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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실제 공포심 안 느껴도 스토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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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개별 행위 경미하더라도

누적·포괄해 일련의 행위면 범죄”

피해자가 실제로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느끼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불안·공포를 느끼게 할 행동이면 스토킹범죄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나아가 개별 행위가 비교적 경미하더라도 누적·반복돼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기 충분한 일련의 행위라면 전체 행위를 포괄해 스토킹범죄를 구성한다고 판단했다.

20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는 A씨 상고심에서 지난달 27일 징역 10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따르면 A씨는 B씨와 2009년 결혼해 자녀들을 낳았는데 2017년 A씨의 가정폭력 등으로 두 사람은 이혼했다. B씨는 A씨와 이혼한 후 혼자서 자녀들을 양육하다가 2021년 3월 A씨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고 A씨를 상대로 자신과 자녀들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을 법원에 신청하기도 했다.

이후 A씨는 지난해 11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7월 B씨를 찾아가 현관문 앞에서 B씨와 자녀들을 기다린 것을 비롯해 10~11월에도 6차례에 걸쳐 B씨가 거주하는 곳에 찾아갔는데, 검찰은 A씨가 지속적·반복적으로 스토킹행위를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10~11월 A씨는 현관문을 발로 차 B씨와 자녀들에게 접근하거나 자녀들만 있을 때 문을 열어달라고 해 집 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또 현관문 앞에서 초인종을 여러 차례 누르고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 접근하거나 건물 앞 마당에 눕기도 했다.

A씨는 재판에서 일부 행위들은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킨 것이 아니어서 스토킹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은 A씨의 각 행위가 B씨에게 불안감과 공포심을 느끼게 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징역 1년과 40시간의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검찰은 2심에서 지난해 7월 A씨가 B씨와 자녀들을 현관문 앞에서 기다린 혐의 부분에 대해선 삭제하는 내용으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2심 재판부도 A씨의 나머지 행위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10월과 40시간의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2심 재판부는 스토킹처벌법 제정 이유, 입법목적 등을 종합할 때 상대방이 현실적으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느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봐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경우 스토킹행위에 해당한다고 전제했다. 이를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하면 스토킹범죄라고 밝혔다.

이 사건에서는 A씨가 스토킹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행위들도 객관적으로 B씨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기 충분한 행위로 평가된다고 봤다. 나아가 실제로 B씨에게 불안감·공포심을 일으킨 사실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스토킹범죄가 성립하는 데 피해자가 현실적으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가지는 것을 요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객관적·일반적으로 볼 때 불안감·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정도인지는 행위자와 상대방의 관계·지위·성향,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행위자와 상대방의 언동, 주변의 상황 등 행위 전후의 여러 사정을 종합해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서 A씨 혐의 중 B씨 집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거나, 현관문을 발로 차거나, 자녀들만 있을 때 집 안으로 들어간 행위 부분에 대해선 “객관적·일반적으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정도의 행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A씨와 B씨가 자녀들과 관련해 평소 적지 않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B씨가 출동한 경찰관에게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시한 점 등을 판단 근거로 들었다.

다만 재판부는 “그 행위의 본질적 속성상 비교적 경미한 수준의 개별 행위라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가 반복돼 누적될 경우 상대방이 느끼는 불안감 또는 공포심이 비약적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6회의 혐의 행위 중 5가지 행위에 대해 누적적·포괄적으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 충분한 일련의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더해 이미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느낀 상태에 이른 B씨를 상대로 건물 앞 마당에 누워 접근한 행위까지 반복했기에 각 행위가 포괄해 스토킹범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심 판시에 부적절한 부분이 있으나 결론을 수긍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스토킹행위, 스토킹범죄 성립을 위해서 상대방의 현실적인 불안감 내지 공포심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 및 객관적·일반적 관점에서 피해자로 하여금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스토킹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을 최초로 판시했다는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비교적 경미한 수준의 개별 행위더라도 누적적·포괄적으로 평가해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일련의 스토킹행위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 최초 사안”이라며 “선례의 취지를 따르면서 스토킹범죄 피해자를 보다 두텁게 보호할 수 있게 한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안대용 기자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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