아빠가 많이 보고싶구나. 사랑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추모의 벽 앞에서 포스트잇에 글귀 쓰는 시민들 |
jungl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