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초상화. 엘리자베스 루이즈 비제 르 브룅 작품. /사진=프랑스 베르사유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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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 10월 16일 프랑스 파리의 혁명 광장에서 루이 16세의 아내이자 '비운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년)가 처형됐다.
적대국 프랑스에 시집을 와 왕비가 됐던 오스트리아의 공주에게는 수많은 혐의가 적용됐다. 프랑스 혁명 정부는 국고 낭비, 백성 기만, 오스트리아와의 결탁 및 전쟁 유발, 루이 16세를 타락시킨 죄 등을 물어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 올렸다.
14세 때부터 정략결혼이란 도구로 쓰인 한 여성의 비극적인 최후였다. 처형 직전 마리 앙투아네트는 "난 죄를 지어서 죽는 게 아니니 부끄러워할 것은 없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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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성난 민중의 분노를 받아낸 가짜뉴스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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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예능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사진=tvN 유튜브 채널 '디글 :Digg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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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던 민중은 오스트리아 공주 출신인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광적인 분노를 보였다. 이들은 심각한 경제난과 부패한 정치권, 왕실의 사치 등에 대한 원인을 왕비에게 찾았다.
특히 당시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이 꼽힌다. 1772년 라 모트 백작 부부는 자신들을 왕비의 측근이라고 속여 로앙 추기경에게 접근했다.
라 모트 부부는 "우리가 대신 왕비에게 선물을 전달해 주겠다"고 말해 로앙 추기경에게 막대한 돈을 받았다. 부부는 이 돈으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구입해 왕비에게 선물하겠다고 추기경을 속였다.
tvN 예능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사진=tvN 유튜브 채널 '디글 :Digg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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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마리 앙투아네트는 진상 조사를 시작했다. 이 사건으로 재판까지 열렸고 로앙 추기경은 사기 피해자로, 왕비는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왕비에게 부정적이었던 민중은 "사치스러운 왕비는 이미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몰래 가로챘을 것"이라며 "추기경이 왕비에게 이용당한 뒤 버려진 것이다"라고 믿었다. 잘못된 소문은 시간이 흐르면서 프랑스 민중들에게 점차 사실로 각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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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민중에게 끌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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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예능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사진=tvN 유튜브 채널 '디글 :Digg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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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가 남긴 것으로 유명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는 왕비를 '오스트리아의 암탉'이라고 비하하며 싫어한 민중이 악의적으로 퍼뜨린 소문일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 혁명 당시 빵 1개의 가격은 일반 시민의 하루 급여와 비슷한 수준으로 폭등했다. 이에 살림을 책임지던 여성들은 1789년 10월 왕과 왕비가 있는 베르사유 궁전까지 시위성 행진을 시작했다.
여성들과 그 남편들의 규모는 7000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베르사유 궁전에 도착해 루이 16세와 대화를 나눴음에도, 마리 앙투아네트를 찾기 위해 궁전 내부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궁전을 지키는 근위병 일부가 성난 민중에게 살해당하기도 했다.
tvN 예능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사진=tvN 유튜브 채널 '디글 :Digg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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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민중들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등을 붙잡았고, 왕실 가족들을 강제로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데리고 왔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왕비가 빵 대신 케이크를 먹으라고 했다는 악의적 소문이 확대, 재생산된 셈이다.
비슷한 말은 이전에도 프랑스 사회에서 사용됐다.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Les Confessions)을 보면 마리 앙투아네트 소문과 유사한 내용이 등장한다.
루소는 1740년 전후 자신이 겪은 일화를 떠올리는 식으로 책을 썼다. 그는 와인을 마실 때 곁들여야 할 바게트 빵이 없자, 과거 한 공주가 제안했던 임시방편에 대해 언급했다. 루소는 그 공주가 "바게트가 없으면 안주로 브리오슈(계란과 버터로 달고 작게 만든 빵)를 먹으면 된다"고 말한 것으로 회상했다.
설령 고백록에서 언급되는 공주가 마리 앙투아네트였다고 가정해도, 그가 루소와 만났을 땐 10세 전후의 어린 소녀였을 것이다. 빵이 없어 굶주리는 민중에게 대신 케이크를 먹으라고 말하는 상황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채태병 기자 ct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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